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쓰기 75분 알람을 맞춰놓고 남편과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이렇게 책상에 같이 앉아있다 보니, 15년 전 대학때 같이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던 때가 떠오른다.
남편은 공대생 3학년,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다른 과는 생각도 안 해본 심리학 전공자가 되고 싶은 1학년이었다.
뭐든 어느 정도 까지만 하면 그다음은 별로 노력하지 않는 내 스타일 데로, 고등학교 때 대학 원서를 지원할 때 그냥 집 근처 대학 위주로 지원했고, 전공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로 골랐다. 그리고 그 대학에 심리학으로 입학하려면, 고등학교 때 들어야 하는 과목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거에 맞춰서 마지막 고3 과목 시간표를 짰다. 느낌상 심리학은 문과 같았는데, 알고 보니 과학계열이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게 잘하지도 못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지 않다고 해도, 캐나다 평균 고등학생들과 비교했을 땐 경쟁력이 조금 더 있었던 것 같다.
15년 전이라 아직도 그런지는 확실치 않지만, 내가 대학 갈 땐, 고3 때 들었던 과목 베스트 6개의 평균으로 원서를 낸다. 보통 한 학년에 8-9개 과목을 일 년에 듣는데 시간표는 꼭 들어야 하는 영어, 수학 등을 제외하곤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대학들은 전공별로 고3들이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어떤 것들이 미니멈으로 꼭 있어야 하는지 미리 알려준다. 그리고 입학을 하기 위해서 커트라인 내신 평균 점수도 알려준다.
내 기억에 심리학 전공으로 원서를 낼 때, 고3 영어, 수학 2과목, 과학 1과목 (화학, 생물, 물리 중), 나머지 2과목은 내가 했던 고3 수업 중 가장 성적이 좋은 2개로 학교가 알아서 평균을 낸다고 했다. 나는 나머지 성적이 가장 좋았던 두 과목은 미술과 음악 이었던 것 같다. 아, 한국어 과목도 있었다. 고1 때 이민 왔던 나를 위한 수업은 아니지만, 대학 갈 때 평균으로 잡아주는 과목이라고 하여 평균 올리기 일환으로 가서 들었다. 갔더니 2세는 없었고 나 같은 한국말 매우 잘하는 이민 자녀들이 가득했고, 그 동네 다 다른 고등학교에서 토요일 오전에 듣는 이 클라스에 모인 한인 고딩들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오며 가며 남편과 얼굴을 알고 지내기도 했었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그다음 다른 곳 에서지만..
아무튼, 고등학교 2학년이면 벌써 어떤 대학에 무슨 과로 가고 싶은지 그림이 나와야 하고 거기에 맞춰서 고3 시간표를 짜야한다. 만약 고3 수업 다 듣고 가고 싶은 전공하고 싶은 것이 완전 달라졌다면, 고등학교 졸업 후, adult school에 가서 다시 필요한 고3 수업을 선택적으로 듣기도 한다.
혹은 대학 1학년 다니다가, 고3 과학은 하나도 안 들은 영어 전공자가 의사가 되고 싶어 과를 바꾼다면 다시 adult school 가서 고3 과학들을 다 이수한 후 다시 과를 바꿀 수 있게 된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남편은 나보다 공부 머리가 좋았고 수학, 과학도 잘했다. 그래서 아무리 우리가 뜨거운 연애를 하는 와중이라도, 시험 기간이면 얄짤없이 도서관 행이었다. 덕분에 나도 같이 앉아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찌 보면, 알람까지 맞춰놓고 글을 쓰자는 남편 덕분에 간간히 이렇게 글을 써 브런치에 올리게 되는 것 같다. 내 속도 대로라면 훨씬 더 느리게 글이 나왔을 것도 같다. 그런데 남편은 medium.com 글을 쓰는데 나는 하나씩 올리고 있는데, 남편은 또 나와는 달리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또또 고치고를 너무 열심히 하는 나머지 글을 올리고 있진 못하는 듯하다. (좀 전에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니 지금 쓰는 글은 미디엄에 올리려고 쓰는 건 아니란다. 그냥 머릿속에 생각들을 글로 옮겨 적는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도 간간히 대학 다니던 시절을 얘기하곤 하는데, 내가 1학년 들어가서 본 첫 심리학 중간고사를 fail 했던 얘기는 두고두고 얘기해도 재밌는 소재인 거 같다. 어떻게 공부하는 줄 모르고 무작정 하던 때였다. 1학년 심리학 과목은 1년 코스였고, 거기서 마지막 점수를 얼마 이상 받아야 드디어 심리학 전공자로 인정되어 2학년 과목들을 들을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 첫 시험을 50점도 못 받은 것이다. 1년간 시험은 총 3번이었다. 첫 학기에 한번, 두 번째 학기에 한번 그리고 두 번째 학기 말에 1년 치 공부한걸 시험 보는 마지막 시험 1번. 남편은 나에게 바로 그 과목을 드랍하고 내년에 다시 들으라고 했다. 이미 3번 중 한 번을 망했기 때문에 이 점수가 대학 4년 내내 내 총평균을 깎아 먹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다음 두 번째 새번째 시험으로 만회하지 못할 경우 2학년 전공과목들을 못 들을 확률이 생긴 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등록금이 싼 것도 아니고, 이미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에 들어왔는데 일 년 더 늦추는 걸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해보겠다고 하고 드랍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가까스로 패스해서 2학년에 올라갔다.
