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 먹는 좀비

박카스도

by JEMMA

여름이 갔다.


이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여름이 아직도 안 가고 있다. 환기를 하고 싶어서 더운 열기를 무시하고 한 시간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습도가 86이 되었다. 제습기가 물이 다 찼다고 삑삑거린다. 여름아, 우리 좋았잖아. 이제 좀 가라. 내년에 보잔 말이야.


귀찮고 더워서 가스레인지를 켜기 싫지만 마음먹고 두부를 부친다. 두부에 소금을 살짝 뿌려 부쳐서 보온 도시락에 겹쳐 쌓고 홍게 간장을 약간 부은 후 뚜껑을 꽉 닫는다. 이러면 밤에 먹을 때 두부에서 물이 빠져나와서 국처럼 되어 있는데 그 국물이 뜨끈뜨끈한 게 맛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외치는 듯한 땡볕에 인상을 찌푸리며 길을 걷는다. 시장에 새로 생긴 닭꼬치 집이 있는데 언제 가보나. 물끄러미 목을 빼고 현수막 광고를 읽으며 언제 갈 시간이 날지 머리를 굴린다. 아파트를 따라 길에 주욱 늘어서 있는 만두집, 빵집, 치킨집, 교습소, 분식집 등을 차례로 지나친 후 광장으로 들어선다. 평화로운 한낮에 어떤 이는 걸음을 재촉하고, 어떤 이는 물건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고, 어떤 이는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느라 광장은 오늘도 북적인다.


직장에 도착해 건물에 들어서기 전 편의점에 들른다. 감자칩을 사야 한다. 작년 겨울부터 단단히 꽂혀버린 레이즈 트러플맛 감자칩은 필수템이다. 정신은 놓고 가도 감자칩은 들고 가야 한다. 박카스도 같이 샀다. 어제 잔 게 아니라 오늘 자고 오늘 일어난 좀비는 자양강장을 하지 않으면 분노 조절을 잘할 수가 없다.


불 꺼진 건물에 들어서서 도어록을 해제하고 교실마다 돌아다니면서 불을 킨다. 마지막으로 교무실 불을 켜고 자리에 털썩 앉아 박카스를 원샷하고 감자칩을 뜯어 우적우적 먹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전 카누에서 갈아탄 루카스나인 두 개를 텀블러에 넣고 물을 채운다. 노트북을 켜서 이런저런 사이트에 로그인을 한다. 시간표를 살펴보고 시험지를 만들고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나의 직장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 일주일에 한 번만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일주일에 세 번 발행을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 굳은 뇌를 풀 겸 그동안 쌓인 이야기도 기록할 겸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이제 쌓아뒀던 지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다 했고, 요즘 내 일상은 일, 집, 일, 집만 반복되고 있기에 쓸 얘기가 학원 얘기 밖에 없다. 그러나 글 쓰는 시간까지도 학원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다. 이제 가끔씩 쓸 만해서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공부를 병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수필 작가들의 글을 더 많이 읽고, 내 글의 윤문과 퇴고를 더욱 공들여할 생각이다. 오십이 되기 전에 등단하고 싶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횟수가 줄어들 예정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발행을 하든 하지 않든, 글은 매일 써나갈 것이다.


이제 일해야 한다. 수업 들어가기 전에 감자칩 한 번 더 먹어야 한다. 시시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일이 적진 않다. 이 시기를 무사히 지나가자고, 헛되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헛되이 살아가지 말자고, 박카스와 감자칩을 섭취하여 생기가 잠깐 돌아온 좀비는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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