먼저 세토이치를 언급하기 전 이 양조장이 위치한 장소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을 알고 나면 이 사케가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의 수 없이 많은 온천 중 단연 독보적인 온천인 하코네 온천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코네 온천이 인기가 많은 첫 번째 이유는 수도권과 불과 100 여킬로 떨어진 차로든 전철로든 1~2시간의 거리에 이렇게나 멋진 온천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접근성입니다.
막히지 않으면 도쿄시내에서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낭만적인 온천의 분위기입니다. 하코네로 가는 특급열차 이름도 오다큐 로맨스카입니다.
일본에서는 낭만(浪漫)을 로망이라고 읽습니다. 프랑스어의 로망을 그대로 한자로 가차한 것인데 다시 그 단어를 우리가 가져와 낭만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왠지 하코네는 일상과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 말 그대로 로맨틱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 낭만적인 일탈을 꿈꾸기도 하는데 바로 하코네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주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코네 오와쿠다니에서 바라본 후지산
온천이라 해서 한 군데에 모여 북새통을 이루는 커다란 거점 온천마을이 아니라 유모토, 고라, 미야노시타, 코와쿠다니, 센고쿠바라 등으로 산재해 있어 인파에 치이는 경우가 없고 저녁이 되면 편의점 말고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등 오로지 자신과 온천만이 존재하는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도 하코네의 인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성일 겁니다.
불과 50킬로 이내에 후지산, 오다와라, 이즈, 아웃렛, 아타미, 유가와라 등 유명한 관광지가 즐비해 있어서 관광옵션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걸 다 갖춘 사케가 바로 금일 소개하는 세토이치라는 사케이며 그중에서도 '오토모나쿠'라는 라인업입니다.
세토주조점 내부
하코네보다도 더 가까우며, 마을에 들어서서 생각나고 느껴지는 대로 쓰고 말하면 그냥 시인이 되어버릴 정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자연, 그리고 하코네에 이렇게나 멋진 양조장이 있을까라는 연계성까지 너무나 출중한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오토모나쿠(音も無く)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소리도 없이'입니다.
언제인지 모르게 '소리도 없이' 만들어졌고 또 '소리도 없이' 어마어마한 수상을 받았고, 그 사실을 크게 떠벌려도 충분한 데도 '소리도 없이'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도인 마냥 그렇게 하나의 시와 같은 사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도 '소리도 없이' 만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세토주조점
세토이치를 양조하는 세토주조점은 하코네에 진입하기 전 바로 직전의 카이세이마치에 있습니다.
남쪽에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오다와라 성이 있고 다소 쇠퇴해 가는 중소도시로 보일 수도 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자연에 동화된 이 카이세이마치는 시(詩)와 가까워졌는지 모릅니다.
라인업의 이름들을 보면 그저 언어기교나 테크닉으로 과대광고 또는 포장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 네이밍이 너무나 잘 이루어졌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일본 100 명산 중 하나인 탄자와 산에서 내려와 이 지역의 쌀재배에 에너지가 되어주는 힘찬 물의 소리, 논에서는 고즈넉한 전원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듯 퍼져나가는 벌레 울음소리 들, 계절에 관계없이 불어오는 시원한 논 바람 역시 잠시 신선이 되는 기분을 내기에는 충분한 재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