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재회
해주는 은채의 일로 인빈시블 능력이 1년간 제한된 사실을 이환에게 조용히 알린다.
이환은 1년 동안은 업무뿐만 아니라 경호 일에 총력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적인 스케줄에도 동행하기로 하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욱에게도 해주 모르게 조용히 말한다.
"대표님, 이제 제 허락 없이는 혼자 못 다니십니다."
"아휴~ 정 실장, 뭘 그렇게 걱정해~ 1년 금방 가~"
해주의 말에도 이환은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정 실장의 반응이 정상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러나면 엄마, 아버지가
불안해할 것이고, 둘러댈 변명거리도 없을뿐더러
내가 이들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내가 악마라는 사실을
절대 모르게 하고 싶다...
또 버려질까 봐...악마라는 사실만으로 저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돌변해 나를 버릴까 봐...
또 혼자가 될까 봐...두려운 것이다...
악마인 내가 뭐가 두렵겠냐 하겠지만 인간의 선한 마음
다음으로 두려운 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것이다.
난 전생에 이 역에게도 버려졌고 환생해서 날 낳아준 부모에게도
버림받았고 겨우 양부모님을 만나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이 행복을 망치고 싶지 않다...
다음 신분이 어떨지, 또다시 환생을 하는 건지 아직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버려지기 싫다...
차라리 물에 빠져 죽으라면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한편, 한 남자가 어두운 숲으로 향한다.
하지만 걷고 또 걸어도 끝도 없이 펼쳐진 숲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지만 반드시 누군가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악에 받쳐 빛이 사라지고
험한 숲 사이를 계속해서 걷는다.
그러다 바닥을 가득 매운 잔가지들 사이로 무언가 반짝거린다.
남자는 무엇에 이끌리듯 집어드는데, 그건 채경이 조카에게 수호신처럼 여기라며 목에 걸어준 푸른색 원석이었다.
[과거 1507년]
채경이 사가로 쫓겨난 후 중종의 반정 세력은 폐위로 그치지 않고 신 씨 가문을 몰살시키기 위해 사가까지 쳐들어왔고
채경은 그녀의 조카, 신석범을 끌어안고 사가 뒷산에 숨어있다가 그들이 철수하고 나서 조용해진 틈에 다시 사가로 내려왔다.
그 이후 채경은 석범을 18살 때까지 키우다가 출가시켰다.
하지만 석범은 채경이 자신을 살렸다는 건 생각지도 않고 채경 때문에 부모를 몰살시켰다는 증오심에 원한을 품고
죽음 이후 악귀가 되어 죽음의 숲을 헤매게 된 것이다.
[현재 2023년]
그렇게 450년간 죽음의 숲을 헤매다가 채경이 석범에게 준 원석 목걸이를 찾으면서 해주가 있는 이승에 떨어지게 되었다.
원석 목걸이는 석범을 해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듯 이끌었다.
그렇게 캐나다까지 온 석범은 해주의 본가 근처에서 해주를 망원경을 이용해 감시하고 있었고 적당한 때를 노렸다.
그러다 해주가 이환에게 은채의 일에 대해 나눈 대화를 엿들었다.
(당신만 아니었으면 우리 가문은 파괴되지 않았어...
할아버지를 따라 혼자 잘 살아 보겠다고 어머니, 아버지를.
버리고 좋다고 궁으로 떠날 땐 언제고, 입궁했으면 잘 살기나 하지...
쪽팔리게 며칠도 안 돼서 쫓겨나기나 하고...
궁에서 나온 사람들이니까 우리 가문 박살 내기 전에 막을 수 있었잖아.
그것만이라도 했어야지...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궁에서 나온 사람들이 우리 죽이러 왔을 때 당신은 뭐 했냐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당신이 우리 가문을 망쳤어...
당신은 우리 가문의 수치야...
당신이 책임지지 않겠다면 내가 책임지도록 만들어주지...
어머니,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450년 넘게 죽음의 숲에서
칼을 갈았고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지금 이 순간...당신이 그 염병할 능력 중 하나를 잃었다?
그 능력이 제한되었다는 건 이젠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거고,
이건 그 빌어먹을 '신'이 그나마 나에게 준 기회다...)
석범은 해주의 가족 모두가 집 안에 있는 걸 확인한 후 준비한다.
가진 옷 중 가장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들고 다니던 가방은 근처 어딘가에 숨겨 두고는 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석범의 뒤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들이 석범의 뒤를 따라간다.
어둠의 그림자들은 인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