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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그거 얼마면 되겠니?

by 안개꽃

두려움은 내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고, 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후에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은퇴를 하려면 얼마가 필요한 건지 여러 각도에서 계산을 해보면, 결정하는데 두려움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보통 파이어족들은 엄청난 노력으로 수입의 많은 부분을 저축하고 투자하여 조기 은퇴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파이어족들은 아끼고 사는 방법에 능통해진다. 이 방법이 많이 택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조금 달랐다. 엄청난 노력의 절약이 부족했다. 금전적으로 투자는 잘 되었는데 절약의 스킬이 많이 부족했다. 우리가 계산한 대로 살아가려면 지금보다 더한 절약 정신이 필요했다.


은퇴 전에 지출 규모에서 60%까지 내려왔는데 아직도 부족한 느낌이다. 그래서 초반엔 이렇게 굴러갈걸 알고 감행했지만, 들어오는 패시브 인컴보다 지출이 큰 지금의 상황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매달 들어오는 패시브 인컴으로 부족하면, 투자를 조금씩 팔아서 쓰면 된다. 그런데 투자는 또 그래도 자라나게 두고 싶은 게 지금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 집 지출에 가장 큰 항목은 집이다. 토론토에서 이 시골로 이사 온 이유 중 자연환경과 못지않게 중요했던 이유는 집값이 쌌기 때문이다.


토론토 타운하우스는 이제 곧 $1M 하게 생겼다. 우리가 2017년에 60만 불쯤 주고, 은행 융자 80%를 끼고 샀는데 지금은 이 집이 밀리언 가까이 된다. 작년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우리의 이사 고민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일하는데 교통 좋은 토론토에 계속 살 이유가 있을까? 물론 재택근무 시대가 언젠간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라고 할 시점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한번 경험해본 이상, 직원이나 회사나 재택근무 시스템을 앞으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그런 회사를 찾아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5시간 비행기 타고 이사 온 이곳은 엄청난 경치를 가지고 있는 반면, 나름 이 동네 대도시인 밴쿠버와 110km 떨어져 있어, 차가 안 막혀도 한 시간 20분은 가야 하기 때문에 집값이 쌌다. 토론토 때와 조금 작지만 비슷한 크기의 타운하우스를 40만 불에 또 80% 은행 융자를 받아 샀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토론토 집을 85만 불에 재 융자를 받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가 있었다.


지금은 30년 상환에, 원금+이자로 매달 나가는 집값이 $1,500 정도 된다. 이자는 변동이자로 올해 1.3%로 재 계약했다. 토론토에 살 땐, 한 달에 나가는 원금+이자가 $3,000 정도였다. 거기에 두 집다, 대략 가스비 ($100), 전기세 ($100), 물세 ($100), 뜨거운 물 탱크 렌트비 ($60), 타운하우스 관리비 ($100-$300), 재산세 (연 $1,200-$3,500) 등을 더 잡으면 몇백 불 추가된다.

그래서 우리가 싼 곳으로 옮기고, 토론토 집은 세 놓게 되었다. 그 집은 우리가 쓰던 가구와 새 가구를 적절히 조합하여, 본인 옷만 가지고 들어오면 되는 집으로 렌트를 놨고, 한 달 월세는 $3,700 이였다. 그럼 거의 딱 맞게 은행에 돈 내고, 재산세 내고할 정도였다. 집에 문제가 있어 수리를 할 경우에는 마이너스가 되는 금액이었다. 전세가 없는 캐나다는 월세 아니면 은행 융자받아 집사는 것 밖에 없다. 방 4개, 화장실 4개로 여려 명이 살아도 불편하지 않은 크기와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 때도 6명이 살았는데 (우리 부부, 아이 둘, 내 쌍둥이 동생 둘), 새로 이사 온 세입자 가족도 6명이었다.


일 년 계약이 끝나고 세입자가 이사 나갈 거라고 두 달 반 전에 통보를 줬다. 보통 계약이 끝나기 60일 전에 알려주거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는 month-to-month 계약으로 전환되어, 이사 나가려면 아무 때나 60일 전에 알려주면 된다.


우리는 호기롭게 $3,900에 광고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주변 시세를 더 알아보니 우리 금액이 높은 건 아니지만 (우리 집 보다 조금 더 큰 방 5개짜리 집은 $4,300 도 있다),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집들이 20채나 나와있었고, 안나 간지 몇 달이 된 집도 있었다. 우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점점 가격을 낮추다 $3,400에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번에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토론토에 다녀오게 되었다. 결국 몇백 불씩 우리가 메워야 하는 구조가 되어 버렸지만, 몇 달 공백이 생기는 것보다 바로 연결이 되는 게 더 중요했다.


우린 어제부터 새로운 문제를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조기 은퇴라고 부르고 사퇴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요즘 점점 가계부 정리할 때마다 예민해지는 이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린 아직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은 것이다.


더 절약할 준비가 안됬던, 그동안 투자한 돈을 꺼내 써도 괜찮다는 마음에 준비가 안됬던, 뭔가 준비가 안된 거라 여겨진다.


남편은 최근 다시 job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둘 중 한 명만 풀타임으로 한 2년 정도만 더 일하면 될 것 같은데, 선뜻 둘 다 나서질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기보다 더 주거비용이 싼 곳도 있지 않을까? 라며 상상을 한다. 한국도 있고, 동남아시아도 있고. 코로나가 진정되면 예상보다 이사시기가 더 빨리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즐겨보는 유튜브에 EBS,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 시골 자연환경은 여기 못지않게 정말 멋있다. 나도 한국 시골에 가서 살아보는 상상을 자주 하고 있다.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단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요새 들어 한국에 들어가면 정착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자꾸 든다.


우리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 Mt.Ch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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