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뭐라고 2

집필실 세 번째 날

by 미라지

"도쿄에 가고 싶다고?'


갑자기 웬 도쿄? 지난해 한일 간 무역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일제 펜 대신 모나미가 뜨고 유니클로 대신 탑텐과 자주에 손님이 몰리는, '가지 않습니다'를 외치며 일본 여행을 보이콧하는, 후쿠오카와 오키나와 한국 여행객이 급감한 이 상황에, 하필이면?


"우리나라에는 애플 직영매장이 가로수길에 하나밖에 없는데 일본에는 열 개에요. 도쿄에 있는 애플 매장에 꼭 가보고 싶어요."

"가로수길에서 보면 되잖아? 이 시국에 일본에 가는 건 좀...... 네가 꼭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면 대만은 어떻니?"

"음, 저는 일본 빅카메라(Big camera, 일본 가전 양판점 체인)에도 꼭 가보고 싶거든요. 전자랜드보다 훨씬 커요."

"그래도 일본은 안 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도쿄행 표를 끊었다.



이삼 주 전 둘째 아이 친구 어머니들을 만났다. 2019년 한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에 아이가 입학하게 되면서 새로 알게 된 분들이었다. 동네가 각각이라 중간 지점에서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다른 아이들도 그런 편이었지만 우리 아이는 유독 기계에 관심이 많은 캐릭터로 알려져 있었다. 친구들에게 그래픽 카드 뭐 쓰냐, 납땜 해 봤냐, 집에 인두기는 있냐는 질문을 하고 다녀서일 것이다. 한 어머니가 덕담을 하셨다.


"아이가 관심사가 확실하니 참 좋으시겠어요. 엄마가 더 많이 데리고 다니고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고~ 아이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자기기에 관심이 워낙 많아요. 어디 데려갈 만한 좋은 곳 있을까요?"

"지금쯤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CES 하지 않아요? 그런 곳 가면 아이가 너무 좋아하지 않을까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CES라 함은 Consumer Electronics Show, 그러니까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아닌가. 그 CES를 말씀하시는 게 맞나? 15년 전 기억이 급 소환된다. 내가 만약 첫 직장에서 일잘러로 인정받았다면 대리나 과장쯤 되어 CES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을까? 그런 걸 떠올릴 때가 아니니 되물었다.


"CES요? 거길 저 같은 사람이 갈 수 있어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지만, 한 번 알아보셔요."

"아, 네. 혹시 유학원이나 교육기관에서 하는 캠프 같은 데를 통해서 갈 수도 있을까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엄마가 데려가셔도 좋지 않을까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는 견학이라. 스케일이 후덜덜하다. 지난해 출간된 『20 vs 80의 사회』의 예시가 될 만하다. 중상류층 부모는 자식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한다. 책, 여행, 좋은 학교와 학원 등. 저자는 중상류층 부모가 '내 아이가 '하향 이동'할까 봐 걱정되어 뒷바라지에 힘쓴다'고 했다. 사회학적 논의는 뒤로 미루더라도, 여건이 되는 한 자식에게 최상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내 머리는 여행 경비 계산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CES에 일반인이 입장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잊었다. 미국 본토 가는 비행기표가 얼마지? 모른다. 호텔비는? 비싸겠지. 대충 여행사 패키지 경비를 보니 미국 한 번 가면 인당 300만 원씩 하던데 그럼 셋이 가면 1000만 원이다. 무척 비싼 견학이구나.


그 날의 대화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모임이 아니었다면 겨울 방학 여행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약 비용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도 라스베이거스를 갔을까?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도쿄에 가기로 했다. 이런 시국임을 무릅쓰고 아이가 소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기로 했. 나, 큰 아들, 작은 아들 셋의 표를 사고 신주쿠에 투 베드룸을 잡았다. 어차피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두 아들과 부둥켜안고 잘 생각을 했다.




아침 김포공항은 적당히 붐볐다. 게이트 앞 도쿄 하네다행 탑승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가족보다는 성인들이 많아 보였다. 대화 속에서 "이 시국에"가 간간히 들렸다. 일본 여행자들의 마음은 서로 비슷했을까, 달랐을까. 도착해서는 짐을 풀고 바로 신주쿠 빅카메라에 갔다. 요도바시 카메라, 라비, 소니 샵, 긴자와 시부야 애플스토어가 우리 목적지였다. 큰 아들은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둘째 아이는 애플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쿄 애플은 가로수길 매장보다 규모가 컸고 매장도 세 곳이었다. 글로벌 브랜드가 풍기는 표준화된 분위기 때문에 가로수길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님과 직원 모두 세계 시민 같은 모습이었다. 눈만 내놓은 아랍 여자도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러시아 남자도 아이폰을 만지작거리고 아이패드 프로에 애플 팬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다. 직원은 아들에게 닌텐도와의 콜라보 제품을 써 보라 권했다. 그야말로 애플로 대동단결이었다.


- 3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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