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삶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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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어릴 시절 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책벌레'였다. 어디를 가든지 늘 한두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전혀 들리지 않아서 여러 번 내 이름을 외치다가 툭툭 쳐야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곤 했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살았고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월급을 받으면 가족들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외식을 했다. 외식할 때마다 주로 가던 경양식 집은 돈가스, 비후가스, 함박스테이크를 팔았고 하얀 테이블에 냅킨과 포크, 나이프가 그럴듯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돈가스를 시키면 수프가 먼저 나왔고 식후에는 주스 같은 후식도 나왔는데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어도 기분내기 딱 좋았다. 그런데 그 집은 냉면이나 한정식 같은 다른 메뉴들도 많이 팔았다. 그래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 식당에 가는 걸 제일 좋아했다.


그 식당은 다양한 메뉴 외에도 한쪽 구석에 책꽂이와 책 읽는 공간이 있었다. '코믹챔프' 같은 만화 잡지부터 종교 서적까지 다양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내가 그곳을 좋아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책을 골라서 읽고 밥을 먹으면서도 읽었다. 최대한 빨리 밥을 먹고 기다리면서 또 읽었다. 우리 가족 외에 다른 지인들과 함께 간 날들은 특히 좋았는데, 어른들이 식후에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동안 책을 더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덜 읽었는데 가야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나오면, 다음 외식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다시 왔을 때 한달음에 달려가서 그 책을 다시 집어오곤 했다. 그 식당은 이제는 없어졌지만, 거기서 돈가스를 먹고 책을 읽었던 것은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외식을 하고 나면 아빠는 언제나 나를 서점에 데려가서 책을 두세 권씩 사주셨다. 나는 소설을 좋아해서 세계문학전집을 그때마다 사 모았다. 산 책은 그 당일에 전부 읽어버렸다. 아빠는 그렇게 빨리 읽냐며 아깝다고 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는 세계문학전집을 나만의 순서로 꽂아놓고 계속 돌려가며 읽었다. 특정 책만 다시 읽는 게 아니라 차례를 정해서 모든 책을 계속 다시 읽었다.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 그리고 세 번째 읽을 때가 달랐다. 읽을수록 새로운 점들이 보였고 등장인물의 행동이 더 잘 와닿았다.


학창 시절 내 방 책꽂이엔 그렇게 아빠가 외식할 때마다 조금씩 사 주시던 세계문학전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독서를 멀리했다. 이때쯤부터 내 성격이 많이 변했다. 아예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할 만한 정도였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싶은 열망이 강해서였던 것 같다. 말수도 없고 집에 틀어박혀서 혼자 책 읽는 걸 제일 좋아했던 나는 점차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거나 이것저것 다른 놀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소설 읽기는 따분했던 내 성격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책벌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 방 한쪽 벽을 전부 채운 책들을 보고 깜짝 놀라며 '너 이 책 다 읽었어?'라고 물어보곤 했다. 다 읽었다고 하면 믿기 힘들다는 듯 '엥~?' 하며 이상한 리액션을 했다. 책 읽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낯설었던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씩을 제외하고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영문학 수업을 싫어했다. 내가 그나마 흥미 있었던 수업은 음운론, 음성학, 신택스, 번역 수업 같은 것들이라 그런 과목만 집중적으로 들었고 영문학 종류는 필수 과목 외에는 듣지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갑게 이런저런 영미 문학과 작가들을 언급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하는데, 영문학 수업은 제대로 들은 게 없다 보니 별로 아는 게 없어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웬만해서는 내 전공을 얘기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후 가끔씩 독서를 할 때면 소설, 수필, 시는 무조건 걸렀다. 허구의 이야기, 남들 사는 모양, 타인의 사색에 관해서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글 쓰는 것은 좋아했지만 남이 쓴 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변했던 걸까? 삶에 찌들어서였을까. 급격히 흥미를 잃은 삶이 따분해서였을까. 권태와 염세, 욕구불만 한가운데서, 나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행위들을 귀찮은 파리 쫓아내듯 휘휘 저어 멀리 날려버렸다. 내 영혼을 고상하게 하는 모든 설레는 것들에 거부감이 들어 전부 먼지 털듯 털어버렸다. 그중 하나가 독서였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하게 살자. 회색 빛깔로, 이도 저도 아닌 색으로. 어차피 재미없는데 핑크색일 필요 있나. 민트색일 필요 있나.


