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도 유종의 미를

작별 인사하던 그 갈림길

by JEMMA

일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 주차를 잘 했는지 살펴보고 있는데 누가 옆을 지나가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왜 자꾸 쳐다보지?'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예 걸음을 멈추고 빤히 보더니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이전 직장 원장님이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마주친 건 처음이다. 그곳에서 일할 때는 차가 없어서 원장님이 퇴근길에 태워주시곤 했는데, 차를 보더니 어느새 차를 샀냐며 축하한다고 하셨다. 서로 근황을 간략히 얘기한 뒤 헤어졌다. 연신 뒤를 돌아보신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했다.


이전 직장에 있었던 2년을 난 모든 삶이 멈춘 기간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나는 매사에 귀차니즘이 심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편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있다 해도 노력하기 싫었다. 그런 저주받은 권태를 극복하려고 오랜 세월 애를 썼다. 예를 들면 집에 들어오면 바로 씻은 후 일을 최대한 빠르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 새벽 5시에 자더라도 반드시 9시에는 일어나는 것, 출근 전에 할 일 리스트를 만들고 모두 수행하는 것 등이다. (입시학원 강사이기 때문에 낮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면서 모든 생활 패턴이 무너졌다.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세기도 했지만 업무 스타일과 방향성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처음에는 조금 더 적응해서 일이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퇴근 후에 새벽 4시가 넘어가도록 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일했다. 출근하면 또 미친 듯이 일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 다시 일을 했다. 주말에는 집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해도 할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마침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점점 나는 공부도 힐링도 하지 않았다. 집에 오면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청소도 안 했고 장롱이 망가져서 새로 바꿔야 하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도전하고 싶었던 모든 일은 까맣게 잊었다. 마감일까지 할 일을 완료하지 못하면 그냥 못했다고 했다.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면 그대로 사표를 낼 생각이었다. 어느새 나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내 삶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채로 기약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여태껏 얼마나 발버둥 치면서 살아왔는데. 이대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못 했고 뚜렷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그만둬야 했다. 그래야 내가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여기 올 때 나중에 독립할 때까지 계속 일할 생각으로 근방에 이사까지 왔지만,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조금 쉬다 오라고 휴가도 주고 같이 점심도 하면서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내 확고한 의지에 결국 수락하셨다. 그만두겠다고 말한 후 1년을 더 일했고, 2년을 살짝 넘기고 마침내 퇴사했다.


비록 일은 힘들었지만 원장님과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는 아무 불만이 없다. 각자가 바쁘고 힘들어도 서로 묵묵히 도와주었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중 제일 안 착한 사람을 뽑는다면 바로 나이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에게는 고마운 마음뿐이다. 원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 나이 어린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최대한 고충을 반영해주려고 하셨다. 간식이나 명절 선물을 주더라도 언제나 정성껏 고르셨고 인센티브가 발생하면 최대한 많이 챙겨주려고 하셨다. 점점 지친 내가 종종 티를 낼 때도 있었지만 늘 온화하게 대해주셨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 엘리베이터까지 마중 나온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부 사이에도 트러블이 있고 실망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그동안 서운한 것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풀어주세요. 선생님 정말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잘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종의 미' 강박이 있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마지막 인사였다. 그 말 덕분에 힘들었던 마음은 나쁜 마음이 되지 않고 사그라졌다. 이후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전화가 몇 번 왔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새 직장을 구했고, 다른 곳에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다시 연락하지는 않으셨다.


일이 좋아도 사람 때문에 그만두고, 사람이 좋아도 일 때문에 그만둔다. 좋은 곳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기도 하며, 힘든 곳에서 유종의 미를 잘 거두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때로는 바로 나 자신이 유종의 미를 망쳐버린다. 유종의 미는 혼자만으로는 거둘 수가 없었다. 다정한 작별의 손을 내미는 법도, 그 손을 다정히 잡아주는 법도 모두 배워야 한다. 이곳은 내게 너무도 힘든 직장이었지만 다정한 악수를 나누며 헤어질 수 있었던 직장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함께 하진 않지만 각자 속한 자리에서 완주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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