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나방이 되고 싶은 애벌레
아침 햇살. 눈을 찌르는 밝은 빛에 잠에서 깬다. 안대가 자다가 벗겨졌는지 발치에서 뒹굴고 있다. 핸드폰을 보니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이다. 1분 더 잘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알람을 끄고 인터넷 창을 연다. 늘 깨자마자 바로 일어나자는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지만 늘 지켜지지 않고 뒹굴거리게 된다. 오늘도 날씨를 확인하고, 뉴스를 잠깐 훑어보고, 인스타 릴스를 계속 넘기면서 누워서 30분을 뭉그적거리다 겨우 일어난다. 어젯밤에 너무 출출해서 감자를 삶아 먹었는데, 그때 드라마를 튼 게 화근이었다. 몇 년 전에 방영했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뤄두다가 감자 먹는 동안 좀 볼까 해서 틀었는데 그대로 새벽 5시에 기절할 때까지 정주행 이어달리기를 해버렸다. 그래서 일찍 일어날 수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 출출하면 싸대기를 때려서라도 참기로 다짐해 본다.
헐레벌떡 씻고 선크림만 바른 뒤 조그만 가방에 지갑, 충전기, 거울을 쑤셔 넣고 노트북을 품에 안고 집을 나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중한 토요일이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었고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길래 흐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맑은 날이다. 집에서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의 집 앞 카페에 들어왔다. 주중 내내 애슐리퀸즈에 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토요일이 되면 애슐리에 오픈런을 해서 2시간 동안 배 터지게 먹은 뒤에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어제 드라마를 보면서 안 가기로 결정했다. 늦게까지 드라마를 봐서 못 갔다기보다는, 갈 마음이 사라져서 밤새 드라마를 본 거라고 할 수 있다. 어제 퇴근하고 나니 그렇게 악착같이 오전부터 시내에 나가 먹고 돌아다닌다는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져서다. 결국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가서 글이나 쓰자고 생각했다. 자리만 같고 간판은 계속 달라지는 이 N번째 카페는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고 저렴하고 배부르다. 여태까지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없어서 또 어느새 간판이 바뀔까 봐 걱정이 된다. 제발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없어지는 게 싫다.
우리 동네에는 개인 공부방과 교습소들이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래 운영하던 공부방 하나가 없어졌고 세입자를 구하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 주변은 보증금과 월세가 다른 곳보다 저렴한 편인데, 역시나 괜찮은 가격이다. 기웃거리며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니 혼자 사는 사람이 거주도 하면서 학생들 가르칠 공간도 마련하기에 괜찮은 구조다. 여기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교습소가 아닌 공부방을 낼 수 있겠다. 그럼 학생들을 모으는 일이나 수업료 책정에 골치가 덜 아프고, 비용도 훨씬 덜 들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풀어 올랐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어찌어찌 계약까지는 한다 하더라도 수업 공간 꾸리는 데 드는 비용과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는 초창기에 버틸 수 있는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재정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겁 많고 생각도 많아서 덜컥 저질러 놓고 보는 타입은 아니기에 생각만 해볼 뿐이었다. 자리가 좋았기 때문인지 방은 곧 팔렸다. 다음에 보니 미술 교습소인지 여러 미술 소품들을 잔뜩 들여놓았다.
계속 울적하고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던 이 시점에 목격한 이 세입자 광고는 내 마음에 더욱 불을 지폈다. 늦어도 40대 초반에는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겪는 이 수모와 분노를 무조건 참아야 한다. 성질대로 하다가는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기니 이를 악물어야 한다. 하루하루 분노를 잘 다스리며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요즘이다.
고용주는 나를 박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가지각색의 고용주를 많이 만나보았으므로 지금의 고용주가 괜찮은 편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토록 스트레스받는 이유는 늘 내가 꼭두각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고용주 자신이 모든 일을 총괄하면서 나는 본인이 물리적으로 힘이 못 미치는 부분을 아바타처럼 대신해 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그래서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을 받고 진도 나가는 것과 숙제 내는 것 모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나에게 말도 안 하고 바꿔버린다. 내가 가르치는 건 고용주보다 중요도가 낮다는 걸 애들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애들을 잡아봤자 숙제도 제대로 안 해온다. 또 하라는 걸 똑바로 안 하면 해결책이 없다. 내가 마음대로 붙잡아놓을 수도 없고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워서 해결 안 된 채로 그냥 넘어간다. 그러니 성과가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수업과 숙제 방식을 바꿀 수도 없고 애들 테스트 점수가 몇 점인지, 내신 점수가 몇 점인지, 학교 시험은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학생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안 되어서다. 일 시킬 때 필요한 부분만 잠깐 공유해 준다.
