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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Dec 03. 2020

반려물건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친구가 제주도 여행길에 들른 서점에서 발견했다며 책 한 권을 선물해줬다. 잘 마른 고사릿과 나뭇잎 한 잎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참으로 감성적인 친구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자꾸만 책 표지에 적힌 작가 이름을 확인하게 됐다. 모.호.연. 이제껏 단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인물인데 마치 도플갱어처럼 나와 비슷한 구석이 너무도 많았다. 친구가 왜 이 책을 내게 선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물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나 인형 하나하나에 고유 이름을 붙여주는 것, 애착 물건에 ‘반려’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별스러움이 너무도 비슷한 게 아닌가! 마흔에 접어들기 몇 년 전부터 주변 지인들을 상대로 반려자가 꼭 이성일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해오곤 했었다. 



배우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의 발로’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단지 반려라는 개념을 진짜로 넓게 보고 싶은 마음도 2%쯤은 있었다. 


젠더(gender)라는 개념도 양성에서 무성으로까지 확장되었는데 반려라는 뜻 쯤이야!(미국 오리건주 지방법원 사상 처음으로 시민이 낸 청원을 받아들여 무성(agender)을 법적 성별로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반려라는 의미가 ‘짝이 되는 동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남편이나 아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짝이 되는 동무는 동성일 수도 있고, 동물, 나무 혹은 나의 needs를 너무도 잘 파악해주는 로봇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게 내가 주창하는 바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 등장해서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세컨핸드나 빈티지를 사서 쓰는 것이 새 물건을 사는 것보다 지구에 죄책감이 덜 든다고 생각하는가? (YES!)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규모의 잡화점은 모두 구경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인가? (YES) 수건은 수건의 효능을 다하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NO!) 그렇다면 수건은 수건으로서 쓰임이 다하면 걸레로 재사용하되 절대로 수건인 채로 버려지는 일은 없게 하는가? (YES!) 지갑처럼 취향이 확고하게 반영되어야 하는 제품은 타인에게 선물하지 않는 게 ‘선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가? (Agree!)


3개 이상 나와 같이 YES를 외쳤다면 당신도 작가 모호연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같은 부류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에 대한 애정을 넘어 버리지도 못하고, 모든 것에 ‘투머치’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름을 붙여주는 별난 사람들. 이 별난 사람들의 마이너한 취향이 존중되는 곳이 내가 꿈꾸는 마을이고, 사회고, 세상이다.


나는 고가의 새 가방보다는 당근마켓에서 눈여겨보던 서류가방을 며칠 더 기다린 끝에 5만원 더 할인해서 사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친구네 집에서는 이미 그 쓰임을 다했지만 우리 집에 와서 빛을 발하고 있는 오래된 테이블을 바라볼 때마다 뿌듯하고, 좋아하는 곰돌이 젤리를 먹으며 비룡 먹방을 보다가 레오(남들은 이케아 국민 강아지라 부르지만)를 끌어안고 침대에 누워 스르르 잠이 몰려들 때 가장 행복하다.


모두 다 아파트 아파트 하면서 청약에 목을 매고 당첨되기를 바라지만 내가 바라는 건 아파트에 있지 않다. 사계절을 마당에서 만끽할 수 있는 집을 짓는 게 내 오랜 꿈이다. 그러니 아파트 따위는 필요 없다.(지속적인 자기 합리화는 삶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본인의 취향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이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작가 모호연 같은 사람.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내친김에 그가 친구들과 모여 만든 <매일마감> 정기 구독 신청도 했다. 구독료를 입금한 독자들에게 메일로 그달의 원고를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반려물건>은 <매일마감>의 한 코너였던 ‘버리지못했습니다’ 연재를 엮어 만든 책이다. 단돈 1만원만 지불하면 작가와 함께 살고 있는 편집장 이다가 주축이 되고 그 외 지인들의 재미난 일상이 담긴 이야기를 주 5회, 한 달간 엿볼 수 있다. 


편애하는 밑줄 
내가 갖고 있는 노트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쓰지 않은 노트와 쓰다 만 노트. 그리고 이미 다 쓴 노트다. 노트 한 권을 다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얇은 노트라고 빨리 쓰지도 않고 두꺼운 노트라고 더 쓰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설정한 목표를 잘 따라가면 끝까지 다 쓰게 되는 것이고, 애초에 관심이 없거나 어려운 주제의 노트라면 얇아도 다 쓰지 못하는 것이다.(중략) 노트 한 권을 채우는 건 그저 성실해서만 되는 일이 아니라, 관심과 목표를 잃지 않아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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