분명 대충 살지는 않았다. 뭔가 안달복달하면서 애를 썼는데, 그러나 돌아보니 내가 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다 이렇게 기력을 다 써버리고 번아웃이 되었는지. 이젠 뭔가를 위해 마음을 다잡고 싶은 의욕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강풍 속에서 촛불을 켜려고 애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던 중 문득 예전 내 방의 세계문학전집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털어버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꿈에 예전에 살던 집이 자꾸 나온다. 그 마당. 그 대추나무. 그 평상. 그 집. 내 방. 그리고 알았다. 예전의 내가 여전히 나였고, 예전에 사랑하던 것들이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것임을. 나는 변하지 않았고, 변한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사 모은 세계문학전집은 그 집을 떠나올 때 처분했다. 그 집엔 아빠의 서재가 있었다. 아빠의 서재는 수많은 책들이 사방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아빠는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다. 아빠는 생전에 수필 두 권과 시집 한 권을 냈다. 별로 흥행하지는 못했고 집에는 남은 책들이 쌓여 있어서 손님이 올 때마다 아빠는 한 권씩 사인을 해서 책을 나눠주곤 했다. 아주 가끔씩 멀리서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다. 아빠의 책을 읽고 감명받아 찾아왔다고 했다. 내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귀국 직전 졸업여행으로 서부 여행을 가야 했는데 경비가 부족하여 혼자 숙소에 남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신 줄 모르고 만나보려고 찾아온 어떤 사람이 아빠가 돌아가셨고 큰딸이 미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내 졸업 여행 경비 1,300달러를 대준 적이 있다. 여행 얘기는 꺼낸 적도 없는데, 곧 귀국한다고 하니 그러면 오기 전에 여행도 가고 할 텐데 돈이 들지 않냐며 주셨다고 한다. 정말 놀랐지만 엄마가 얘기가 다 끝났으니 그냥 돈을 받으라고 했다. 그때 나는 생면부지의 작가가 쓴 글을 읽고 생면부지의 작가의 딸의 여행 경비를 대 준다는 게 어떤 마음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분 덕분에 평생 추억으로 남을 미국 서부 여행을 잘 다녀왔다. 그분께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직 아빠의 수필과 시를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이제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수필과 시가 궁금해졌다. 마음을 열고 읽으니 감동이 되기도 했고 이런 삶과 저런 삶에 대해 생각해 보며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수필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열심히 읽어서 누군가의 사색의 깊이를 나의 사색에 반영하여 나 역시 깊이 있는 수필을 쓰고 싶다.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최근 읽은 소설은 이디스 워턴의 '순수의 시대'이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소설의 해설 부분을 읽으니 내 머리로는 아무리 쥐어짜 내도 나오지 않을 감상과 대조되는 나의 무지가 느껴진다. 그간의 공백기를 어서 메꿔 넣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서글프기도 하지만 문득 달갑기도 하다. 내가 나이 들지 않았다면 어린 날의 향수도 없었을 것이고, 어린 날의 향수가 없었으면 잃어버렸던 옛 취미가 내 영혼을 다시금 흔들어 깨운다는 것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허구라는 이유로 소설을 무시하고 감성팔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간절한 삶의 성찰을 멸시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깨닫지 못했더라면 앞날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노시보(Nocebo)를 문득 떨쳐버릴 그 무언가는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책보다 브런치가 더 재밌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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