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Save Me

by 제나랑


포토 부스로 돌아온 두 사람은 주저앉았다.

“설득이..잘 안 됐나 봐...”

“딸바보 엄마, 아부지가 딸내미 말발을 어찌 이기겠어...다시 가서 다시 해보자!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알았으니까...”

“근데...코인이 없어...”

코인이 있던 동전 투입구 쪽을 보자 혁주의 말대로 코인이 없었고, 화면에 메시지가 뜬다.

[시간여행의 쿨타임은 24시간입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허, 쿨타임~?”

“내일 너 라디오 끝나고 또 오자~”

지안은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한다.


[2024년 1월 9일]


[AM 04:05]

마트 가던 길에 인생컷을 발견하고 들어갔을 때는 오전 1시쯤이었으니 3시간이 지난 셈이다.

과거의 하루가 현재의 한 시간쯤 되는 듯했고, 분명히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혁주는 지안을 오피스텔까지 데려다주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지안은 그날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녀의 부모님을 또다시 죽게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그리움에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PM 10:45]

지안은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다.

1부 매일 코너가 끝나고 2부 요일 코너로 넘어가는 타이밍이다.

“저는 잠시 후, 2부에서 [마음 여행을 떠나요] 코너로 돌아오겠습니다. 잠시만요~”

지안의 1부 엔딩 멘트가 끝나고 노래가 나가자 한 남자가 부스 안으로 들어온다.

이름: 지선우

나이: 31세

직업: [영앤우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대표 원장

지안과 선우는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

2부 오프닝 곡으로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두 곡이 이어서 나온다.

2부 오프닝 두 곡이 끝나고 2부 오프닝 BGM이 이어지고 지안의 멘트가 이어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선우 님과 함께 힐링하는 시간!

쟌디와 지선우 님에게 지친 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마음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때요?

휴식이 필요한 밤달지기들의 마음을 저희에게 들려주시면 모든 분께 영화 시사회 티켓을 드립니다.

은하수 댓글과 문자로도 많이 참여해 주세요~

오늘부터 수요일마다 [마음 여행을 떠나요] 코너와 함께 해주실 지선우 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지선우입니다.”

“오늘부터 밤달지기님들이 저희에게 털어놓은 지친 마음을 함께 힐링해주실 텐데요. 요즘 마음이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많아진 듯한데 전문의로서,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실감하고 계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맞아요. 점점 해가 바뀔수록 저희 병원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긴 한데,

예전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주변 시선이 두려워서 내방을 희망하셔도 꺼리시는 분들도 많으셨고,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함께 조금씩 변하면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시면서 도움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저희 병원을 내방하시는 분 중에 수년간 고통받아 오셨으나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수군대는 분위기가


더 힘들어서 내방을 못 하시다가 최근에 용기를 내서 내방하신 후로 단기간에 많이 호전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모든 환자분들이 약을 먹어야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의료진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보시는 분들도 많으시기 때문에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 있어서 출발점은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그런 취지에 있어서 [마음 여행을 떠나요] 코너는 정말 필요한 코너라고 생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에서부터 마음 치유가 시작된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가는데요.


그럼, 첫 번째 마음부터 들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에 사는 박지예라고 합니다.

작년 7월에 경기도에서 1년, 서울에서 3년, 총 4년간 같은 건설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근무하다 그만뒀습니다.

4년 동안 호텔리어로 일하면서 하루도 불안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습니다.

모든 서비스업이 그렇듯, 식사 시간은 별도로 없고 교대해줄 사람도 없어서 대충 때우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먹다가 손님이 오면 씹던 걸 뱉어가며 손님을 응대해야 했습니다.


휴게 시간이 없는 건 둘째치고, 로테이션으로 근무하는데 교대 근무자가 늦으면 그만큼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건 당연했습니다.

이 부분은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겪는 고통이라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차 쓰는 게 자유롭거나 휴가가 있거나 휴게 시간, 식사 시간만 보장이 되었다면 문제 삼지도 않았을 겁니다.

