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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Dec 16. 2023

수영장에서 한국사회를 경험했다.

캐나다에서 2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앞으로 2년간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나는 한국에 온다면 어렸을 때 다녀보지 못했던 학원에 가서 여러 가지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정착하자마자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수영과 미술학원 그리고 요가원에 등록했다. 


한국에 오기 전, 그곳에서도 수영 강습을 신청해 일주일에 한 번씩 다섯 번 정도 다녔다. 한 번에 30분씩 하는 수업이었으나, 너무나 느긋한 선생님이라 이 속도라면 6개월이 지나도 수영을 배우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속으로 ‘한국에 간다면 6개월이면 나를 수영인으로 만들어줄 선생님들이 분명 많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대하던 수영강습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이 최대한 동일한 규칙을 지키기 원하는 이곳에 생활은 탈의실 청소 아주머니의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옷을 다 탈의하시고, 안에 들어가서 샤워를 싹 하신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수영 후 나오실 땐 샤워 후 물기는 안에서 다 닦으신 후 나오셔야 합니다.”라고 매우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캐나다에선 내가 샤워를 하고 들어가는지 마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샤워하고 물에 들어가라는 안내 표지가 무색하게 샤워를 하지 않고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나도 가끔 안 했다.) 한국은 거기에 한술 더 떠 양치질도 하고 들어오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깨끗한 게 더 좋은 거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게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보다 옆사람이 잘 씻고 들어가는지 아닌지 서로서로 감시하는 분위기에서 작동하는 규칙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여기서 머리를 제대로 감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옆사람에게 지적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의식하자 자의가 아닌 타의로 더 열심히 씻게 되었다. 결국 규칙은 지켜지게 되었지만 나는 점점 남의눈을 의식하는 피곤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눈치'를 다시 깨워가며 수영장에 다니던 중 선생님과 재밌는 대화를 하게 됐다. 초보수영 6개월 차로 이제 접영만 얼추 배우고 중급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나의 접영실력은 정말이지 늘지 않고 있었다. 답답한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회원님, 원래 성격이 좀 느긋하신 편이신가요? 팔을 획! 이렇게 세게 돌리 셔야 합니다.”라며 시범을 보여줬다. “아 네! 하하하 제가 좀 느긋한 편이긴 하죠. 그런데 이거 팔 돌리기 너무 힘든데 접영은 안 배우면 안 되나요?” 농담이 아닌 진심을 담아 내가 물었다. 선생님은 그런 옵션은 없다며 하다 보면 다 터득할 수 있다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날 다그쳤다. 캐나다였다면 힘들면 쉬면서 하라고 했을 것 같은데, 이곳에선 돈을 냈으면 당연히 돈 값어치 이상은 배워야 한다는 듯이 열심인 회원들과 마치 선수촌에 선수들을 훈련시키러 온 코치들 같은 선생님들 뿐이었다. 취미로 배우는 운동을 이렇게 까지 열심히 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어찌어찌 접영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고 중급반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수영 배운 지 10개월 만에 그만두고 지금은 쉬는 중이다. 그 10개월 동안 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수영복을 세 번이나 바꾸기도 했다. 어느 날 초급반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회원님, 회원님 수영복은 지금 너무 큽니다. 몸에 딱 붙는 걸로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럼 수영 스피드도 훨씬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당근에서 장만한 첫 번째 수영복은 오히려 타이트하다 생각했는데, 전문가 눈엔 아직 나에게 헐렁한 사이즈였다. 꼭 바꿔야 하나 싶었지만 매번 만나는 선생님 지적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수영복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두 번째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다니던 어느 날 샤워장 옆 칸에 50대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기.. 내가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내가 저기 교정반에서 봤는데 자기가 입은 수영복 안이 좀 비쳐. 안에 가슴 패드를 실리콘으로 바꿔보던지 수영복 색을 좀 더 어두운 걸로 바꿔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초보반 회원들은 전혀 비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친절한 교정반 회원님의 조언을 못 들은 척할 배짱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세 번째 수영복을 갖게 되었고 그 뒤로 아무도 내 수영복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10개월의 수영강습 경험을 통해 작은 한국사회를 경험했다. 서로를 의식하면서 무언의 공통된 가치를 추구해 가려는 의지와 그에 걸맞지 않게 행동하는 조직원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할 수 있었다. 자세한 수영장 사용법을 설명해 준 직원분과, 모두가 원하는 수업태도를 갖추지 못한 나를 훈련시키는 선생님, 그리고 어떤 게 적절한 수준의 수영복인지 복장을 점검해 주는 회원들이 그랬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고 모두가 한 테두리 안에 들어오도록 조언도 스스럼없이 하는 한국사회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여 모두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내버려 두는 캐나다와는 참 다르다고 느꼈다. 빠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는 게 지름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짧은 시간 안에 결국 기대했던 수영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역시나 한국 특유의 ‘열심히 다 같이' 정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개인의 자유를 경험해 본 나는 앞으로 한국도 조금씩 ‘모두 다 같이’가 아니라 ‘따로 또 같이’ 같은 느낌으로, 여유를 가지고 나와 다른 구성원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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