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네가 애기라는 증거

by JEMMA

"내가 몇 번을 얘기했냐고, 이 애기들아!"


내가 소리치면 학생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저 애기 아니에요!' 하고 역정을 낸다. '말 안 들으면 다 애기에요' 하고 받아치면 갑자기 말을 잘 듣는다. '떠들면 다 애기에요' 하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웃기는 애기들이다. 이 사람들아, 이 공주들아, 이 총각들아, 이 양반들아 등 가지각색으로 불러봐도 피식 웃고 마는 학생들은 유독 애기들이라고 하면 발끈한다. 반응이 은근히 재밌어서 말을 너무 안 들으면 소심한 복수심으로 '이 애기들아!'를 남발한다. 가끔씩 좋아하는 애들도 있다. 내가 애기라고 하면 갑자기 흥분해서 '응애! 응애!' 하고 징그럽게 외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말을 싫어한다.


하도 '애기'라는 말을 싫어해서 언젠가 전수조사를 해봤다. '애기'라는 말이 싫은 사람과 좋은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했는데 싫다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왜 싫으냐고 했더니 본인들은 애기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근데 그거 알아? 애기라는 말 싫어하는 게 진짜 찐 애기야. 어른들은 애기가 되고 싶어 해. 이것 봐, 얘 손들었잖아."


'애기'라는 말이 좋다는 쪽에 손을 든, 반에서 제일 애기 같지 않은 비주얼을 가진 학생을 가리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더니 애기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다. 갑자기 너도나도 좋다고 한다. 그럼 나는 '웅, 알았어 애기들아! 그럼 계속 애기라고 할게 애기들아!' 하면서 약을 올리고, 그러면 학생들은 '아아아~~' 하면서 짜증을 낸다. 너무 재미있다.


어릴 때 엄마의 핸드백을 메고 엄마의 옷을 입으면서 어른 흉내를 내곤 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유치뽕짝한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이나 노란 병아리 같은 앙증맞은 옷은 질색했고, 누가 봐도 어른 구두 같은 뾰족구두와 아가씨(다 큰 여자라는 의미다) 메고 다니는 것 같은 핸드백을 용돈 모아서 샀다. 사복을 입고 버스비를 낼 때 기사 아저씨가 어른 요금에 맞춰 거스름 돈을 내주면 은근히 뿌듯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애 취급 당하는 게 싫은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 지금의 나도 애기 취급 당하는 걸 싫어한다. 엄마가 아직도 예전과 같은 잔소리를 할 때 발끈하고,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이 훈수 들면서 초짜 취급할 때 발끈한다. 하지만 그들 눈에는 그런 내 모습이 애기 아니라며 삐약거리는 학생들처럼 보일 것이다. 어서 자라고 싶은 조바심과 어른 행세 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는 이번 주도 내내 발끈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애기라고 놀리면서도 자기는 애기가 아니라며 삐죽거리면 적당한 타이밍에 우쭈쭈 해주며 노여움을 풀어준다.


"왜 또 수업 시간에 떠들지? 선생님 말씀하실 때 비지엠 깔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완전 애기 아니야?"

"아니에요, 애기 아니에요!"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데, 이게 애기가 아니고 뭐야."

"저 학생이에요! 청소년이에요!"

"알았어, 이 애기들..."

"애기 아니에요!"

"알았어, 이 급식..."

"급식충이요?"

"아니, '충'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요. '급식 드시는 학생분들'이라고 하려고 했는데요."

"하하하하!"


별로 웃긴 말도 아닌데 까르르 웃으면서 노여움을 푼다. 역시 애기다. 애기는 아무리 우겨도 애기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때로는 너무 얄미워서 콩 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애기니까 귀엽게 봐주기로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떽떽거리고 가소로운 '애기'처럼 보일 테지. 때로는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진절머리 나기도 하는 이 애기 같음을 내 감정과 상관없이 어여삐 여기며 점점 바람직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난 애기가 아니니까.


오늘도 이렇게 분노 조절 장애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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