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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공부에 대한 다른 관점

by 만석맘 지은

가족 여행이 무단결석?


가을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뉴욕 여행을 떠났다.

방학 시작 며칠 전 비행기표가 저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임선생님께 현장 체험학습서를 제출하면 출석이 인정되기 때문에 하와이에서도 같은 방식일 거라 생각했다. 영어가 서툴러서 아이를 통해 가족 여행을 간다는 내용의 편지를 담임선생님께 전달했고, 선생님도 별다른 말씀 없이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해 주셨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행정실 카운슬러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결석할 때는 반드시 오피스에 전화해야 합니다. 장기 결석은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카운슬러에게 연락하세요."


담임선생님께 미리 알렸음에도 우리 아이들은 '무단결석' 처리가 되어 있었다. 혹시 아이의 출석에 무관심한 부모처럼 보였을까? 순간 당황스러웠다.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출석을 체크하지만, 하와이에서는 학교 행정실(오피스)에서 지각과 결석을 관리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라도 오피스에 따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무단결석이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 담임선생님께 다시 문의하자, 친절하게 오피스에 대신 연락해 주셔서 결석은 면했다. 하와이에서는 가족 여행이라도 결석은 결석이었다. 단, 사전에 학교 측에 알린다면 '익스큐즈(excused)'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익스큐즈 결석이라 해도 10일 이상 등교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등록이 취소될 수 있었다. 미국 영주권자인 친구네가 그랬다. 아이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가족이 한 달간 한국에 다녀왔는데, 익스큐즈 결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학교 등록이 취소되었다. 재등록을 해야 했고, 같은 반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만약 이사라도 하게 되면 같은 학교에 다시 입학하는 것도 불가능할 수 있었다. 교육과 행정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고, 출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인사가 낯설게 들리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하와이 교육은 공부에 대한 관점 자체가 조금 달랐다.

내 친구가 아이의 상담을 위해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학습 내용, 숙제, 시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아이에게 시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정색하며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는 흔한 인사말이지만, 선생님은 아이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굳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이 어색했던 것 같다. 성적과 학업 성취만큼이나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건강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


학교에서는 읽기와 글쓰기를 특히 강조했다. 선생님은 좋은 책을 추천해 주기도 했고, 때로는 자신이 소장하던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전문 사서가 상주하며 체계적으로 책을 관리했다. 책을 많이 읽는 학생들에게는 상을 주었고, 독서 행사를 열어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단순한 지식 습득보다 인성과 독서 교육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때때로 수학 숙제보다 감정 조절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관한 숙제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화를 다스리는 몇 가지 단계'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 같은 주제로 부모와 함께 대화한 뒤, 내용을 정리해 제출하는 숙제가 있었다.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와 가치관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용기를 격려하는 문화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밴드와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다. 아이는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맡았다. 처음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몇 달간 연습한 결과 그럴듯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순간은 아이들의 피아노 독주 무대에서 찾아왔다.


첫 번째 연주자는 초급 수준의 실력이었는데도 무대에 섰다.

'이 정도 실력으로 독주 무대에 나온다고?'

순간 놀랐지만, 우리 아이가 한마디 했다.

"이번 학기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 저 정도면 잘한다."

문득, 우리는 실력이 뛰어나야만 무대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두 번째 연주자 무대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연주자가 연주 도중 멈춘 것이다. 정적이 흘렀고,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데 아무도 나무라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기다렸다. 아이는 침착하게 다시 연주를 시작했지만, 같은 부분에서 또 멈추고 말았다. 연주가 도중에 멈췄지만, 비웃거나 야유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다시 도전한 용기를 응원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결과보다 과정, 작은 성공도 축하하는 문화


하와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쉽게 위축되지 않도록 작은 성공도 적극적으로 칭찬했다. 학업뿐만 아니라 무대 경험, 감정 표현, 관계 맺기 등 인생 전반에서 자신감을 키울 기회를 제공했다.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장점을 발견해 키워주는 문화였다.

심지어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피드백보다 "이 점이 정말 좋다"는 칭찬이 많았다. 부족한 점을 채우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영어를 배우러 떠난 유학이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태도와 가치를 배웠다. 출석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 교육이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과 태도를 길러주는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실력 못지않게 자신감과 용기도 중요하다는 점.


하와이에서 배운 것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앞으로도 힘차게 도전하며 살아갈 아이에게 중요한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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