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이 담임이 보낸 문자를 보다가 화가 났다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만 제자인가? 시윤이는 마음이 약하고, 먹는 걸 좋아하지만
어른의 삶이 어떨지 그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19살이다. 시윤이가 자꾸 아프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건 믿어주는 어른이 없어서 아닐까? 내일부터는 꼭 시윤이랑 달리기를 해야겠다.
철없는 큰이모라 쓸데가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요즘은 낮선 이들과 자주 만난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생활이 크게 궁금하지 않다.
어떤 일에든 깊이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달리기를 아침, 저녁으로 하고 집안 청소, 석윤이 점심 준비, 학원 출근, 뒤죽박죽 별장으로 퇴근하여 정인재님 저녁식사, 그리고 콩이랑 껴안고 놀기. 가끔 해랑언니를 보고, 붕어빵도 사먹고,
놀라우리만큼 잔잔해서 바쁜 삶이 덜컥 찾아오면 어떡하지? …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
따뜻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는 밤이 좋다.
산다는 것은 고해인가보다.
사람들이 크고 작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일이 많아지고 있다.
짧은 인생길에 아픔들이 많기도 하다.
나는 괜찮은지 돌아보아야겠다.
나의 정체성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영어, 전과목, 인문학, 건강법 등을 가르치다가 이제는 달리기도 가르치게 되었다. 타인에게 지식을 전할 때면 어릴 적 읽었던 사실들도 떠오르고, 멋진 문장도 막 외워서 전달한다. 오늘 7살 꼬맹이를 가르치다가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나에게 인연이 되어 제자로 와준 이 꼬맹이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한 나날의 연속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꾸준히 매일의 일과를 채워나간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쓸려간 인연들을 기억해본다.
함께 웃고, 즐겼던 시간들이 헛됐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나에게 온 인연을 영원히 기억하며
마음을 쏟는다. 달밤에 달리기를 하고 집에 왔다. 현관의 신발 몇 켤레. 주인은 없어도 이리저리 흩어져 놓여져 있는 신발이 괜시리 정스럽다.
평소처럼 늦게 일어나 꾸물대며 준비를 했다. 남편에게 조단 추리닝 선물을 했다.
아끼고 아껴서 오래오래 잘 입겠지…다슬기 해장국을 먹고, 당남리 핑크뮬리랑 넓디넓은 초원에서 놀았다.
정인재랑 노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니…
기적이다.
새벽 5시에 길을 떠났다.
여우랑 석현이랑 미리미리 서둘러서 여유있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여의 비행 끝에 후쿠오카 도착.
잠깐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렸다. 무섭웠지만 두눈 딱감고 견뎠다.
일본에 무사히 도착.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맡기고 downtown으로 향했다.
첫 끼는 라멘. 이어 오니기리. 튀김. 포장마차에서 새우튀킴, 케밥. 야끼토리. 호텔로 오다 호르몬 야끼. 카레우동, 모쯔나베....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다시 시작. 자기직전 오뎅. 그리고 나토 마키. 배가 너무 부르다. 미쳤나봐.
브런치 연재 준비만 5년. 결국 실패. 나는 뻐꾸기처럼 동생 제니퍼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얹기로 했다.
우후~ 밤이면 내일 아침메뉴 생각에 즐겁고 아침이면 달밤달리기 생각에 즐거운 삶.
즐거운 세상에 즐거운여행자가 되길.
from 로빈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