연차 쓰는 것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일반 직장인들처럼 공휴일과 붙여서 며칠씩 쉬는 건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휴가도 근로자의 날이 있는 5월에 연차 1개를 더 쓸 수 있는 것 말고는 직원 복지라고 내세울 만한 게 1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복지가 다는 아닌 것처럼 이것만으로는 불만을 늘어놓을 수 없죠.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작년 3월이었습니다. 호텔 특성상 밤낮 가리지 않고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건 예삿일이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상사의 지시대로 처리해 왔습니다. 하지만 주폭 진상들은 겪을 때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주임급 직원분들이 있을 땐 저희는 다른 손님 응대해야 하니까 대신 처리해주시곤 했는데 주임급 직원분들이 줄줄이 퇴사하시고,


8년간 일하셨던 오픈 멤버 직원분까지 그만두시니까 주폭 진상들과 다른 손님들 사이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주폭 진상이 있었는데 가장 저렴한 객실 가격이 8만원이었는데 상사는 5만원에 주라고 해서 매번 5만원에 해드렸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다른 손님들에게는 형평성이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까라면 까야죠. 근데 그날은 그 주폭 진상이 4만원만 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는 안 된다, 8만원짜리 5만원에 드리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특별히 해드린 거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최대한 매뉴얼대로 응대했습니다.


근데 싸가지가 없다, 단골인데 이래도 되냐면서 카드를 던지면서 욕을 하셔서 카드를 줍고 결제하려는데 프런트에 세워둔 광고 아크릴판을 던지고


죽여버린다는 둥, 외모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뱉으면서 제가 있는 프런트 안으로 들어오려고 강제로 문을 열려고 난리를 쳤습니다.

저는 아크릴판에 이마를 맞아서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났지만 두려움에 문부터 잠갔습니다.

발렛파킹을 하던 직원이 CCTV를 보고 달려와 그 주폭 진상을 만류하고 경찰에 신고부터 진술까지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날의 상황은 일단락 되었지만 이마 부상과 정신적 피해로 못 쓴 연차를 끌어다 썼고, 그로 인해 다른 지점 직원이 휴무일에 대신 근무해야 했습니다.


다시 출근해서 퇴사 의사를 밝혔고 직원 채용 이후 인수인계할 때까지 근무해달라는 부탁으로 4개월을 더 일했습니다.


지원자나 면접자가 있지도 않았고 출근을 하더라도 일주일 일하고 안 나오고 첫 출근 이후 잠수 타는 등, 채용이 되지 않으니 인수인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근무하는 동안, 그 주폭 진상을 특수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법원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서 회사에 요청했으나, 상사는 회사를 끌어 들이지 말라고 하면서


퇴사는 말리는, 앞뒤 다른 모순된 태도에 화가 났고, 더 이상 근무를 하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힘이 들어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언급했던 날짜까지 일하고 퇴사했습니다. 그 후로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충격으로 지금까지도 너무 힘든데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힐링하고자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최근에 쟌디 라디오를 은하수로 듣기 시작했는데 위로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노래는 BTS의 Save Me 신청합니다. 하셨습니다.“

“첫 사연부터 절대 가볍지 않은 사연이네요. 사실 이렇게 글로 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근데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일을 당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절대 과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위로한답시고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줘도 아마 전혀 위로되지 않으셨을 겁니다.“

“맞아요. 오죽하셨으면 저희에게 사연을 보내셨을까요.


제 생각에는 1차로 그 주폭 진상이 가해하고, 2차로 자신들이 피해 입을까 봐 전전긍긍한 상사와 이 사건을 방관한 다른 직원들이 가해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1차 피해에도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2차 피해로 더 괴롭고 환멸을 느끼셨겠네요. 저 같으면 호텔이 아니더라도 서비스직에서 다시 근무하기가 힘들 거 같아요.


서비스직이 아닌 직종을 찾는 게 좀 힘들겠지만요~“

“그쵸. 정확히 짚어주신 부분이 뭐냐면, 1차 가해를 한 사람만이 가해자가 아니거든요. 2차로 정신적인 피해를 준 사람들도 다 가해자인 겁니다.


그걸 간과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렇게 육체적인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원하신다면


자신이 하는 말들이 2차 가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인지하시고 어떤 말을 해주려고 하지 마시고, 그저 곁에 있어 주세요.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연 보내주신 지예씨도 시간이 지나서 상처가 치유되고 나면 말없이 곁에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래 시간동안 기억에 남게 될 겁니다.“

“네, 저희가 지예씨 인생에 그런 사람이길 바라봅니다. 절대 지예씨 잘못으로 이런 일을 겪으신 게 아니잖아요.

오랜 시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상담받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실 텐데, 부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서 하루빨리 그 터널을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예씨가 신청하신 BTS의 Save Me 듣고 다시 올게요~“

곧이어 BTS의 Save Me가 흘러나온다.

