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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Apr 30. 2021

나의 sns를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영화 <84번가의 연인>을 보다가


재택을 하고, 늦은 7시부터 온전히 내 시간을 가졌다.

비대면 시대가 아니었어도 유독 전화 업무가 많은 나의 일. 전화를 받는게 주요일과임에도 불구하고 한달에 한두번, 울리는 전화벨소리를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client first 삶을 살아온지 10년.

내 손은 내 의지를 누르고, 어느새 전화를 받는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하여 저녁은 나름 든든히 먹고, 간단히 볼 영화한편을 골랐다.


제니퍼님의 취향과 비슷한 콘텐츠, 라는 카테고리도 있고. 요즘 대세 콘텐츠라거나, 영화제 수상작만 모아둔 섹션도 있었는데 흐린 금요일 나의 마음을 이끈건 <84번가의 연인>이라는 영화였다. 시대배경은 1950년대로,  미국인 작가 헬레인과 영쿡 서점에서 일하는 프랭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사람은 딱히 연인이랄수는 없었고, 한쪽에서 책을 주문하면 다른 한쪽에서 최선을 다해 그 책을 알아봐주는 관계였다. 뭐랄까, 서로에 대한 호감은 있었겠지만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갈등없이, 키스한번 하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엔딩까지 두사람은 단 한번도 마주치지 못하고 

오로지, 편지로<만> 이어진다.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엔 영문학 고서를 파는 서점이 거의 없었다. 있다해도 비싸서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여작가는 본인이 원하는 책을 사기 위해 영국에 있는 서점을 찾아내게 된다. 거기엔 누구보다 책임감 강한 프랭크가 있었고. 헬렌이 구하는 책의 리스트를 써서 프랭크에게 보내면 그는 생면부지의 낯선 미국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책을 찾아 미국으로 보내주는 식이다. 마담, 마담이 원하는 책을 구해서 보냅니다. 라는 편지를 동봉해서. 


오지랖이 태평양같은 독신작가 헬레인도 (내가 나이들면 왠지 꼭 이런 모습일것만 같다) 프랭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그의 동료들과 가족을 위해 정기적으로 달걀과 고기를 보내게 된다. 이에 감동받은 서점 직원들은 그녀가 찾는 고서를 찾아 오래된 저택까지 방문하기도 하고 서로가 헬렌에게 감사 편지를 쓰겠다고 앞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프랭크와 헬레인의 인연은 몇십년간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이후 모든게 부족해진 당시 영국에서는 각 가정마다 한달에 달걀 1개 (진짜 한개), 고기 50 g 밖에 배급할 수 없었다는 다소 신기한 사실도 영화를 통해 알게됐다)





영화를 보던 중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프랭크와 아내의 저녁식사 신(헬레인은 독신이었지만, 프랭크에게는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아내가 있다, 전쟁 중 첫번째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했다)이었다.

젊은시절 한번, 조금 더 나이가 든 후 한번 더, 두번이나 같은 장면이 비춰졌는데 결혼생활이란 대체 얼마간의 인내가 필요한건가, 싶었다. 


그 저녁식탁에서 프랭크는 밥을 먹는 동안 단 두마디를 건넨다. 

very nice.

그리고

Very tasty.


십년 후 저녁식탁 장면에서도 프랭크가 아내하게 한 말은 고작 저것뿐이었다. 

저멀리 미쿡에 사는 헬레인에게 편지를 쓸때는 할말이 차고도 넘치는 프랭크.....였다는 걸 영화를 보는 제3자인 나는 알고 있기에 정적이 흐르는 저 장면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수는 있다. 


이책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구했다, 지난번 보내준 라틴 성경에 실망했다니 미안하다, 당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저택을 방문했다, 서점 직원 중 한분이 지난주 돌아가셨다,

나는 비틀즈를 좋아한다, 브루클린 다저스를 응원할테니 당신도 토트넘 홋스퍼를 응원해달라.

헬레인에게 편지할때 그는 세상 심한 수다쟁이고, 그녀의 편지를 읽을때 그의 얼굴은 세상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프랭크 아내였다면 이 모든 상황을 눈뜨고는 못봐줬을거다. 햄과 소시지 통지림 안받고 말지 당장 그놈의 펜팔은 그만두라고 말이다!!!!! (프랭크 사후에 그의 아내는, 애도편지를 보내준 헬레인에게 답장을 쓰며 고백한다. 당시 당신을 많이 질투했노라고)


물론, 

객관적으로 제3자인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충분히 호기심 생기고 흥미로울 수 있는 관계구나, 싶기는 하다. 


오래전에 본 영화 < her>의 남주가 문득 생각났다. OS 사만다를 사랑했던 그 남자 (주인공이 리버 피닉스 동생이었는데, 생각났다. 호아킨 피닉스!). 그 남자나 이 남자나 상대를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지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her, 를 보면서 잠시 생각했었다. 정 인연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면 지적인 로봇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물론 남자사람이 일순위긴 하다. 없다면, 뭐 차순위로 고려할 수 있지않나 정도의 수준이란 거다;;


나의 SNS를 사랑했던 기혼남들에게


영화를 보고나니 펜팔은 아니지만 글로 무언가(이를테면 썸같은거)를 주고 받던 그 시절 추억들이 생각났다.

2010년이었나. 한창 스타트업에서 홍보와 디지털마케팅을 담당했던 시기에 페이스북 글을 통해 내 정치적 입장을 오랜기간 봐온  P가 어느날 갑자기 <만나자>고 했던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신원이 확실해서 흔쾌히 만나러갔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그러나 결국, 잘 안됐다. 투머치 디테일하게 내게 설명해줬던 그의 과거가 그땐 나름 버거웠던 것 같다.

그는, 지금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광화문집회에 자주 함께 갔던 K는, 처음에 트위터를 통해 만났다. 

그때 막 스타트업 입사 후 새벽까지 일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나를 위해 늦은저녁이나 이른 아침에도 우리집 근처 커피숍으로 찾아와준 친구였는데, 내게 부탁하는 것들 대부분을 잘 들어줬다. 나름 대화도 잘 통했는데-그러니까, 그가 지난 대선에서 mb를 찍었다는 걸 알기 전까진 그랬다-우리에겐 결정적인 한방이 없었다. 그도 고백하지 않았고 나도 고백하지 않았다. 

결혼생각이 없어서 헤어졌다는 애인과 다시 만나서, 결혼했다.


거의 모든 내 블로그 포스팅에 댓글을 달았던 대학원생  C .  오랫동안 댓글로 안부를 주고받다보니 친해져서 별생각없이 저녁을 먹기로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우리동네로 왔던가, 만나서 바로 이동했던가 생각은 잘 안나지만 같이 석촌호수를 걸었다. 그는 나를 보며 TV에 나오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며 신기해하더니, 그뒤로 자주 연락이 왔고 때마다 음악선물도 보내주곤했다. 그러나 뭐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끝이 났다. 그나 그의 일상에 대해 특별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그도 지금쯤이면 결혼했으리라.




그리고 흐른 세월

2021년 5월 이제 브런치나 인스타로 오는 연락은 대부분 스팸문자뿐이다. 위험한 만남을 예고하는 피싱이거나. 연애를 안하고 있는 십여년의 세월......(이렇게나 쓸쓸한 마지막 문장으로 오늘의 브런치 글은 접을 줄은 몰랐지만) 뭐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정말 이렇게 별일없어도 되나 싶을만큼) 별일없이 살면서.


또 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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