내가 첫 시험을 패스하지 못한 데는 대학교 시험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 듣는 3시간짜리 심리학 강의였다. 첫 수업을 갔는데 그 수업에 총 1,500명의 학생이 들어와 앉았다..... 다시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또 다가 아니다. 총 3천 명이 넘은 미래의 심리학 전공 일 학년 학생들이 이 과목을 듣는데 반은 두 개로 나누었던 것이다. 나는 3층에 자리 잡고 앉았고, 교수님 얼굴은 저~멀리 아주 작게 보였다. 교수님은 얼굴에 마이크를 차고 있었고, 그 뒤로는 무대에 총 3개에 대형 스크린이 내려와 있었다. 눈은 파워 포인트에 귀는 교수님 설명에 노트를 받아 적기도 매우 바쁜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인데도 일주일 내내 책을 읽어도 진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이 역시도 어떻게 공부할지 몰라서 무턱대고 꼼꼼히 다 읽어보려는 내 방식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첫 시험을 마주했다. 알고 갔지만 역시나 당황스러운 100% 객관식 문제 150개. 시험 시간이 두 시간인지 세 시간 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문제만 읽어도 부족해 보이는 문제량이었다. 거기다가 답을 4개나 5개 중 고르는 것도 아니고, 6개 중에 고르는 것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모두 다' 또는 '모두 아님' 등이 있을 경우였다. 그래서 열심히 찍다 보니 당연히 fail 한 듯싶다.
이건 거의 학생 수에 반은 털어내려고 시험문제를 이렇게 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3천 명이나 뽑아놓고 2학년으로 올리는 건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들어가긴 쉬워도 졸업이 어렵다더니 이런 거였군..이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1학년 등록금만 벌어도 학교가 남는 장사네.. 라며 공부 못한 나를 탓하기보단 학교 시스템을 탓했었다. 한번 겪었으니, 그다음 시험은 내 평생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본 적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해서 간신히 커트라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2,3, 4학년 공부는 훨씬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전히 벼락치기를 해야 했지만, 그래도 시험 스타일에 적응되어 공부 방법도 거기에 맞춰서 바꿔 나갔다. 무엇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리학이 한 과목 아니고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학년 때는 20명인 과목들도 있었는데, 20명 이기 때문에 3천 명이 한 수업을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객관식 문제를 그렇게 많이 낼 필요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에세이 시험이 많아졌고, 나는 객관식보단 주관식 또는 리포트 작성이 훨씬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나는 대학 다니면서 A를 받아본 적이 없다. 다만 잘 졸업했음에 감사한다. 지금 다시 하라 그러면 더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심리학이었는데 시험공부에만 급급해서 지금은 기억에 남는 내용이 거의 없음이 많이 아쉽다.
내가 다닌 대학은 졸업을 3가지로 할 수 있는데. Specialist (성적 가장 좋은 사람들이 하는 스페셜리스트), Double Majors (복수전공), 또는 One Major and Two Minors (전공하나, 부전공 두개) 중 하나로 선택해서 졸업해야 한다. 나는 복수 전공 길로 택했다. 심리학 외에 다른 전공은 인사관리과 (Employment Relations)였다. 인사관리과를 들을 때 했던 발표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다음에 적어봐야겠다.
아침에 알람 맞춰놓고 글쓰기를 하다 보니 대학 때 생각이 나서 적어봤다. 75분 맞췄는데 이제 2분 남았다. 이만큼 쓰는데 75분이나 걸리다니.. 다시 읽어보고 다듬는데 2분으로 안될 테니 좀 더 걸리겠지?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우리의 20대 초반을 글로 더 적어도 재밌을 거 같다. 학교 이야기. 알바 이야기. 연애시절 이야기.. 할 말이 참 많다.
실제 1학년 수업 들었던 곳이다. 졸업식을 하는 홀인데 강의도 한다. Convocation Hall @ University of Toro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