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에 퇴사를 했으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일 년이 조금 지났다. 매년 연말이면 '언제 일 년이 이렇게 금방 갔데?'라고 느끼듯이,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의 일 년도 정말 금방 지나간 것 같다.
작년 3월 26일 보스와 화상 채팅으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때까지 엄청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나 지금 잘못 사표 냈다가 곧 망하는 거 아니야?'.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월급의 손을 놓아버리다니.. 마음은 잘 한 결정이라고 말하지만, 머리로는 끝날 줄 모르는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빴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계산기만 두드리다 결국에는 스스로 사표를 던지는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눈 질끈 감고 우리는 같은 날 퇴사를 했다. 지금은 회사 월급 없이 산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한 달은 마지막 정산으로 받은 월급이 있었기에 회사를 다니지만 휴가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급격히 줄어드는 통장을 보며, 드디어 우리의 소비 습관도 통장 잔고 내려가는 속도에 맞춰 달라져 갔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무리 아껴 쓰고 저축을 더 많이 해야지라고 노력해도 중간중간 고삐 풀리는 기간이 있었다. 그럼 또 늘어나는 소비를 보며 급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런 생활에 반복이었다. 그러다 정말 들어오는 월급이 끊기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아 정말 확실한 변화를 주지 않으면 6개월 후에 잡 인터뷰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다면 가면 되지라고 항상 말하지만, 그래도 6개월 만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꼭 필요한 소비만 하다 보니, 웬걸 이젠 정말 웬만해서 지갑을 열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잠깐만 인터넷을 둘러봐도 사고 싶은 옷들이 수두룩 했고, 화려한 인터넷 쇼핑 창을 한번 열 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가서 빠져나올 수 없이 한참을 구경하곤 했다. 그런데 이젠 몇 개의 단조로운 회색, 검은색의 옷을 매일 입어도 새로운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이유는 이쁜 옷을 입고 나갈 데가 없다는 것이 내 쇼핑 욕구를 확 줄여 준 것 같다. 어디 뽐낼 데가 있어야지 말이지.. 집에서 매일 식탁을 책상 삼아 사는 우리에겐 이쁜 옷은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많이 버리고 하나 남겨둔 검정 하이힐과 몸매가 드러나는 검정 원피스는 회사를 그만두고는 한 번도 입지 않았다. 그 검정 원피스는 어차피 회사 갈 때 입는 옷은 아니긴 했지만, 사회생활을 안 하니 더욱더 입을 일이 없어진 듯하다. 결혼식에 입고 가면 딱인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결혼식 초대 자리는 없다.
<편한 스케줄>
강제로 주어진 스케줄 없이 일 년을 지내고 보니 요즘은 우리에게 회사가 없다는 것이 진짜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2주 전 4월 초인데 이상기온으로 21도까지 올라간 날이 있었다. 아직 확연한 봄이 찾아오지 않아 추워하다 21도라는 소식을 듣고, 평일이었는데 첫째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다 같이 호숫가 비치로 놀러 간 날이 있다. 날씨에 맞춰 또는 오늘 기분에 따라 가고 싶은 곳에 가거나 하고 싶은 일을 시간 제약 없이 할 때 우리의 현실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목표 설정>
회사를 다닐 때는 개인적인 목표가 몇 년 안에 연봉 얼마 벌기 또는 자격증 이것저것 따기 등이 있었다면 요즘은 좀 다른 목표가 있다. 현재 상황 외에 지금부터 연구해서 월 수입 $500 (50만 원 정도) 올해 안에 만들기. 무엇을 통해 달성할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도전 정신을 가지고 시도해 보기가 목표가 되었다. 그런 의미로 유튜브도 시작했고, 아마존 킨들에 이북도 출간해 봤다. 회사를 다닐 때는 엄두도 못 내던 것들이다.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
이 부분이 아마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회사를 다닐 땐 주어진 휴가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난 3주, 남편은 4주 휴가가 있었는데 한 번에 쭉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어디 여행을 간다면 길어야 2주였다. 물론 2주도 3박 4일 보다야 좋지만, 한 달 살아보기는 생각지도 못할 때이다.
지금은 한 달도 아니고 일 년 살기를 계획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많아 다른 곳에 살면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다녔던 은행에서는 아무래도 캐나다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요즘 우린 그런 제약 없이 제주도 일 년 살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면서 제주도에서 한번 살아보면 그다음엔 어디가 좋을까? 라며 돈 안 드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조기 은퇴자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퇴사라는 무서운 허들을 넘고 나니, 안전한 알에서 깨어난 것처럼 예전보다는 용기 내서 행동하는데 레벨업이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건 설레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집이 편하고 안정적인데 낯선 곳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일 투성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도 중요한 필수 조건이지만 나에겐 용기가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 같다. 이런 새로운 일들을 할 땐 혼자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여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모든 결정을 혼자 해서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다.
<자연스럽게 살다>
아침마다 '가면'을 장착하고 출근을 했다. 오늘 내 몸 컨디션이나 기분이랑 상관없이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입고 출근을 했다. 오늘도 잘 해내자!라고 주문을 걸면서. 회사에 도착하면 모든 구성원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벼운 안부를 묻고, 만나는 손님에겐 나의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사실 반갑지 않은 구성원도 있을 수 있고, 별로 기대 안 되는 미팅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쓴 '가면'은 솔직함을 들어내지 말라면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파이팅 하면서 일하면 좋은 거 아니야? 뭐가 문제라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퇴사를 하고 나니 확실히 깨달았다. 아.. 내가 그동안 참 불편하게 살아왔구나..라고. 그런 가짜 파이팅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자연스럽고 좋은지 모른다. 물론 그 대가로 월급은 더 이상 없지만, 내 인생에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축복이다.
그럼에도 퇴사는 퇴사고 돈을 더 이상 안 벌고 싶다는 건 또 아니라는 걸 지난 일 년간 월급 없이 살아보고 깨달았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열심히 투자활동을 하고 돈을 아껴 자산을 모았지만, 그 돈을 쓰는 게 월급을 받아 쓸 때와는 또 다르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같은 100만 원의 생활비라도 월급 받아 쓰는 거랑 내 통장에서 꺼내 쓰는 거랑은 돈의 무게가 달랐다. 그래서 요즘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하면 작게나마 투자소득과 자산소득 이외의 소득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한다. 우리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지적재산을 통해 새로운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인터넷 안에서 판매될 수 있는 활동을 해 보는 것이 다음 목표이다.
이쯤에서 지난번에 한번 올렸지만, 아마존 킨들 서점에 셀프 출판한 내 요리책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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