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가운 즉흥성
'한걸음뿅뿅커피' 영업시간 21시 30분까지
'손안에커피한잔' 영업시간 22시까지
'달링커피' 영업시간 21시 30분까지
으잇. 요즘은 늦게까지 하는 커피집이 왜 이렇게 없어. 잔뜩 조바심이 난 채 핸드폰의 초록창에다 카페를 열심히 검색한다. 손님을 데려가고 싶은 예쁜 감성 카페는 이미 저녁에 다들 마감했다. 대형 카페도 전부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어떡하지? 절망하기 직전 투썸플레이스가 나를 살렸다. 외곽 지역에 있는 커다란 3층짜리 투썸플레이스가 자정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 됐어, 좋아. 모처럼 만나는데 투썸플레이스를 가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집 앞에 도착했으니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 내려간다. 저녁으로 먹을 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냉장고에 도로 짱박아 넣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외출복이나 주워 입은 뒤에 쿠션 퍼프로 얼굴을 30번 정도 빛의 속도로 팡팡팡팡 내려친 후였다. 조수석 문을 열고 격렬한 환영의 인사를 마친 후에 보람찬 검색 결과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나서야 립스틱을 톡톡 찍어 바르며 허접한 메이크업을 완성한다.
너무나도 귀중한 토요일 밤에 성사된 번개 약속이다. 대개 계획에 없는 일정이란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고얀 행동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다. 옷가게를 하는 지인 언니는 우리 동네에서 차로 왕복 2시간 가까이 떨어진 곳에 산다. 언니와 나는 대학 시절 처음 만났고 자취방에서 같이 살거나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다. 우리는 성격이나 삶의 방식이 매우 다른 편이지만, 이상하게 취향이나 생각 등이 비슷한 면모도 꽤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때 친하다가도 결국 멀어지게 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주욱 함께해 왔다.
"오늘따라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너무 싫은 거야. 게다가 이 차는 계속 가게 나갈 때만 잠깐 타서 맛이 가려고 하잖아. 그래서 차 운동도 시킬 겸 왔지."
언니는 갑자기 연락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잘 연락했다고, 잘 왔다고 대답했다. 요즘 우리는 이렇게 갑자기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대학 졸업 이후 서로 다른 지역에 살 때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났었는데, 나이 들수록 각자의 삶이 바빠져 시간 맞추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때때로 토요일 밤에 갑자기 만나서 양꼬치 집이나 돼지껍데기 집에서 같이 야식을 먹고, 한물 간 세대(?)가 자주 가는 구역에 출몰하여 막창을 구워 먹고 호수 앞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주인이 문 닫는다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죽치고 앉아서 수다를 떤다. 때로는 바닷가가 있는 인근 도시로 드라이브를 가서 1차로 조개구이, 2차로 치킨, 3차로 바다뷰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은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추억의 싸이월드 비지엠을 열창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은 늘 즐거웠기에 야심 차게 세운 토요일 밤 계획이 어그러진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투썸플레이스에 도착했는데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서 그대로 직진했다. 유턴을 해야 하는데 언니가 갑자기 우회전을 한다.
"에??"
"여기로 가면 왠지 나올 것 같아."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자꾸만 아닐 것 같은 길만 골라서 비집고 들어간다.
"여긴 아닌 것 같은데요?"
"응? 아... 여기로 가면 왠지 나올 것 같았는데. 응?? 뭐야 막혔잖아."
"네, 그리고 우리 갇혔어요."
오르막길 끝 웬 공공기관 건물 앞까지 밀고 올라갔는데, 철문으로 닫혀 있어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길이 좁아서 계속 후진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아니야, 내 차는 작으니까 돌릴 수 있어! 다른 차라면 못 했겠지만!"
언니는 이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 신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핸들을 돌리면서 후진과 전진을 반복한다. 눈앞에 벽이 코 앞까지 턱턱 다가오다 뒤로 물러났다 하는 걸 보고 있자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행동이다. 하긴 나라면 아예 이 오르막길로 진입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차는 돌아섰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아래로 슝슝 내려와 다시 경로로 진입한다.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난다. 오직 감만으로 뜬금없는 길에 무작정 밀고 들어가는 것도 웃기고, 그 좁은 길에서 기어이 차를 돌려내는 것도 웃기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유쾌해졌다.
투썸플레이스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는데 아래층 식당 주인이 우리를 빤히 내다본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우리는 식당 주인에게 의아하다는 눈길을 한 번 던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널찍해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그리 갑갑하지 않았다. 커피가 나오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언니는 옷 판 얘기, 요즘 헬스를 시작한 얘기, 육아로 힘든 얘기, 일상에서 속상했던 얘기 등을 늘어놓았다. 요즘 들어 장사에 대한 노하우를 조금 깨우쳤다고 한다. 그래서 날개 돋친 듯 이것저것을 해보고 싶은데 아이들을 돌보느라 제약이 많아 너무 답답하다고 한다.
언니가 한 얘기는 엄밀히 말하면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내 인생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나와는 직종도 다르고 처한 상황과 삶의 스타일도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와 대화하면 즐겁고 때로는 동기부여가 된다. 나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썰을 듣자 하면 나에게도 신선한 아이디어와 용기가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언니가 치밀함과 엉성함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 앞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은 때로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줄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 언니의 즉흥성은 내게는 없는 모습이다. 갑자기 연락해서 한 시간 후에 만나자고 하고, 낯선 길로 무작정 들어서고, 차를 뺄 때 거침없이 앞으로 훅훅 나가는 모습은 이런저런 생각 많은 내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지만, 동시에 '아하!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물론 언니가 사는 모습을 무작정 따라 하겠다는 게 아니다. 내게 없거나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직면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기발한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남들에게는 별로 털어놓지 않는 부분까지 얘기하게 된다. 그러면 언니는 '해! 그러면 되겠다! 잘할 거 같은데?' 하며 격려를 해 준다. 그러나 그 말은 단지 예의상 던지는 빈말이 아니다. 본인의 낙천적이고 즉흥적인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흘러나온 진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용기가 생긴다. 오늘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했을 힘을 얻었고, 마음이 유쾌해졌다.
자정이 되어 영업이 끝났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투썸플레이스를 나오는데 또 출구를 못 찾아서 약간 헤매다 아무 곳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처음 보는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투썸플레이스 주차장이다. 여기가 주차장이었네. 그럼 우리는 어디다 차를 댄 거지?
"어머, 우리가 차 댄 곳이 백반집 주차장이었나 봐!'
"그래서 주인이 우리를 자꾸 쳐다봤나 봐요."
우리는 웃으면서 주차장을 뛰어내려 갔다. 아래층 백반집 주차장에 언니 차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
"와... 저렇게 큰 주차장을 놔두고 우린 왜 남의 주차장에 차를 댔을까?"
의도치 않게 진상이 된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불 꺼진 백반집을 쓱 쳐다본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런 돌발 상황에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아무렴 어떤가. 제대로 카페를 찾아왔고, 무사히 돌아가면 된 거지. 토요일 밤을 위해 작성한 할 일 리스트는 지키지 못했지만, 당분간 나아갈 동력을 얻었으니 오히려 좋다. 우리의 즉흥적인 만남은 오늘도 대성공이었다.
(*맨 처음 카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