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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Jun 24. 2020

다시, 강태하의 계절

드라마예찬 <연애의 발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첫사랑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번씩은, 강태하&한여름 커플에 때지난 그때 그 시절을 감정이입해가면서 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으리라.


나도 그랬다.


그녀석과의 우연한 재회를 꿈꾸면서 매번 이드라마를 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9년 전. 2011년 여름 교대였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시절이었고, (드문 일이지만) 나 좋다고 따라다녔던 회사대표 사촌이자, 동료였던 P와 잠깐 만나던 때였다. 그와 헤어진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상상을 참 많이했다. 내가 한없이 초췌하고 초라한 차림인 어느날, 여자친구와 손잡고 지나가는 그와 마주치는 상상같은 거. 근데 그 반대의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먼저 나를 알아보고도 모른척 지나가던 녀석처럼, 나도 모른척 그녀석을 보내줬어야했는데. 보란듯이 다른 남자의 팔짱을 낀 채로, 예의 그 껄렁거리는 말투로, 가볍게 건넨 말들.


잘 지내냐. 어디가냐. 잘가라.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와 그가 지금 향하는 목적지를 왜 물어봤을까. 아무 의미도 뜻도 없는 걸 묻고자 굳이 봐도 못본척 애써 피해가는 애 발걸음을 돌려세워서, 꼭 그래야만 했던가.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때 내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러 교대로 가던 길이었으나 나는 내 멋대로 약속을 취소하고 집으로가 방에 쳐박혀 울었다. 눈치빠른 P는 그가 내가 그토록 못잊어하는 첫사랑 그녀석이란걸 알아챘고, 그 첫사랑에게 자기와 같이 있는 걸 보여준게 창피하고 싫은거냐며 나를 괴롭혔다.

P는 자기 주제파악도 할줄 알고 센스도 있는 아이였다.  

한여름처럼, 예쁘지도 않고, 국제디자인대회에서 입상할만큼 자기 분야에 실력이 출중한것도 아니었으나, 당시엔 나도 한여름처럼 '죽고 못사는 첫사랑 이후의 연애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던 때'라 최대한 내 위주로, 내 감정대로 행동했다. 달리 말하자면, 떠나려면 떠나도 된다는 태도로 녀석 이후의 사람들을 대했다. 나로 인해 받았을 상처에 대해 생각하거나 배려하기엔 아직 내 상처가 더 아프다고 징징대던 시절들.

당연히, P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일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당장에 머물 집도 절도 없는 스무살 후반의 청년. 믿는 구석이라고는 이제 막 스타트업 회사 대표가 된 친척 형과 나 달랑 둘. 측은지심때문에 시작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때 교대에서 첫사랑 그녀석을 만난 이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바로 정리했다. 그해, 유독, 헤어지자는 여친에게 칼부림 난동을 부린 남자들 이야기가 뉴스에 많이 나왔다. 엄마로부터 사흘도리로 전화가 왔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걱정을 하나도 안했다. 사람 속내 다 알 수야 없지만 잠시라도 내가 만났던 그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내 선택을) 믿고 싶었다면 거짓말이고, 그가 내게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특출나게 이쁜것도 아니고, 특별히 착한것도 아니고....

때로 욱하는 성질머리가 있지만 뉴스에 나올만한 일로 누군가를 해코지할 성정은 아닌, 그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슬프지도 보고싶지도 않았다.

조금 더 솔직히말하자면 사실 홀가분했다.


그런데 첫사랑 그녀석은 다르다. 벌써 2007년에 헤어졌는데, 아직도 '헤어지는 중'인 느낌이 든다. 둘중 하나가 결혼을 해야 끝이 나도 날 것 같다. 사는동안 진짜로 안받고싶은데. 그녀석 청첩장.


5년간 사귀고 헤어진 커플. 다시 네가 좋아졌다고 태하가 여름에게 술에 취해 고백하는 장면이다.



극중에 강태하가 '한여름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나를 기다렸는지 알고 싶고, 남이섬과 또 덕수궁 돌담길에서도 왜 울었는지 알고 싶다면서

한여름은 절대 말해주지 않을테니까 본인이 한여름이 되서 그 마음이 어떤건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태하와는 다른 이유로 나도 한여름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재고 따지는 거 없이,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꼬인거 없이. 피해의식없이 좋으면 좋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요즘 니가 나를 만나는게 잠을 자기 위한 것 말고 뭐가 있냐고, 사랑한다면서 왜이렇게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냐고, 돌직구로 묻는 그녀. 한.여.름.


나도 '한'돌직구하지만, 쓸데없는 자존심도 세우고, 가끔 꼬여 있고, 때때로 피해의식에 (쩔어) 있다.

소심하고 어떤땐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한마디로, 찌질, 그자체. 그와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내 안의 거의 모든 감정들과 마주했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과도 만나야했다. 질투, 오기, 원망, 여보란듯 엇나가려는 못난마음, 수치심, 비참함.....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냐며 사랑을 계산하고, 따지고...




내가 이 드라마를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막연히 다시 내게 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녀석때문이다.

혹시 우리도 한여름 강태하처럼 다시 만나,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아직 내게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연애의 클라이막스가 지나서, 남은건 사소한 다툼과 투닥거림일지라도' 나는 다시 그와 한번  만나 사랑을 하고 싶다.



..

..

2021 4월의 어느날, 나는 그의 인별그램에서 그가 유부남이 됐다는 사실을 댓글로 읽게 됐다.






 혹은 대본집

대사 외 지문까지 궁금해서 대본 독파했다.






모름지기 인생드라마에 OST가 빠질 수 없.

 


그 한사람, 이승환

그 사람이 내 맘에 앉은 건, 어느 뜻밖의 순간

그 사람 말보다 하얀 손등이 가지런한 눈빛이 내겐 더 많은 얘길 건네죠

그 사람 입꼬릴 올리며 웃는 게 밥 잘 먹는 게 좋아요



너무보고싶어, 어쿠스틱 콜라보

드라마처럼 혼자 취해도 보고 널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너무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들어



묘해 너와, 어쿠스틱 콜라보

니 생각에 꽤 즐겁고 니 생각에 퍽 외로워 이상한 일이야 누굴 좋아한단 건
아무 일도 없는 저녁 집 앞을 걷다 밤 공기가 좋아서 뜬금없이 이렇게 니가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신기하고 신기해서 보고 싶고 그러다 한 순간 미친 듯 불안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햇살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러다가 니 전화 한 통에 다 낫고

이렇게 너를 바라볼 때 뭐랄까 나는 행복한 채로 두려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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