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학생들과의 '밀고 당기기'는 오늘도 어김없이 계속된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적정선을 지키며 관계를 맺는 게 무척 힘들었다. 싹싹하고 나를 잘 따르던 학생이 별안간 한마디 인사도 없이 퇴원해버리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장난도 잘 치고 잘 웃던 학생의 학부모님에게서 그동안 아이가 힘들어했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매사에 뚱하고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꾸역꾸역 다니면서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속을 뒤집어놓던 어떤 학생은, 내가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해서 교실에서 나가라고 쫓아냈는데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등원하였고 내가 그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도 계속 그 반에 있었다. 내가 좋다며 매일 졸졸 따라다니며 수업 시간에도 귀찮을 정도로 엉겨 붙던 아이가 시험이 끝난 후 내가 다른 학교만 더 많이 봐줬고 나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며 원장님에게 다이렉트로 컴플레인을 걸기도 했고, 맨날 어둠의 아우라를 풍기며 나를 꼬나보던 반항기 가득하던 아이가 부담스러워 말도 잘 안 걸고 일절 터치도 하지 않고 혼내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내가 중1 어린 병아리들 대하듯이 '야, 이 똥강아지야!'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멱살(?)을 잡고 흔들었더니 그때부터 순한 댕댕이로 변해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학생들을 대하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다. 마음을 너무 많이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관심으로 방치하지도 않는 적정선을 감으로 깨달아서 예전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예전에 아이들 다루는 게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떤 원장님이 말하기를 아이들은 미숙한 강사와 능숙한 강사를 귀신같이 알아보고 만만한 선생님을 얕잡아본다고, 꼭 원숭이 떼들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대로 세월이 지나 경력이 쌓이자 20대 초보 강사들이 다루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내게는 대부분 덤비지 않고 기싸움에서도 일단 밀리지 않는 위치가 되어, 예전보다는 견딜만하다.
예전에는 학생들과 연락처와 SNS를 공유하며 수업 외에도 학생들을 만나서 함께 놀러도 다니고 서로 학원을 그만둔 후에도 따로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는 나도 다른 강사들보다 학생들에게 더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수업 때 간식도 많이 사주고 시험을 잘 치거나 말을 잘 들으면 치킨, 피자, 햄버거 같은 더 비싼 음식들도 사주었다. 때로는 탁구장이나 노래방, 영화관에도 데려갔다. 쿠키런이나 모두의 마블 같은 핸드폰 게임도 같이 했다. 어느새 나는 학원에서 제일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었고 내 반에서 수업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학생들은 다른 강사들이나 원장님에게 직접 말 못 할 얘기를 나에게는 털어놓았고, 누가 누구랑 사귄다던지 하는 자기네들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 얘기도 다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서 학생들의 환심을 사도, 한순간에 관계가 끝나버리곤 했다. 성적이 떨어져서 사이가 멀어질 때도 있었고, 반 안에서 학생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져서 반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고, 학부모님이 나의 또는 학원 전체의 수업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 또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학생이 사라져 버릴 때도 있었다. 학생들과 너무 친한 게 오히려 수업 분위기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너무 전력을 다하니 관계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져 실망감과 마음의 상처도 더 커졌다. 그리고 서서히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인기를 얻기보다는 더 어려운 선생님이 되어 거리감을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이도 들어가니 더 젊고 에너지 넘치는 강사와 경쟁하기도 슬슬 지쳐갔다.
그러나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나는 변해갔다. 몸이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했으니까. 열받게 하는 학원과 학생들 때문에 흑화가 가속화되었다. 학생들의 인기를 사려고 여러 가지 일 벌이는 걸 그만뒀다. 리액션도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했다. 수업도 더 이상 한 명 한 명 아이들 비위 맞추며 달래 가며 하지 않고, 누가 봐도 토 달기 힘든 커리큘럼을 짜서 그대로 밀어붙였다. (물론 무조건 밀어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정하기도 했다.) 내 수업 방식이 맞지 않아 나간다고 하는 애들은 쿨하게 보내고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전에는 학생의 성적이 5점이라도 떨어지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거의 1주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했지만, 점점 결과가 꼭 내가 노력을 들인 만큼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비해 주었는데 시험을 망칠 때도 있고 희망이 없어서 적당히 했는데 대박 나는 경우도 있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시험을 못 칠 때도 있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은 시키는 것들을 제대로 안 하고 맨날 탱자탱자 놀아서 내게 온갖 스트레스를 안겨주다가 시험에서 95점, 100점을 받아 오기도 한다. 학생들은 시험을 못 쳐서 나가기도 하지만 잘 쳐도 나가기도 한다. 쉬고 싶다고 나가고, 시험 대비가 너무 힘들었다는 이유로 나가기도 한다. 학원이 너무 재미없어서 그만두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두기도 한다. 셀 수 없는 많은 이유로 나간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학생들의 퇴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청바지나 면바지에 민자 티셔츠를 대충 걸치고, 쿠션만 대충 톡톡 두드리고 출근한다. 간혹 아이라이너나 조금 진한 립스틱이라도 바르면 학생들이 오늘 왜 화장을 했냐고 선 봤냐고 묻는다. 나는 이제 대꾸할 힘도 없어서 손을 휘휘 내젓는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교실에 들어가라는 뜻이다. 언제는 학원에 대학을 갓 졸업한 예쁜 여자 선생님이 와서 남자애들이 난리가 났었는데, 내 수업 때 졸 때마다 예쁜쌤 우리 반에 못 들어오게 할 거라고 협박해서 말을 잘 듣게 했다. 그러자 애들이 필사적으로 졸음을 참았다. 그 모습이 예전 같았으면 상당히 짜증이 났을 테지만 이젠 그냥 웃겨서 웃겼다.
