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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완벽주의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던 것뿐.

by 제나 Jenna

고등학교 시절. 나의 시험지는 언제나 줄과 동그라미 투성이었다. 시험 문제를 다 풀면 몇 번씩 검토를 하며 줄과 동그라미를 쳤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고 나면 항상 손이 새까매졌다. 몇 번을 검토해도 불안했다. 혹시나 실수로 틀린 문제가 있을까봐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OMR 카드도 기본 3번은 검토를 했다. 잘못 마킹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에 보고 또 보았다.


입사 후 사업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 업무를 몇 차례 맡게 되었다. 엑셀에 수식을 넣어 자동 계산이 되도록 했지만 계산기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혹시나 수식이 잘못 되지는 않았을까 불안했다. 예산이 나오는 수식을 외울 정도로 검토를 하고 또 했다. 엑셀의 계산식을 보고 또 보았다. 이런 업무를 맡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너무 불안했다. 혹시나 실수가 있을까봐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과제든지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갈 때까지 검토를 하며 수정을 했다. 계속 보다보면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다. 그렇게 검토를 했는데도 틀린 단어나 문장이 나오고, 더 좋게 수정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완료’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낯설었다. ‘완료’라는 건 없었다. 그냥 ‘제출’을 했을 뿐. 보고 또 볼수록 개선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다 되어 제출을 한 것이지 완료가 되어 제출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주위 사람들은 나를 완벽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의 결과물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한 번에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괴롭고, 불안하다. 그래서 계속 검토를 하고 수정을 거듭할 뿐이다. 나와 완벽은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저 조금이라도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를 상당히 괴롭게 만든다. 그게 힘들 뿐이다. 또, 슬플 뿐이다.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칭찬을 받고 싶어서, 더 나아가자면 사랑을 받고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감정적으로 메마른 유년기를 보내왔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고, 그래서 내가 항상 중심이 되는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중심이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잘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피아노를 잘 쳐서, 공부를 잘 해서 주목을 받고 칭찬을 받았다.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사랑을 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마음을 조금 놓으려고 한다. ‘잘 하지 못하면 어때? 그게 나의 능력인데.’하고 넘겨보려고 한다. ‘노력은 하겠지만 나를 괴롭힐 것까지는 없잖아.’라고. 술을 진탕 먹은 어느 날, 잔뜩 취한 대표님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잘하든 못하든 내가 데려가야 할 사람이야.’라고. 잘하든 못하든 나를 좋아하고 포용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전 같았으면 ‘잘하든 못하든’에 초점이 맞춰져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겠지만, 이제는 ‘내가 데려가야 할 사람이야.’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내가 어떻게 하든 나를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며.


1. 남들의 사랑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2. 잘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3. 노력은 하되 나를 괴롭히지 않기.

4.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함을 인정하기.

잘 해야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아니잖아.

완벽하면 좋지만 그게 아닌 나인걸.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게 중요해.



오늘 발견한 나

#불안증 #검토병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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