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건 선물이야
“엄마, 애들이 나더러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해.”
이제 밝히지만, 첫째 아이, 너의 예민함은 유전이야.
엄마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별나다고 “최별라”라고 부를 정도였지. 흘러내리는 타이즈가 불편해서 몇 번이고 당겨 입어 가랑이가 늘어나고, 추위도 많이 타고, 이부자리가 조금만 구겨져도 일어나 펴고 자야 잠이 왔단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니 예민함은 환영받지 못했어. 오히려 '쿨한 척'하며 예민함을 감추었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감정은 무뎌지고 내 색깔을 잃은 듯 했단다.
그러다 네가 태어나고 너에게서 다시 그 감각을 보게 되었단다. 너는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울어버리고, 작은 소리에도 잠을 뒤척였지. 완전히 잠들 때까지는 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더라. 너를 재우고 아빠와 맥주라도 한 잔 하려고 하면 눈치를 채고 더 잠을 못 이루었어. 겨우 잠들더라도 금방 깨곤했지.
한번은 목욕을 시키는데 갑자기 너무 우는거야. 급히 물에서 꺼내 닦았는데도 계속 울었어. 알고보니 한꺼번에 잠이 오고 배가 고팠던 거야. 그걸 엄마가 눈치 못 챘더니, 한번 시작한 울음을 멈출 수가 없더라. 눈물과 콧물이 흐르고 숨이 가쁘도록 잘 달래지지 않았어. 사레가 걸려 분유도 삼키지 못하더라. 한참 후 겨우 진정하고 분유를 마시더니 눈두덩이가 빨개져서 고랑대며 잠을 자더라. 엄마는 땀범벅이 되었지.
“이렇게 별난 아기는 처음이구나.”
막상 나는 첫 아이라 별난 지도 모르고 있었어. 아기는 다 그런 줄 알았거든. 평생 엄마에게 별났다고 하던 외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걸 듣고야 네가 섬세한 아이인 줄 알았단다. 엄마는 그런 네가 오히려 더 반가웠어. 그리고 선물같은 그 별난 감각을 무디게 하고 싶지 않았단다.
너의 예민함이 두드러지고 속상할 때 엄마는 안데르센 동화 중 <공주와 완두콩>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여러 침대를 겹쳐 깔아도 작은 완두콩 때문에 불편해서 잠을 못 이루는 공주 이야기 말이야. 섬세함은 공주의 필수조건이었던 거지. 네가 귀한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어.
그리고 네가 좋아하던 미술학원 선생님도 말씀하셨지.
“00이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색을 볼 줄 알아요. 미래에 어떤 일을 할 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재미있는 일을 할 아이예요.”
엄마도 네가 지나치게 예민할 때는 힘들었어. 그럴 때 선생님 말이 크게 위로가 되었단다.
일레인 아론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쓴『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읽고 확신했단다.
키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듯, 민감함도 단지 특성이라고 해. 다른 사람보다 더 민감할 뿐이야. 좋은 일이 있으면 더 행복해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더 좌절하기는 해도, ‘신경과민이다, 너무 감정적이다’ 라고 폄하할 수 없는 특성인 거지.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특성이야. 예민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5~20퍼센트뿐이래. 개미 중에도 척후병이 있듯, 이들은 주변의 미세한 부분까지 감지해 특히 위험한 시기에 세상을 지키는 존재라고 하더구나. 중세시대 성직자 계층에 해당한다고도 하고, 노예해방을 선언한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민감한 사람이었다고 하네.
다만, 평화로운 시기에는 예민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우세하기에 예민함이 저평가되는 거란다. 그렇다고 다수의 사람들로 인해 예민함의 장점을 포기하지 말기 바래.
엄마는 예쁜 꽃을 보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크게 감탄하는 네가 참 좋았단다. 너와 함께 하는 여행이 때로 힘들기는 해도 더 행복하단다.
잊지마.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미세한 부분을 포착하고, 예술적인 심미안을 가졌고, 사회에 필요한 영적인 직관과 도덕적인 성향이 있는 예민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렴. 예민함은 불편함이 아니라 세상을 더 아름답게 느끼는 능력이야. 너의 예민함이 네 번째 치트키란다. 그건 축복이자 빛이란다.
엄마는 너로 인해서 엄마의 예민함을 다시 찾게 되어 감사해.
너로 인해 이런 글로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엄마로서 영광이란다.
마지막으로, 너의 예민함을 발견해준 어린 시절 네 친구들에게도 고마워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