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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06. 2020

고곤의 선물

연뮤덕






어느날, 피터쉐퍼가 묻는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와 용서의 한계를 넘는 행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여기 두 남녀가 있다.

피로써 복수를 해서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극작가 '담슨'과 피의 복수가 부르는 것은 결국 죄악이라며 용서해야 한다는 아내 '헬렌'.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지킬과 엠마가 떠올랐다. 

미쳤다는 지인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기 위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지킬과 사랑하는 남자의 (어쩌면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신념을 바라보아야 했던 엠마. 


많이 닮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폭력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과 포용과 용서의 비폭력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그의 아내 헬렌 사이의 논쟁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결국 담슨은 인생의 반려자이자 훌륭한 조력자였던 아내 헬렌역시 폭력적인 방법으로 복수를 생각할 수 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끝끝내 자신의 삐뚤어진 신념을 주장하기 위해 치졸에 가까운 방법을 선택한 그의 죽음 후에 헬렌은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꿈꾼다. 태어나기도 전에 버림받은 담슨의 아들이 찾아와 아버지를 위한 평전을 쓰겠다고 하자, 헬렌은 그의 졸렬한 죽음과 극악무도함을 그의 평전을 발행해 만천하에 알리기로 결심한 것. 한때 촉망받고 인정받던 극작가를 사후에도 나락으로 떨어뜨려 복수를 하려고 한 것. 하지만 결국 헬렌은.......남편인 담슨과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평화롭게 용서하며 연극은 끝난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완벽하게 그를 용서했을까?

아니었다면 또 어떻단 말인가.


헬렌이 결국 담슨의 신념대로 피를 통한 복수를 선택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망가져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헬렌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연극이 필요없는 세상에서 상상력도 없는 일차원적인 어둠의 날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며 한탄했던 담슨의 절망이 얼마나 가슴 깊이 와닿았던가.


고곤의 선물, 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통상 메두사로 통칭된다.

(바다의 신 폰토스 + 대지의 신 가이아의 아들) 바다의 신 포르키스와 그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인 케토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 스테노, 에우리알레, 메두사가 바로 고곤.

고곤 세자매는 원래 모두 아름다운 처녀였다. 하지만 막내인 메두사만 아테나 여신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누다 발각돼 아테나의 노여움을 산 이후 아름다움을 빼앗기고 추악한 괴물로 변하게 된다. 그후 고곤의 세 자매는 자신의눈과 마주치는 사람과 동물은 모두 돌로 변하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향해 복수를 시작하는데... 메두사가 죽음을 맞을 때 두 종류의 피가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치명적인 독약이고, 다른 하나는 기적의 치료약이라고 알려진다.


엄청 오랫동안 고곤의 선물이 의미하는게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름대로, 결론 내자면 고곤의 선물은 결국 연극이 아닐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했던, 담슨의 대사에서 추측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정의의 심판? 혹은 용서!




담슨


세계평화? 세계평화는 지구 멸망 후에나 찾아올꺼라고.

진실을 볼수 있는 방법? 그건 언제나 투영에 의해서야. 공감에 의해서라고.

희곡은 진실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가 있어. 용서의 한계를 넘는 행위말이지.

사람들은 연극이 필요 없다고 하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이 그렇게 돌아선거야.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그들 모두 지금 스크린에 홀딱 빠져있어. 자신의 영혼이 강간당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말야. 상상력도 없는 일차원적인 어둠의 날개가 온 지상을 뒤덮고 있어.

신념! 당연이 연극이지. 영원히 죽지 않을 유일한 종교거든. 지금은 삭아버린 불덩이처럼 침묵 중이지만. 오래전 연극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때 이곳에서도 그리스만큼이나 우리에게 신념과 경이로움을 심어줬었어 종교처럼 말야. 극작가들은 희곡을 아테나의 방패처럼 높이 들어 올렸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만 진실을 볼 수 있었어.


 헬렌 Said

반쪽짜리 자신감은 위험해요.

우리안에 삐뚤어진 열정을 죽이는 것도 열정이예요.

피로써 복수하라, 그다음 춤을 춰라? 그건 죄악이예요.

태어나기도 전에 버림받은 당신의 아들은, 당신을 저주하기보다 숭배했어요 


 그외

 신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순종만 있을 뿐이다_아테네

 얘 기분이 썩 좋지 않구나. 연극이 꼭 예술이어야 하냐?

 아닐 수도 있지. 지난번처럼 새 연극을 위해 축배를 들라고 보내준 보드카 말이다.

 이번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_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는 아들의 두번째 연극 관람 후 담슨 아버지


  



극작가 피터쉐퍼의 <고곤의 선물>에 등장하는 또다른 최고의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 작품에 대해서

첫작품 <우상들>

우상 파괴주의.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동방교회에서는 icon이라 불리는 것의 제작과 사용이 성행했다. 그림 속의 성인을 현존케 하려는 목적. 7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십자가와 그리스도교적 성화상이 본격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동로마 제국 레오3세 황제는 성상공경이 회교도나 유대교인들을 전도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모든 성상을 우상으로 여기고 폐기하려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 당시 비잔틴 황제들에 의해 지속되던 화상철폐운동은 레오4세의 마망인 아이린이 아들 콘스탄틴 6세 섭정을 하면서 역전된다.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화상순배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의 아들 콘스탄틴 6세가 그녀의 섭정으로부터 권력을 찾으려 하자 그녀는 그를 성상파괴자로 몰아 두눈을 뽑은 후 추방하고 자신이 황제자리에 앉는다.


두번째 작품 <특권>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은 청교도 혁명당시 의회진영의 장군으로 청교도의 지도와 영국의 통치자 역할을 했다. 그의 지도하에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고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었다. 1679년 반혁명의 뿌리를 뽑기 위해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하는데 주동자 역할을 한다. 그는 1641년 잉글랜드 정착민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아일랜드인들이 자행했다고 믿으며 자신이 총사령관 겸 군사독재정치를 감행한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찰스2세가 즉위한 후 크롬웰을 자신의 아버지 찰스1세 살해자로 몰아 무덤을 다시 파헤쳐 그의 머리를 잘라 웨스트민스터 홀 꼭대기에 걸어두고 찰스2세 집권말기까지 그대로 두었다.


마지막 작품 <아일랜드>

지금도 계속되는 북아일랜드와 영국간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아일랜드>테러. 1987년 11월 8일 북아일랜드 에니스킬린 전쟁기념관에서 the Irish Republic Army (IRA)의 테러로 인한 폭발사건이 있었다. 11명이 죽고 6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든월슨은 그 참사에서 딸 마리를 잃고 부상을 당했다. 그는 대중매체를 통해 그녀의 살해자를 용서한다고 발언하여 북 아일랜드 사람에게 충격을 준다. 그후 그는 에니스킬린 지역 사회 관계발전에 공헌했으며 마침내 아일랜드 공화국의 상원의원이 된다.


어찌나 스마트한지! 다시금 깨닫는다. 극작가는 위대한 직업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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