대화를 해도 말하는 중간에 가로채서 본인이 더 많이 말하고, 그래서인지 내 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얘기하다 보면 답정너 스타일이다. 본인 방식이 더 옳다는 전제가 늘 깔려 있고 나를 꼭 초짜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화를 해봤자 더 찜찜해져서 이제 대화 시도도 안 한다. 그리고 의중을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어떤 방식으로 하길 원하는지 물어보면 속 시원하게 대답도 안 해준다. 뭘 하라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내가 일을 알아서 잘하길 원하는 건지, 아니면 시키는 대로만 얌전하게 하길 바라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내가 일을 못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여기서 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초장에 누르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성과가 안 나오는 이유를 나에게서 발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세세하게 다 적으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다 적지는 못하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직접 들은 얘기들도 있다. 그러나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니까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20대 중반의 강사라면 불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일에 종사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중간에 한 번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경력 20년에 가까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학생들을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 봤고, 갖가지 방식으로 시험 대비도 해 봤고, 지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떠맡아서 어떻게든 이끌고도 가 봤다. 나 때문에 반이 깨진 경우도 있었고 더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 나를 안 좋게 생각한 학부모님들도 있었고 나를 극찬하면서 친척과 지인들에게 소개해서 그 자녀들까지 등록시킨 학부모님들도 있었다. 전에 다녔던 학원에서는 강사 평가에서 연속해서 1위를 한 적도 있고, 데스크 직원이 '선생님처럼 컴플레인이 안 오는 강사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원장님에게 강사를 나로 바꿔달라고 생떼를 부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컴플레인 걸린 적도 있었다. 오래 강사 생활을 하면 이런저런 일이 있다는 건 다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해도 없이 계속 나를 저평가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해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뭐만 하면 반대하는 느낌이다. 내 수업 방식과 내가 만든 자료가 전부 저평가되는 기분이고, 그냥 거들어주는 위치에만 있으니 내게 발전도 없다. 요즘 영어 실력과 가르치는 능력도 퇴화되는 것 같다. 그냥 남의 일을 잠깐 맡아서 해주는 느낌이라 책임감도 줄어들고 잘해봐야겠다는 동기 부여도 되지 않는다.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이 떨어지니 점점 일이 재미가 없고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애들도 시들시들한 것 같다. 공부하기 싫어서 죽으려고 하고 그런 애들을 구슬려서 수업하는 것도 곤욕이다. 애들이 좀 더 할 맛 나도록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하고 싶은데, 자유가 없으니 그럴 수 없다.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건지 계속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 때문에 결점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학부모들에게 내 수업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나? 애들이 나를 싫다고 했나? 무슨 불만이 있을까? 그냥 내가 본인의 아바타 이상으로 행동하는 게 싫은 건가? 아니면 이 모든 게 그냥 내 생각일 뿐이고 사실 고용주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땅 파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인데, 아무리 나를 돌아봐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다. 자신감까지 떨어지니 더 열심히 하기 싫어진다.
결국 '더러워서 내 거 차리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이 분야를 떠나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좀 늦어졌지만, 마침내 목표가 설정되었으니 정신을 단단히 무장하기로 했다. 어딜 가나 남의 사업장이다. 당연히 서러운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단 최대한 맞춰주고 나는 나대로 준비를 해야겠다. 인정 못 받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성찰하며 고칠 것은 고치되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누구는 나를 무시할지 몰라도 나 역시 여태 쌓아 온 성공 사례들이 많다.
알파벳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 생을 맡아서 3학년이 될 때까지 가르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내가 편해지면서 점차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에 와서 내 교실에 앉아 있었다. 잘됐다 싶어서 수업 전 내 할 일 하는 동안 옆에 끼고서 이것저것을 시켰더니 점점 실력이 올랐다. 실력이 오르니 점점 영어 공부를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 그 학생은 내가 학원을 그만두었던 3학년 무렵에 학교에서도 계속 100점을 받았고 학원에서도 어느 반에 가든지 늘 1등을 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무엇이든 무조건 내 뜻대로 하라며 애가 까불면 빗자루로 때려도 된다고 했다. (물론 당연히 그럴 일은 없었다.)
중학생들 중에도 있었다. 학교 내신을 매번 반타작했던 학생이 내가 맡은 뒤 세 번째 시험에서 90점대를 돌파했고 그 이후로 계속 90점대를 받은 경우도 있었고, 늘 80점대에만 머물렀던 학생들을 가르치며 문법 실수 나는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서 90점대에 진입시켰고 100점을 받아오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그래서 성적이 많이 올라 대형 학원 레벨 테스트를 쳐서 상위권 반으로 간다고 떠나기도 했고, 이제 아무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떠나기도 했다.
내가 성공사례들을 떠올린 것은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게 맞는 환경에서 의욕적으로 하면 충분히 유능한 강사로서 보람 되게 일할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고, 내 능력을 믿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다.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능력 발현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강사들마다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는데, 나의 강점은 학생들을 자세히 관찰해서 각자 성향에 맞게 공부하도록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나와 수업하는 걸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다. 내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독립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방식을 무조건 따라 하고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게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가면서 내 방식을 점차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문득 누에고치가 생각이 났다. 애벌레는 고치에 갇혀 죽은 것처럼 지내야 하는 때가 있다. 그 기간을 버텨 내야 나방이 된다. 누군가 대신 꺼내줄 수 없다. 스스로 나올 때까지 발버둥을 쳐야 한다. 당분간 나를 누에고치에 들어간 번데기라고 생각해야겠다.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날아가는 그날이 올 때까지, 죽은 듯이 누워서 치열하게 싸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