다음은 늙어버린 강사와 학생의 대화들이다.
"선생님, 오늘 왜 화장했어요?? 입술 왜 빨개요?? 이상해요!! 이상해요!! 이상해요!!"
"응, 니 점수가 더 이상해. 오늘 재시입니다."
"잘못했어요 선생님..."
"선생님, OOO이 저 빡치게 했어요, 혼내주세요. 뚝배기(?) 깨 주세요."
"왜..."
"제가 아까 그냥 서 있었는데요, OOO이가요, #$%*#%&#^#&%*..."
"야, 저기 예쁜쌤 왔다. 저기 가서 놀아."
"선생님, 슈붕이 좋아요, 팥붕이 좋아요?"
"붕어빵은 팥붕이지, 마!"
"와... 옛날 사람이다."
"붕어빵 다시 내놔."
(도망가면서) "옛날 사람! 옛날 사람!"
(옆 학생에게)"야, 쟤한테 재시라고 전해."
(옆 학생 왈) "오, 나이스!!!"
중요한 것은 나의 진심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진심 어린 마음은 대부분 통한다. 비록 흑화 해서 예전처럼 상냥하지는 못할지라도 선생으로서 할 도리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적어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랑 끝까지 맞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렇게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으니 털어버려야 한다.
내가 자주 쓰는 말 중에 '까불지 마세요'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말이 있다. '저런'이다. 이 말은 과도하게 리액션해서 학생들이 티엠아이를 더욱더 늘어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말이기도 하고, 내가 적정선을 지키면서 학생들과 지낼 수 있는 일종의 방패 같은 말이다. 화내거나 잔소리하며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너무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게 관계를 유지하려는 나의 의지가 담겨있는 말이다. 이 말의 사용 예시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 저 할 말 있어요."
"아뇨, 말하지 마세요."
"학원에 좋아하는 누나 생겼어요."
"누군데 누군데 누군데???" (급 관심)
"OO누나요. 어제 가만히 있는데 누나가 저를 발로 찼어요. 이거 그린라이트 맞죠?"
"저런..."
"선생님, 저 이번에 국어 조졌어요."
"네, 알겠습니다."
"기가도 조졌어요."
"......."
"과학, 도덕, 사회도 조졌어요."
"저런... 조졌네."
"선생님, 발렌타인 데이에 남자친구한테 초콜릿 만들어 줬는데 허접하다고 뭐라 했어요. 화나서 헤어졌는데 제 친구랑 사귄대요."
"오... 저런. 공부로 잊자. 84쪽 펴."
"선생님, 멧돼지가 뭐 먹는지 알려주세요."
"몰라... 멧돼지는 다 먹지 않나?"
"아무거나 줘도 돼요? 밥 줘야 해서..."
"멧돼지가 집에 있어??"
"네, 우리 누나요."
"저런..."
"저 방학 동안 학원 쉬어요."
"왜, 무슨 계획 있어?"
"운동하려고요."
"무슨 운동?"
"헬스요."
"오... 헬스장 같은 거 다니는 거야?"
"아니요, 집 주변 산스장이요."
"음... 그렇구나."
"학원 다니면 근손실 와서 안 돼요."
"아하... 저런..."
"선생님, 제 방학 계획 알려드릴게요."
"아니요, 알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요, 알려드릴게요."
"아니요, 말하지 마세요."
"말할게요, 말할게요!"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전 말하고 싶어요, 제발요."
"뭔데..."
"일단 11시에 일어나서요. 게임을 한 판 때리고요, 밥을 먹어요. 그리고 학원 숙제를 1시간 정도 하고요, 헬스를 하고요, 학원에 갔다가요, 밥을 먹고요, 유튜브를 새벽까지 때리고..."
"저런... 그만해라 이제."
"유튜브가 질리면요~"
"저런!!!!!!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말을 하고!!!" (가끔 실패해서 평정심 잃음)
"넵..."
나와 저런 대화를 나눈 학생들 중 일부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관계는 질질 끌다가도 갑자기 끊어진다. 언제까지나 같이 부대끼며 지낼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예전에는 연락처를 공유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이런 허무한 사이에 너무 많은 애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더욱 허무해진다. 게다가 과한 열성은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 자기 욕심과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무하지 않은 사이가 되기 위해, 허무하지 않은 이별이 되기 위해 적정선이 필요하다. 의무와 도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하되, 성취욕과 기대치에는 쿨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알쏭달쏭한 세상사에 통수를 맞고 분조장이 올 지도 모른다. 내가 잘 하였다면 어떻게든 증명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빡친 마음을 스르르 흘려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