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캠핑은 6박 7일이었다. 간간히 또 집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채웠고, 캠핑장에선 못쓰는 와이파이도 좀 쓰고, 집에서 샤워도 편하게 하고, 애들도 학교와 데이케어에 잠시 보내고 그랬다.
어느 날 저녁, 저녁밥을 또 집에서 해 먹고 캠핑장에서 잠을 자러 출발하는 길이였다. 앞마당에 모여 와인 한잔 하며 수다 떠는 아줌마들에게 '우린 이제 다시 캠핑장 가서 자고 내일 또 올 거야. 내일 보자. 굿나잇!' 이라고 말하고 차를 탔다.
트렁크를 닫는데 안 닫친다. 어? 왜 이러지? 하며 보니, 내가 트렁크 위에 남편과 내 폰을 올려 둔 것이다. 멋쩍어하면서 폰을 집어 들고 둘째를 뒷자리에 앉혔다. 둘째 카 시트 벨트를 여러 개 채우고 뒷문을 닫고, 난 앞자리에 와서 앉았다.
드디어 출발. 15분 정도 산으로 들어가면 있는 캠핑장이다. 최근에 연간 회원권을 사서 벌써 두 번째 가는 캠핑이었다. 중간에 코너를 돌고,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갑자기 차 지붕 위에 '우당탕탕'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차 안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산 위에서 돌들이 떨어졌나? 뒤에 유리는 괜찮은가? 하면서 뭔 일이래~ 하며 캠핑장 가까이 거의 도착했을 때다. 무심결에 내 옆에 컵 홀더 자리를 보는 데 있어야 할 곳에 핸드폰이 안 보인다. 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고, 직감적으로 좀 전에 차위에 돌 떨어지는 소리가 돌이 아니라 우리의 핸드폰이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최근 몇년간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스트레스가 확 몰려왔다. 남편에게 말했다. '아까 그 소리가 돌이 아니라, 우리 핸드폰 떨어지는 소리였나 봐. 내가 아까 둘째 차에 태우면서 손에 있던 폰들을 문 위에다가 올려두고 그냥 와버렸던 것 같아....ㅜㅜ'. 하나도 아니고 남편과 내 폰 두 개를 다 차 위에 올려두고 운전을 하다니...
정말 캠핑장 정문 코앞에서 다시 차를 돌렸다. 아까 돌 떨어진 소리가 난 곳이 산으로 들어오는 초입이었으니, 한 10분 다시 운전해 나가서 찾아보려 했다. 남편이 혹시 모르니 차를 세우고 차를 위를 한번 보자고 했다.
난 당연히 둘 다 이미 날아가고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남편 폰이 트렁크 문 틈에 끼여 버텨주고 있었다. 오케이. 하나는 해결됐고. 이젠 내 폰만 찾으면 된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차가 많이 다녔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를 쓰면서 문제의 장소로 다시 운전해 갔다.
만약에 못 찾는다면 어떤 것들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거지? 사용하는 은행 앱만 5개가 되고, 쥐메일도 있고, 에버노트도 있고, 사진첩도 있고... 정말 골치가 아파왔다. 차 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별일 아니라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를 닦달하면서 못 찾을 경우, 어떤 스텝으로 일을 해결할 계획인지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가끔 회사에서 보스가 나에게 할 법한 말을 할 땐 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도움이 안 되는 이 대화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받아주려 노력을 해야 한다. 드디어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 같은 장소에 왔다. 왔는데 어딘지 확실치 않고, 일 차선 밖에 없는 이 좁은 길에 차들이 계속 와서 너무 천천히 운전할 수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내려서 뒤져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구글에 서치해 보니, 구글 어카운트에 로긴 해서 찾는 방법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에겐 남편 폰이 있었고, 그걸 사용해서 해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얼마 전에 어렵게 업데이트한다고 한 내 구글 어카운트 비번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젠 진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어떻게 비번을 모를 수가 있냐고 타박이 들어왔다.
애들은 뒤에서 왜 왔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느냐, 아까 우리 거의 캠핑장 앞이었는데 언제 다시 돌아갈 거냐.. 라며 아우성이었다. 마음이 복잡한데 귀까지 시끄러우니 더 힘들었다.
난 남편에게 다시 캠핑장에 돌아가자고 했다. 그리고 남편이 첫째와 캠핑장에 있으면 내가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집에 있는 노트북으로 다시 구글 어카운트에 로긴을 해 보겠다고 했다. 컴퓨터에는 비번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믿을 건 이제 노트북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하니 밤 9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앞마당에 모여 있는 이웃 아줌마들이 왜 다시 돌아왔는지 물어본다.
