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데칼코마니
사랑스럽지 않은 토요일이다. 내신 대비 기간이라 출근해야 한다. 한 주 동안 감기 몸살로 고생을 했는데 또 하필 주말 출근이라니. 심기가 불편한 채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준비를 한다. 씻고 추레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메이크업을 한 다음 대충 널어놓은 청바지와 흰 티를 대충 걸치고 밖을 나선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며 아주 대환장파티다.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 마치 새끼강사가 된 것만 같은 언짢은 기분, 이 시간이 과연 내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으로 기분이 안 좋아진다. 분위기가 약간 냉랭해진다. 내면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간신히 밀어 넣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 끝없는 업무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단 낫다. 평생 있을 것도 아니니 참자.
한 학생이 늘어져 있다. 점심때 와서 해질 때까지 저러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오답 풀이를 하려고 다가갔는데 가만히 있던 놈이 갑자기 내가 앉으니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왜 하필 지금 가느냐고 빨리 다녀오라고 했더니 '싫은데요, 30분 후에 올 건데요?' 하며 사라진다. 한 대 치고 싶지만 일단 참는다.
1분 만에 갔다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뚜껑이 열릴 것 같다. 남자화장실 앞으로 가서 문을 쾅 차버리고 싶은 마음이 실현되기 직전에 원장님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녀석은 화장실 한 중간에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밖으로 나와 터덜터덜 걸어온다. 겨우 이성을 붙잡고 왜 이제오냐고 최대한 상냥하게 물어봤는데, '오기 싫어서 그냥 멍 때렸는데요?' 하고 당당하게 받아친다.
3, 2, 1. 하이드 봉인 해제. 폭격이 시작되었다. 내가 시험 치냐, 니 시험인데 왜 내가 안달복달을 해야 하느냐, 뭐 잘했다고 당당하게 헛소리를 하고 있냐 등등 마구 퍼부어댄 후에, 움츠러든 아이를 메두사처럼 쏘아본다. 원장님이 슬금 다가온다.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 같다. 그래, 난 무수리니까 그만하라면 그만해야지. 울분이 덜 풀린 채 학생을 노려보며 쌀쌀맞게 앉으라고 했다.
오답 풀이를 하며 질문을 했더니 당당하게 모른단다. 배운 적 없단다. 진짜 설명해 주기 싫다. 시험을 못 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대충 답만 체크해 주고 가버리고 싶다.
"밑줄 친 'this change'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서 적으라잖아. 근데 답에 뭔 this change를 또 적어놨어. 그게 답이겠냐? 지금 네가 찾아봐. 이 변화가 뭘 얘기하는 거야. 찾아서 손가락으로 짚어."
"this change가 뭔지 적으라잖아요. 그래서 this change를 적었잖아요."
"그러니까 this change가 이전 문장에서 뭘 얘기하는 거냐고, 이 인간아!!!"
2차 폭발이다. 다섯 손가락으로 학생의 머리뚜껑을 가득 쥐고 흔들었는데 활짝 웃는다. 희한하다, 희한해. 웃지 말라고. 재밌는 거 아니라고. 진짜 돌겠다.
"선생님, 전 오늘 운수가 아주 좋아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전 오늘 운수가 안 좋아요."
"저 지금 비꼬면서 말한 건데요?"
"어쩌라고. 안물안궁."
한 문제 풀리고 틀리면 갈구고 세모 치고, 또 한 문제 풀리고 틀리면 갈구고 세모 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중간중간 딴짓을 할라치면 머리뚜껑을 잡고 위협도 해가면서 들들 볶으니 드디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점점 동그라미가 많아진다. 풀 때마다 동그라미를 쳐 주니 신나서 혼자 정답 해설을 늘어놓는데 제법 정확해졌다. 이제 정신 돌아왔네, 하며 칭찬해 주니 더욱 신이 나서 다음 문제를 푼다. 순식간에 다섯 장을 풀었다.
"OO아. 봐, 집중해서 푸니까 너 오늘 여기 와서 하루 종일 푼 것보다 지금 30분 동안 더 많이 풀었잖아. 스스로 할 때도 집중 좀 해. 빨리 하고 집 가서 다른 것도 공부해야지. 알겠어?"
"네!"
30분 전에는 사탄 같던 녀석이 강아지처럼 해맑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니 어느새 하이드는 다시 봉인되었다. 안 하려는 놈들은 하든지 말든지 시험을 망치든지 말든지 그냥 놔버리고 싶은 마음은, 다시 어떻게든 끌고 가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선다. 분노를 거두고 부드럽게 타이르자 학생의 움츠러든 어깨가 다시 펴지면서 또 까불거린다. 이걸 또 혼내, 말아.
퇴근할 때 원장님은 오늘 너무 고생했다며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나도 살가운 말투로 인사하며 훈훈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밖으로 나와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다. 깜깜한 밤이 갖가지 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미워하고 싶다. 상처 주고 싶고 돌아서고 싶다. 그러나 미워하고 싶지 않다. 움츠린 마음을 다시 피어오르게 하고 싶고, 외면하지 않고 싶다. 이 두 가지 마음이 끊임없이 다투며 서로 밀치고 올라오려고 한다. 그러나 오늘도 하이드를 밀어 넣었다.
네가 흉측하다. 그러나 사랑스럽다. 너의 두 얼굴이 변검을 하듯 쉴 새 없이 표정을 바꾸어댄다. 너는 지킬이었다 하이드였다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네 얼굴에 떠오른 지킬의 표정만을 기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