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속에서 니체를 발견하다.
올 한해를 돌아보건데
나에게 하이라이트는 단연
중년 초입의 혼란스러움, 혹은 간략하게
‘중년의 위기’ 라는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겠다.
년초 느닷없이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
“현타”가 오기 시작하면서 심적방황을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연말이 되니 마음이 많이 차분해 졌다.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편안해 진 것은 아니다.
동년배, 선배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나만의 특이한 경험이 아닌,
대다수의 중년들이 이미 겪었거나
현재 지독하게 겪고 있는 고민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인간 보편의 숙명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예전부터 철학서에 관심을 두는 현학적 취미가 있었지만
다분히 이론에 대한 탐닉, 알고 싶은 지적욕구였다면
이제는 고전을 쓴 작가나 근대 철학자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누고픈
딱 내 나이또래의 친근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사상이나 이론에 깊이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극심한 방황 속에서 고등학교 때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꺼내읽었고,
그 안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나 성장소설이 아닌,
완벽한 중년의 소설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데미안은, 40대를 위한 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데미안에서 몇번에 걸쳐 언급된 철학자
니체가 내 머릿속에 훅 들어왔다.
김삼순 이후에 본 드라마가 있나 싶을 정도로
드라마에 취미를 못붙이는 나인데,
얼마전 우연히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접하며
그 안에서 다시금 니체를 발견했고
완전히 몰입해 며칠 새 다 보았다.
‘(신에게) 난 궁금한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 일 수도.
‘인생은 이런거야’ 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이 겨울의 쓸쓸함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던 드라마.
쓸쓸하지만 그래도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며 내 운명을 긍정하라는
니체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드라마.
고통 속에서의 삶의 의미와 사랑을 이야기한 드라마.
데미안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올리게 한 드라마.
올해 나에게 여러가지 풍부하고도 깊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눠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내년에는 니체에 관한 책들을 좀더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