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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Jun 29. 2022

내게 제일 힘든 일. 아무것도 안 하는 일.

또 고질병이 도졌다. 연례행사 허리 통증. 작년에 119를 불러 응급실에서 모르핀까지 맞은 이후 필라테스를 통해 나름 강력한 허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운동을 끊은 후 허리에 최악이라는 자세를 고집하며 집과 회사에서 지내온 결과 또 스물스물 허리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년간의 요통을 통해 느낀 건 '아프고 나서는 늦다. 느낌이 올 때 병원을 가자.'


허리가 아플 땐 두 가지 옵션이 있다. 첫 번째, 척추 전문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 맞고 도수 치료받기. 두 번째, 한의원에서 침 맞기. 보통은 첫 번째 옵션을 주로 선호했는데 왜냐면 효과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번은 거의 기다시피 해서 병원에 갔다가 주사 맞고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하지만 요즘은 두 번째 옵션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스테로이드 주사는 맞으면 맞을수록 효과가 약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확실히 처음 맞았을 때 효과가 제일 좋았고 마지막 맞았을 때는 허리를 짚고 주사실에 들어갔다가 간신히 허리를 펴고 올 정도로 효과를 못 봤다.


각설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가만히 10분 정도 침을 맞은 부위에 열치료를 하는데, 자꾸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내 손에 있다가 잠이 들기 직전까지 내 손안에 있는 놈이니 치료실에서도 내 손을 떠날 수는 없다. 그러다 문득, 심신의 평안을 위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진짜 '가만히' 있어봤다. 예전엔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잡생각들이 '상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재밌고 짜릿한 순간들 중에 하나였는데, 간만에 가만히 잡생각들을 두고 보자니 이제는 '망상'처럼 느껴져서 살짝 고통스러웠다. 딱히 내가 부정적인 잡생각들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얼 먹을까? 어디 갈까? 어제 뭐했지? 같은 일상적은 잡생각일 뿐이었다.


그 잡생각들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어떤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언젠가부터 '생각하기'를 멈췄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따져보면 내 일상에서 내가 진정으로 '가만히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눈을 뜨면 폰을 열어 SNS랑 커뮤니티, 메신저를 확인하고. 거실에 나가 티비를 틀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고 시간을 때우다가 시간이 되면 음악을 틀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현관문을 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폰에 있는 게임을 열어 아주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동안 스낵 게임을 하다가 차에 시동을 걸고는 팟캐스트를 켠다. 50분 남짓의 출근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어제 하루 동안의 시사 뉴스를 들으면서 그 와중에 간간히 차가 막히면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했던 스낵 게임을 틀어 틈틈이 스테이지를 격파해나간다.


진짜 내 일상의 큰 덩어리들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비디오 콘텐츠, 자잘한 덩어리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크고 작은 커뮤니티에서 글 읽기, 자잘한 시간들은 스낵 게임으로 점철되어 있고 진짜 정말로 리얼리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깨어있는 시간 중에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있거나 듣고 있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상태. 심지어 요즘은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 역사 채널 같은 걸 틀어놓고 듣다가 잔다.


이러다 보니 침 치료를 받는 1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게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거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꼬.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사는 인간 머릿속에서 두드려도 대답 없는 굳게 닫힌 문 안에서. 늘 바깥의 자극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만 했지 내 안의 자극들을 제대로 발산시켜본 적이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다.


'명상'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머릿속의 생각들이 공기 속을 두둥실 떠다니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거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이제 바깥의 자극을 한껏 흡입하기보다는 내 안의 자극들이 올바르게 밖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좀 항상 뭔가를 하고 있으려고 하지 말고 제발 좀 아무것도 안 해도 스스로 좀 편안한 상태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무것도 안 하기. 아, 그런데 벌써 브런치에다가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하기는 실패한 건가? 아니지. 이거야말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빼내고 있는 노력이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중에 제일로 가는 아무것도 안 하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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