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직장 생활
이 거대한 빌딩은 예전에 방영했던 tvn의 드라마 ‘미생’ 촬영지였다.
서울역 광장을 내려다보며 이 빌딩 옥상에서‘힘듦’을 토로하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스틸컷과 이 근처에서 70년대 직장 생활을 하셨던 회사 유니폼을 입은 엄마의 흑백 사진이 겹쳐서 떠올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면접부터 통과한 숨은 능력자였다.
#출근
저 멀리 서울의 끝에서 안 그래도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서울역까지 출근하는 것은 고되었다. 아침밥을 못 먹고 출근하는 날이 부지기수. 버스 여차장의 엄격한 통제하에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겨우겨우 서울역 앞에 내려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자마자 부리나케 구내매점으로 달려가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로 빈속을 채웠다.
#회식
허구한 날 회식이었다. 그때의 회식은 빠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상무님, 내일은 부장님과, 택시를 여러 대 잡아서 조금 멀리 나가기도 하고, 가까운 곳은 걸어가고. 다행히, 1차가 끝나면 눈치껏 자리를 뜰 수 있었고, 다음 날 출근해 보면 어제 회식에 참석했던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지만, 아침부터 자리마다 전화가 불이 났다(어젯밤 차가 끊겨 퇴근을 못한… 남편을 찾는 부인들의 전화).
#퇴근
퇴근길, 사무실 빌딩 지하 유명 양장점에서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들의 옷을 맞췄다. 친구들과 종종 회사 근처 제일 좋은 양식집에서 만나 저녁을 했고, 가끔이지만 호텔 커피도 마셨다.
엄마의 출근/회식/퇴근.
요즘의 직장인처럼 반복되는 일상인 점에서는 매일반이지만, 요소요소 그 당시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어서 그녀의 회사 생활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친정에 간다. 그 시절 얘기를 더 들려달라고 졸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