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등학교 ELL 마지막 수업

감사하고 슬펐다

by 만석맘 지은

학부모 초청 행사와 테스트 결과


5월 말이 되자 학년이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이 듣던 ELL(English Language Learner) 수업에서 학부모를 초대해 아이들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작은 학교라 참석한 가족은 다섯 팀 정도였고,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나머지는 주로 남미계 부모들이었다.


“부모님들께 이 프린트물을 나눠줄래?”

중국계 찡 선생님은 발표회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이름을 하나씩 불러 참여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원어민이 아닌 학생들은 ELL 과정을 졸업하려면 6.0점을 받아야 해요. 보통 1년에 1점씩 상승한다고 보고 5~6년을 목표로 합니다.”

ELL 테스트 결과도 받았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다. 한국에서 특별히 영어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하와이 학교에 다닌 지 겨우 5개월 되었을 뿐이었다. 첫째 아이의 듣기 점수는 6점 만점에 5.8점이었다. 6점이면 ELL 수업을 종료할 수 있는데, 또래 수준의 듣기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였다. 선생님은 단기간에 이런 성적을 받는 것은 아주 뛰어난 성과라고 칭찬했다. 한국에서 영어 책을 많이 읽고 DVD를 자주 봤던 것이 도움이 된 듯했다. 그런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둘째도 읽기 점수가 높아 놀랐다. 알파벳조차 제대로 몰랐던 아이였기에 더욱 신기했다. 신이 난 아이는 방학 동안 학교 교재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잘 해내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섀런과 에이미는 똑똑해서 2년 안에 ELL을 졸업할 거예요.”

빨리 ELL 수업을 끝내길 바라는 내 마음을 읽으신 듯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는 2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지만, 정말 선생님의 예언대로 두 아이 모두 2년 뒤 ELL을 졸업했다.


모국어는 중요해


찡 선생님은 항상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많은 한국 부모들이 아이의 영어 실력을 높이려 집에서도 영어만 쓰게 하지만, 꼭 모국어를 함께 사용하라고 당부하셨다. 모국어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귀한 선물이며, 부모가 신경 쓰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책을 읽어주면서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면 뇌가 더욱 활발히 발달하고 어휘력이 풍부해진다고 하셨다.


ELL 수업 방식


ELL 수업은 정규 수업 시간 중 아이들을 따로 불러 진행되었다. 수업 도중 혼자만 빠져나와야 해서 아이들이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아이들은 영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거의 1:1 수업으로 이루어졌으며, 선생님은 개별 학생에게 집중해 세심하게 지도했다. 한국의 학원에서도 받을 수 없는 수업이었고, 게다가 무료였다.


미세스 티 선생님과의 추억


첫째 아이의 ELL 선생님은 미세스 티였다. 언제나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말을 걸어주셨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아이에게 개인 이메일을 알려주며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어느 날, 일본 슈퍼 돈키호테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는데,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는 지난 학기에 최고의 시간을 보냈지?”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누군지 몰라 멋쩍게 헤어졌는데, 아이가 늘 좋아한다고 했던 티 선생님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감사 인사라도 제대로 했을 텐데 아쉬웠다. 이후 선생님은 건강 문제로 미국 본토로 떠나셨고, 남편과 사별하신 터라 더욱 안타까웠다. 아이를 각별히 챙겨주셨는데, 더 많은 감사를 전하지 못해 마음이 쓰였다.


찡 선생님의 따뜻한 지도


둘째 아이의 선생님은 찡 선생님이었다. 손주가 둘이나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셨고,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했다. 웬만한 장난꾸러기라도 화를 내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듬어 주셨다. 엄마를 떠나 할머니와 하와이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너는 똑똑한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아쉬워.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정말 잘할 수 있어.”라며 따뜻하게 응원해 주셨다. 인상을 쓰는 법 없이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멀리서부터 “미세스 찡!” 하고 반갑게 불렀다.


작지만 알찬 학교의 행운


하와이의 ELL 수업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매일 1:1로 친절한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찡 선생님은 예산 부족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해 안타까워하셨다. 처음에는 모든 학교에 이런 정규 과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활성화된 곳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수요 부족이나 예산 문제로 ELL 수업 자체가 없었다. 실제로 친구 아이는 하와이에 온 지 7개월이 지나도록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 시간 내내 멍하니 있었다고 한다. 결국, 수업 참여가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친구가 학교에 불려 갔고, 장황하게 설명을 한 후에야 오해가 풀렸다. 작은 학교였지만 정성스러운 ELL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은 행운아였다.


아쉬운 이별


큰아이는 졸업 후 중학교로 진학하며 더 이상 ELL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과목별 EL 수업이 있었지만 정규 과정을 원하던 아이는 선택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정이 많이 들어 "너무 슬프다"라고 했다. 나 역시 아이가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초등학교 시절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어보다 중요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