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의 이사가 한 달 남짓으로 다가왔다. 캐나다 이민 22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보려 한다.
그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한국 여행을 갔던 것 같다. 마지막 방문은 7년 전 큰아이가 7개월 때였고, 기간은 2주 정도였다. 한국을 매년 가기엔 비행기 티켓이 너무 비쌌고, 주어진 휴가가 3-4주 된다고 해도 한 번에 다 몰아 쓰기엔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한번 휴가 쓸 때 2주까지 쓰는 게 최대한 눈치 안 보고 쓰던 때였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원이라면 눈치를 좀 덜 볼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2주가 아니라 2년을 살아보려 계획하고 있다. 2년 후엔 지금 사는 곳에 다시 와서 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지금 쓰는 우리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엔 furnished home으로 지금 있는 가구를 포함해서 렌트를 주려고 했다. 보통 가구와 가전이 포함된 렌트일 경우 월세를 조금 더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동엔 그 수요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 집 렌트는 우리가 쓰던 가구를 다 빼는 조건으로 세입자를 구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쓰던 소파, 엘지 65인치 최신 티비, 책장, 킹 사이즈 침대와 매트리스, 아이들 싱글 침대와 매트리스 두 개, 6인용 식탁, 쿠쿠 압력 밥솥, 토스터, 브레빌 에스프레소 커피머신, 마지막으로 우리의 아끼는 차 등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엑셀로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작성한 리스트가 있다. 리스트는 125번까지 나왔다. 우리 가족의 옷과 신발은 적지 않았다. 초록색으로 표시된 것들은 이미 판매 완료된 품목이다.
토론토에서부터 쓰던 오래된 물건들도 있지만, 이곳으로 이사와 새로 산 2년 조금 안된 물건들도 많다. 많은 물건들의 산 가격과 지금 우리가 중고시장에서 받을 수 있을 가격을 적고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가 살림 장만을 할 때는 웬만하면 중고시장에서 사자는 생각과 어떤 물건을 살 때는 정말 필요한 것들이 아니면 물건의 가짓수를 늘리지 말고 최대한 가볍게 살아보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이 버리면서 가벼워졌다 생각했지만 막상 모든 물건을 팔아보려 하니 우리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들고 사는 것들도 많았다.
고민 끝에 한국으로 먼저 보낼 짐을 정리하고 있다. 캠핑 장비는 텐트와 에어매트 등을 보내기로 했다. 한국에 가서도 텐트 들고 캠핑을 다녀볼 계획이다. 토론토에서는 영하 35까지 떨어지는 겨울에 전철 타고 출퇴근하는 남편이 산 캐나다 구스는 겨울에도 웬만해서 영하로 잘 안 내려가는 이곳에선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이참에 팔아보려 했는데 한여름에 누가 그 돈 주고 겨울 옷을 사냐는 댓글을 보고 한국에 가져가기로 했다. 한국 겨울도 많이 춥다는데 거기서 입던지 아니면 당근 마켓에 팔던지 해야겠다.
아이들 옷은 무릎에 구멍 난 바지가 많아서 최대한 가볍게 추려낼 생각이다. 우리들 옷은 작년에 퇴사하면서 회사 옷들은 거의 비워 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이 운동복들만 남았다. 부피가 크지 않으니 최대한 다 가져갈 것 같다. 부피가 큰 겨울 신발들도 미리 배로 보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진 물건 중 가장 비싼 품목인 자동차를 팔면 모든 짐들이 정리될 것 같다. 한국으로 보내는 생각도 해봤으나 보내는 비용만 500만 원이 든다고 하여 그냥 팔고 거기 가서 중고차를 다시 사는 쪽으로 결정했다. 캐나다에서 차를 두 번 사봤는데 둘 다 중고차였다. 여기선 그런 걱정을 안 했는데, 한국 가서 중고차를 살 생각하니 괜히 걱정부터 앞선다. 좋은 차와 딜러를 잘 만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나의 걱정이 뉴스에서 배운 선입견이길 바란다.
차 다음으로 비싼 품목은 남편의 운동기구였다. 거의 다 팔았는데 가져가는 날짜를 8월 중순이나 말쯤으로 해서 계약금을 걸고 팔았다. 운동을 좋아해 거의 매일 내려가 운동을 하는 남편이 한국에 갈 때까지 최대한 쓰고 싶어 해 그렇게 판 것 같다. 아빠가 운동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같이 내려가 줄넘기도 하고, 로잉도 하고,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 게임 같은 것도 한다.
벌써 소파와 큰 티브이와 책장이 거실에서 나갔다. 모든 책이 책장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쌓여있는데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 온 손님들에게 일인당 2개씩 골라가라고 하고 있다. 책 한 상자는 차고에 두고 가기로 해서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고 싶은 책들을 담아 두었다.
비행기 날짜가 다가오고 물건들이 집에서 나가기 시작하자 2년 전 토론토를 떠나올 때 느꼈던 두근거림이 다시 돌아왔다. 이 두근거림을 100% 설렘으로만 설명할 순 없는 것 같다. 앞날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서 오는 두려움, 새로운 곳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몇 년 만에 만날 가족, 친척, 친구들을 생각하면 드는 반가움과 기대감, 당장 비행기 타기 전 코로나 검사에서 온 가족이 음성 받길 바라는 부담감 (우린 집도 차도 없을 예정이기 때문에 양성이 나올 경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내일이 예측되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서 걱정과 두려움을 기대와 즐거움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이곳으로 올 때 여러 번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 한마음으로 움직이면 어디서든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낯선 곳에서 2년 살아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