[BTS - Save Me]

난 숨 쉬고 싶어 이 밤이 싫어

이젠 깨고 싶어 꿈속이 싫어

내 안에 갇혀서 난 죽어있어

Don't wanna be lonely

Just wanna be yours

왜 이리 깜깜한 건지 네가 없는 이곳은

위험하잖아 망가진 내 모습

구해줘 날 나도 날 잡을 수 없어

내 심장 소릴 들어봐

제멋대로 널 부르잖아

이 까만 어둠 속에서

너는 이렇게 빛나니까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fall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fall

……

오늘따라 달이 빛나 내 기억 속의 빈칸

날 삼켜버린 이 lunatic, please save me tonight

이 치기 어린 광기 속 나를 구원해줄 이 밤

난 알았지, 너란 구원이

내 삶의 일부며 아픔을 감싸줄 유일한 손길

The best of me, 난 너밖에 없지

나 다시 웃을 수 있도록 더 높여줘 네 목소릴 play on

……

고마워 내가 나이게 해줘서

이런 내게 날 갤 줘서

꼬깃하던 날 개 줘서

답답하던 날 깨줘서

꿈속에만 살던 날 깨워줘서

널 생각하면 날 개어서

슬픔 따윈 나 개줫어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fall

그 손을 내밀어줘 save me save me

I need your love before i fall, fall

[허각 - 구해줘]

숨을 쉬는데 속이 답답하고

열도 없는데 몸이 자꾸 떨리고

한건 없는데 왠지 힘이 없고

잠을 청해도 매일 니 생각에 밤을 새

나쁜 생각만 나

잘못될 것 같아

니가 떠난 그 후로

난 이렇게 망가져가

나를 구해줘

끝없는 슬픔에 갇혀 있는 날 꺼내줘

너 없는 텅 빈 하루가 너무 위험해

너만 돌아오면 돼

니가 나를 구해줘

손발이 묶인 듯 움직일 수 없어

너무 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

하루 종일 너만 그리다

내 몸을 휘감는 너의 기억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니가 보고 싶어

나를 구해줘

무거운 후회로 짓눌린 나를 꺼내줘

아직도 너만을 사랑하는 날 용서해

너만 돌아오면 돼

니가 나를 구해줘

나를 구해줘

[박화요비 - 얼마나 눈물이 흘렀을까]

그래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던 운명

알아 마르지 않는 눈물에 갇혔단 걸

끝내 이길 수 없는 운명이란 것도 알았어

춤을 춘다

나의 절망들이 어둠 속에서 날 움켜 안는다

힘을 다해 허공을 때려 본다

멀리 가라고 아주 멀리

그만 슬픔을 짜내 오늘을 입어본다

다신 울지 않도록 마음을 다 잡아도

끝내 이길 수 없는 이 운명 앞에 또 서 있어

……

내 앞에서

아주 멀리

내 앞에서

이하이 - 손을 잡아줘요

내 맘을 깊이 들여다보면

작은 구명이 하나 있어도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도 모르게

자라나고 있던 거예요

내 마음을 채워줄 사랑은 그대인 걸요

내 손을 잡아줘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

이 밤이 지날 때까지만

나를 꼭 안아줘요

이밤이 지날 때까지만

나를 꼭 안아줘요

내 맘을 깊이 들여다보면

작은 슬픔이 하나 있어요

아무도 모르게 그 누구도 모르게

혼자 울고 있던 거예요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랑은 그대인 걸요

내 손을 잡아줘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

이 밤이 지날 때까지만

나를 꼭 안아줘요

내 손을 잡아줘요

날 혼자 두지 말아요

오늘 밤 곁에 있어 주면

나는 다시 괜찮을 것 같아요

[이 하찮은 가치 - 김용택]

11월이다

텅 빈 들 끝,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어둠이 온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나온 마을보다

다음에 만난 마을이 더 어둡다

그리고 불빛이 살아나면 눈물이 고이는 산을 본다

어머니가 있을 테니까, 아버지도 있고

소들이 외양간에서 마른 풀로 만든 소죽을 먹고,

등 시린 잉걸불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는다

비가 오려나보다

차는 빨리도 달린다

비와 낯선 마을들, 백양나무 흰 몸이

흔들리면서 불 꺼진 차창에 조용히 묻히는

이 저녁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나는 비로소 내 형제와 이웃들과 산비탈을 내려와

미을로 어둑어둑 걸어들어가는 전봇대들과

덧붙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외롭지 않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