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3년 전 어느 밤에 남편과 나눈 대화를 기록해둔 노트를 발견했다. 너무나도 신기하게 그날 나눈 대화데로 시골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 진짜 신기하다.
2018.06.06 수 어젯밤 잠들기 전 성훈이와 앞으로 우리 인생을 지금과는 180도 달라지게 만들지도 모르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는 대화를 시작했다.
Everything that remains 라는 책을 같이 읽고 있다. 본인이 어떻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지 지루하지 않은 형식으로 쓰여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물건'을 줄이는데만 있지 않다. '물건'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에도 해당된다.
성훈이에 대화는 많은 경우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어젯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은경아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나 완전 피곤해. 봄이가 낮에 낮잠을 거의 안 자고, 서은이도 늦게 자고.."
"진짜 중요한 얘기니깐 집중하고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 금방 끝낼게"
"(아이고.. 또 시작이네. 왠지 금방 끝나지 않을 거 같음) 그래 알겠어 해봐"
"넌 미니멀리즘이 결국 뭔거 같아?"
이건 토론 분위기? 포인트 원, 투, 쓰리로 해주고 끝냈으면 좋겠고만.. 고민하는 척 귀찮음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읽은 부분까지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대답해본다.
"나에게 가치가 있는 물건만 가지고 있기?"
"맞는데 그거 말고 더 있어"
또 뭘 읽었더라.. 다음 대답을 고민한다.
"아, 물건만 미니멀한 게 아니고, 관계나 내가 하는 행동들도 나에게 의미나 가치를 주는 것들만 유지하기?" 말끝이 답을 맞추는 것처럼, 내 대답이 맞는지 확인하듯이 올라간다.
"맞아! 그거야!" 맞췄다고 좋아한다.
"물건뿐만이라 다른 모든 것에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건 다 내려놓는 거! 그게 키 포인트야"
"우리가 몇 년 후에 시골에 가서 산책하고, 책 읽고, 글 쓰고, 그렇게 살면 좋지 않겠어?"
"완전 좋겠어! 늦잠도 자고, 낮잠도 자고 ㅎ" 내가 지금 원하는 걸 말했다. 졸리지만, 완전 신나 하는 성훈이 대화에 맞장구를 열심히 쳐준다.
"봐봐 우리가 이만큼을 일 년에 벌고, 이만큼은 소비하는데, 중요하지 않은 소비가 이만큼이라고 치면, 우리가 저축할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생기는 거지. 내 말 잘 이해하고 있어?"
여기서 쓰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숫자들이 오고 갔고, 내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있잖아, 그런데 나 좀 졸려."
"지금 완전 중요한 얘기야. 금방 끝낼 테니깐 집중하고 잘 들어봐" 다시 한번 요청이 들어왔다.
"알겠어. 다시 해봐. 그런데 애들이랑 같이?"
"당연하지. 안 그럼 언제 그렇게 살겠어. 애들 다 키우고면 너무 늦어. 난 한 5-6년 후 생각하는데?"
"글쎄 애들이 어려서 자신이 별로 없네. 난 한 20년 후 생각했지"
"아니야 시골에도 다 학교 있고, 교육 잘할 수 있어. 반이 좀 작을 뿐이지. (알고 하는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근데 뭐 먹고살지?"
"작은 집에 살고, 나갈 빚 없으면, 돈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 조금만 벌어도 살 수 있을 거야. 대신에 남는 시간에 우리가 원하는 우리 가치관하고 맞는 생활을 하면서 사는 거지. 이 책 작가는 친구한테 미니멀 라이프를 전파해서 둘이 어디 깊은 숲 속 오두막에 들어가서 한참 살다 나오기도 해"
"난 그런 건 좀 무서워. 곰 나올 거 아니야"
"맞아. 곰 나올 거야" (미국과 캐나다라 진짜 곰 나온다)
"우선 이 집에 좀 살면서, 집 융자도 좀 갚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자자. 네가 내일 한번 우리가 지금 한 얘기들을 글로 적어볼래? 나도 한번 적어볼게"
"그래 한번 해볼게. (어서 좀 자자)"
이렇게 해서 내가 지금 이 글을 아침부터 쓰는 중이다. 역시나 내 기억력에 의존해서 어제 대화를 다시 쓰려니 중간중간 내용이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