내가 핸드폰을 차에 두고 운전해서 지금 노트북에 로긴 해 보러 왔다고 엄청 속상한 말투로 말을 했다.
그러고 집에 올라와 로긴을 해보니, 구글이 내 핸폰 위치를 찾아주었고, 정확이 어디쯤에 지금 내 폰이 있는지 그 돌 떨이진 곳 근처를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원래는 집에서 모든 은행에 연락해 어카운트 정지를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바꿨다. 노트북을 남편 폰과 연결해 인터넷 테더링을 한 후, 둘째와 함께 다시 차로 왔다. 내 폰이 어딨는지 찾았으니 가봐야겠다고 인사를 하는 찰나, 모여있던 아줌마 3명이 같이 일어난다!
'우리가 도와줄게! 오 이거 재밌겠는걸? 우리가 차 타고 뒤에 따라가서 경찰이 도로 위를 정리하듯이 네가 핸드폰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같이 가자!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난... 농담하는 줄 알았다. 와인 한잔 하시더니 다들 약간 하이퍼 같은데... 진짜 괜찮겠어?라고 물었는데 다들 너무 들떠있다. 나는 혼자 애기랑 가는 것보단 사람이 더 있는 게 낫겠다 싶어 정말 고맙다고 얼른 말했다.
그중 술을 안 마신 아줌마가 운전을 하고 내차와 그 차에 한명씩 나눠 탔다. 노트북을 옆자리 아줌마에게 넘기고 출발했다. 벌써 밤 9시 반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구글 핸드폰 찾기 사이트 옵션에는 버튼을 누르면 5분간 알람이 울리는 시스템이 있었다. 다 이번에 알게 된 것들이다. 무음으로 되어 있는 핸드폰이라도 알람이 울리게 된다고 한다. 대략 지도에 나와있는 곳에 차를 대고 버튼을 눌렀다. 길 아래를 따라 걷는데 지나가는 차 소리만 슝슝 들릴뿐, 무슨 알람이 울린다는 건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알고 보니 내가 남편 폰을 들고 있고 노트북은 차에 두고 와서 테더링이 잡히다 안 잡히게 되었던 것 같다. 다시 차로 돌아와 핸드폰과 노트북 둘 다 들고 아까와는 반대 반향으로 걸었다. 뒤따라 온 앞집 차에서 두 명이 내렸다. 한 명은 두 차에 타고 있는 애들을 지키고, 나머지 세명이 어떤 알람이 울린다는 건지 귀를 쫑긋 세우고 걸어갔다. 드디어 소리가 들렸다!
점점 다가가다 보니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날은 어두워져서 깜깜하고 차들은 아까 남편과 왔을 때보단 훨씬 덜 지나간다. 앞집 아줌마가 소리친다! '저기다! 저기 폰에 불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라고 외쳤다. 다 같이 다가가 보니 폰은 아니고 바닥에 설치된 작은 전등이었다. 그런데 분명 소리가 그쪽에서 나고 있었다. 희망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찾겠구나 확신이 들고 있었다. 그 순간 아까 그 아줌마가 내 핸드폰은 찾아서 집어 들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 우리가 해냈어! 찾았어!! 오 마이 갓! 진짜 고마워 다들 ㅜㅜ'. 정말이지 감동의 순간이었다....
길가에 세워둔 차를 옆에 두고 길게 얘기를 나눌 순 없었다.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을 남편도 생각났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다들 기분 좋게 우선 헤어졌다. 캠핑장에 돌아와 남편을 보자마자 신나서 알려줬다!
'찾았어! 내 폰 찾았어!!' '앞집, 옆집 아줌마들하고 같이 가서 찾았어 ㅎㅎ'
다음날 캠핑에서 돌아와 패북에 그룹 채팅을 하나 만들었다 방 이름은 '브런치'. 그러고 보니 이 브런치랑 이름이 같네. 핸드폰 찾는 걸 도와줘 정말 고마워서 내가 주말에 브런치를 꼭 사고 싶다고 말했다. '토요일이 좋겠니, 일요일이 좋겠니?'. 토요일은 일해서 안된다고 답장이 하나 왔다. 좋은 이웃은 서로 돕는 거라고, 밥 안 사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는 다른 답장도 왔다. 아까 일해서 안된다고 했던 이웃이 '내 말이~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다. 나는 우리 애들이 어려서 와인 나잇에 잘 못 끼니, 이번엔 브런치를 먹으면서 나도 좀 끼고 싶다고 사양하지 말고 그럼 일요일에 하자고 적극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오늘 오전 9시에 근처 한인이 하는 브런치 식당에 가서 브런치를 샀다. 이렇게 또 이 새로운 곳에 추억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난 또 정말 좋은 이웃들을 만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