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나도 잘하는 것
결혼을 하기 전에도 나는 요리나 살림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에게는 아직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는데) 결혼을 앞두고 걱정 서린 마음에 서점으로 달려가 집안 살림에 관한 책을 구매한 적이 있다. 표지만 보고 끌려서 구매했는데 막상 내용은 부엌살림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을 감성적인 에세이로 풀어내는 내용이었고 16,000원 치의 실망감을 안고 1년도 안되어서 중고서점에 내놓았다.
살림을 글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어리석다.
친정 엄마가 항상 하소연하시던 부분이기도 했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데, 엄마가 주방에서 뭘 하고 있으면 얼씬거리기라도 해야 뭐라도 가르쳐 줄 텐데, 자기 방에만 콕 박혀있으니…라는 반복되는 꾸지람. 이제 와서 돌아보면, 회사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은근슬쩍 엄마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철부지였고, 다만 한 가지. 서른이 넘도록 독립 가구를 꾸리지 못했던 탓이지만, 엄마의 온통 완벽한 살림살이에 초짜 중의 초짜인 내가 감히 끼어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또한 진짜 나의 속마음이다.
그렇다면 결혼 후 내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주방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남편 담당. 모처럼 여유 있게 식사 준비를 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주말이면, 남편이 요리를 하고 나는 상을 차리는 매우 사소한 부분을 담당할 뿐이다.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오던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집에서 밥솥으로 ‘그릭요거트’를 만들어서 먹고 있는데 너무 만족스럽고 그릭요거트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즈음 구독 중인 뉴스레터에서 ‘집에서 간편하게 만드는 그릭요거트’라는 기사를 본 것이다. 아, 그래?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 자주 가는 대형 마트에서 수제 요거트 기계를 특가 판매한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의 계시인 것 마냥 연달아 여기저기서 ‘그릭그릭그릭 요거트’를 접하고 나니,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특가 판매 중이던 요거트기계를 구매했고, 뉴스레터에 나온 기사를 정독하며 첫 번째 시도만에 꽤나 먹을 만하게 만들어 냈다. 유청을 빼는 단계에서 시간을 많이 들인 바람에 예상보다 훨씬 꾸덕한 질감을 가진 첫 그릭요거트. 아무렴 어때… 감사한 마음으로 갓 구운 베이글에 한 스푼 얹어서 남편에게 선보였다. 반응은 대성공!
그 길로 우리 집 부엌 한편에서 요거트 기계가 이틀에 한번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를 요거트 공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요거트 공장에서 플레인 요거트 한 번, 유청을 빼주는 단계를 거쳐서 그릭요거트로 한 번 번갈아 생산하는 동시에 아침, 저녁마다 디저트로 맛있게 먹고 있다.
요거트 공장이 가동된 지 한 달이 넘었고, 친정 부모님께도 만들어서 한 병씩 드리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릭요거트의 토핑을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다음 단계는 창업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도 한다.
사소하지만 하나라도 내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이렇게 알아간다. 거창한 요리도 아니고 살림에 보탬이 되는 그 무엇도 아니지만,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디저트를 내가 전담한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지고 별것 아닌 일에 일종의 책임감도 든다.
그렇게, 나도 잘하는 무엇 하나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