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중하다는 걸
"나이보다 어려보이시네요?"
꽤 오랫동안 들어온 말이었다.
아주 주관적인 딸들의 시선으로,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어려보이냐"는 너스레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말은 아직 내가 늙진 않았다 싶어 좋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심심치 않게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이제 예전같지 않아..."
라는 말을 듣는다. 이렇게 힘 빠지는 말이 없다.
그 때마다 발끈하며 "우리가 뭐가 늙었냐"?" 달래도 보고 협박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내게도 갱년기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작년에도 반신반의했다.
갑자기 열이 오르고, 매달 있는 행사도 거의 끊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고, 일어나지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시큰둥해졌다.
그래도 '갱년기'라 명명할 만하지는 못했다. 중년이라는 말도 어색한데 갱년기라니. 늙음이 다가오는 갱년기라니. 아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퇴직 후 우울감인가 했다.
그런데, 신랑이 점점 너무 미워졌다.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는 그렇다 치고, 이에 뭐가 끼었다고 씁씁거릴 때 집안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할 때마다 "그게 아니고"라며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것도 거슬렸다.
좋아하는 음식도, 여행지도, 영화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형 어투는 나를 하대하는 것 같았다.
다른 가족들에게 모두 친절하면서,
나랑 있으면 인상쓰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화가 버럭 났다.
신랑 모습이 내가 싫어하는 꼰대 할배의 모습과 자꾸 겹쳤다.
뭔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자꾸자꾸 화가 났다.
시키는대로 해주고 있는 내가 이상하고, 화를 참고 있는 내가 더 화가 나고, 신혼초 명절때 마다 싸웠던 일부터 시댁에서 서운하게 했던 기억까지 되살아났다.
참을 수 없는 심정에 울컥거렸다.
무엇보다 힘든 건, 이제 이런 순간을 이해하고 이겨내기에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였다.
그 때였다.
"엄마, 이혼할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도 이혼까지는 아닌 상황인데, 아이들에게 심각하게 비쳤나보다.
이전에도 신랑이랑 다투거나 미울 때 아이들에게 하소연한 적은 없다.
요즘 너무 힘들어 몇 번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이혼하지마라는 뜻으로 말했지만 세번 쯤 되자, 이제 이해한다며 자기들은 다 컸으니 이혼도 괜찮을거라고 한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게 갱년기인가 보다.'
사춘기를 이기는 갱년기가 무슨 뜻인가 했는데,
사춘기만큼 내 마음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거다.
나는 잘못이 없고, 신랑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세상 나처럼 참고 착한 아내가 어디 있다고, 억울한 생각만 든다.
'신랑도 힘들겠지.'
라며 편드는 사람과는 이야기도 하기 싫다.
'니가 뭘 알아'라고 따지고 싶다.
문제는 사춘기는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그래도 부모라는 큰 울타리가 있지만,
오십대 갱년기에 이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터뜨린다면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참고 지나가자니 억울하고 내가 불쌍한데.
갱년기 증상은 여성 호르몬 감소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남성보다 대부분 여성에게 일어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진짜 내 마음이 아니라, 호르몬 때문에 신랑을 미워하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미운 마음에 죄책감이 덜어졌다.
유튜브로 갱년기 증상을 함께 보던 신랑이 "저거 내 증상인데!"라고 한다.
나보다 덜할게 뻔하지만 신랑도 나이들어가는 걸 느끼나 보다.
곧 아이들이 모두 떠나면 신랑과 잘 지내야 하는데, 신랑과의 관계가 요즘 나에게 큰 숙제다.
갱년기에는 그걸 준비하라는 뜻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