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욕망이 필요한 이유
April 28, 2021
요즘 우리 대화에 자주 올라오는 타픽이다.
많은 부분 남편과 나는 참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욕망 또는 욕심이다. 남편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 배우고 싶은 것 등 이 원하는 마음, 욕망이 나보다 쎄다.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언가를 원했다가도 포기가 엄청 빠른 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선 그것을 원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야 하는데, 욕망/욕심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도전 정신을 발휘하는 힘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다.
내 성향은 원하는 게 있다가도 그걸 끝까지 붙잡고 있지 못하고, 금방 내려놓는 것 같다. 남편은 이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경우 무언갈 이뤄내거나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힘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남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해봤다. 나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가지고 태어난 성품도 있겠지만,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을 거란 생각도 든다.
나는 5형제에 둘째로 태어났다. 넉넉한 가정형편이 아녔기에, 부모님을 졸라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행동을 많이 하고 크지 않았다. 지금 내 두 딸들만 보아도, 협상의 대가들처럼 어쩜 그렇게 자기들이 원하는걸 잘도 얻어내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나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 아빠도 편하고 나도 편할 길은, 내가 그 원하는 마음을 없애는 길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 같다. '아.. 저 이쁜 옷이 있었으면 좋겠다..'싶다 가고, 졸라봤자 사줄 수 없는 형편을 깨닫고는 그 '갖고 싶다'라는 마음을 지워버린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름 연습을 통해 괴롭지 않은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나중에는 처음부터 엄청 갖고 싶다 라는 마음을 먹지 않는 방법을 몸에 익힌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다른 어떤 것들을 희생해서라도 이것 만은 꼭 가지고 싶어라는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은 물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인간관계, 공부, 돈, 회사생활 등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런 내 성향을 반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인간관계는 차갑게 끊어내었고, 공부는 내가 괴롭지 않은 선까지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어디 가서 너무 창피하지 않을 수준인) 중간 또는 중상위 까지만 노력했으며, 돈은 갖고 싶은 물건이 별로 없다 보니 신기하게 저축/투자가 잘 되어가고 있고 (주관적인 기준), 회사생활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비슷하게 친구들과 오늘도 즐겁게 놀다 와야 지란 마음가짐으로 다녔던 것 같다. 욕심이 없어서 가능했던 것들인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러지 말고 내 욕망을 찾아서 끄집어 내보라는 주문이 자꾸 들어온다. 그래서 안 해본 걸 해보려니 난감한 기분이다.
그래도 최근 내 욕망대로 행동한 큰 사건이 있긴 하다. '조기 은퇴'가 바로 그거다. 엄청 원했고, 지출을 많이 줄이면서 시간과 자유를 얻고 연봉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평생을 큰 욕심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 통틀어 한 달 전에 한 이 은퇴만큼은 내 욕망을 최대한 발휘해서 가져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렇게 쟁취하고 나면, 이제 이걸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게 되는 게 또 다음 순서인 거 같다. 처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금 이렇게 행복한데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괴로운 상상을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상하게 너무 좋은 게 생기면, 그게 없어질 때 찾아올 괴로운 마음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자꾸 주문을 걸어본다. 다 괜찮다고. 내가 지금 은퇴했지만, 또 이게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서 다시 일터에 나가야 한데도 별일 아니고 다 괜찮다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다 없어져서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데도 다 괜찮다고 또다시 거기서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주문을 건다. 그럼 걱정은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내 욕망은 도대체 뭐냐고? 잘 모르겠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이 글쓰기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적고, 그걸 또 어딘가에 공유하고 하는 이 작업이 내가 현재 가장 원하는 욕망인 거 같다. 나의 욕망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걸 이뤄내는데 선을 지킨다면 원하는 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내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더 될 거라는 남편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