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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May 08. 2021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책한권 읽고 영화한편 보면서 밍기적거렸던 어느 토요일의 기록






서울은 사람의 고향이 되기에는 너무 크고 뻔뻔한 도시입니다.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무색무취인 지역이라 성인이 되어 여행을 하면서는 지역고유의 음식을 먹는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자신의 고향이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무색무취라는 고백과, 그외 글에 먹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시인도 우리 큰언니처럼 '먹는것에 진심이 가득한 사람'인 것 같다. 전남무안에서 처음먹어본 감태김, 제주 서귀포의 방어, 칠레산 홍어와는 확연이 달랐다 기록했던 흑산도 홍어, 충남 서천의 박대, 하동의 재첩, 전남 장흥의 표고버섯에 대한 이야기가 몇페이지를 차지한다. 


어느날 통영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술병이 난 시인은 서울에 오자마자 흰죽을 끓여 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흰죽을 먹다가 간장에 식초를 넣어 초간장에 비벼먹으면서, 슴슴한 모든 것에 초간장을 찍어먹었던 아버지를 떠올린 것. 다른 양념이나 부재료없이 음식을 먹어야 할때 초간장만한게 없다는 깨달음에서 시인은 슬퍼진 것 같고, 나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시인의 아버지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쥐약을 먹고 죽은 개의 사체를 동네어른들에게 파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쓰여있었다. 

(이사람 참. 담담하게 음식 이야기를 시작으로 기어코 나를 울리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친구는 맛있는 돼지 간을 분별하는 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동물의 간은 단백질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죽기 전까지 밥을 잘 얻어먹은 돼지의 가은 표면이 매끈하고 분홍빛이 돌며 식감도 좋다고 한다. 반대로 밥을 잘 못먹고 죽은 돼지의 간은 구멍이 송송 뚫려있고 어두운 빛을 내비치고 씹을 때 퍽퍽한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사실인지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그말을 들은 후부터 간을 먹지 않게 되었다. 잘 먹고 죽은 돼지의 간은 그것대로 마음이 좋지 않았고 못먹고 죽은 돼지의 간을 마주하면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본 영화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로빈슨과 나눈 대화로 갈무리



Jennifer Lee, [08.05.21 22:34]

오늘 본 영화는 <타인의 삶> 이라는 영환데. 독일 통일 5년전, 도청받는 극작가와 여배우, 블랙리스트로 낙힌 찍힌 이후 외면당하고 살다 목을 매 자살한 연출가, 그리고 그 사람들을 감청한 비밀경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거기 그런 대사가 나와.




감시당하는줄 모르는 극작가가, 자기 스승이 자살한 걸 알게 된날 여배우인 애인에게 베토벤 열정 소나타를 쳐주면서 한 말인데. "일찍이 레닌이 이 곡을 계속 듣는다면 혁명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거라고 했다는 군. 

이 아름다운 곡을 들으면서 나쁜일을 할 사람이 있을까?"

베토벤의 음악은 언젠가 그, 극작가에게 스승이 선물해준 CD였고 그가 스승을 추모하며, 피아노로 베토벤의 열정을 한참 연주하는데, 도청하던 비밀경찰 코드명 AAA 이런 모시깽이가 갑자기 우는거야.

피아노 연주를 듣고. 이후로도 그 비밀경찰은 극작가 몰래 집에 들어가서, 그가 읽는 브레히트 시집을 가지고 나와서, 시도 읽어. 그렇게 조금씩 감화감동되어, 냉혈한이었던 그가 인간적인 면모를 갖춰가게 되거든. 

도청하면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일거수일투족 낱낱이 보고서에 썼던 그가, 극작가와 친구일당들이 벌이는 <아주 중대한 일>도 감춰주게 되는거야. 이일로 결국 그는 상부에 고발되어 강등도 되지.



로빈슨, [08.05.21 22:36]

영화라 가능한 일일수도.

세상은 문화예술에 감흥하는자들이 살기엔 무서운 곳이라.



Jennifer Lee, [08.05.21 22:36]

나중에 여배우가 끌려가서, 애인인 극작가가 어떤 고발성 기사를 썼고, 

그 타자기가 집 어디에 있다고 말해주거든, 여배우는 약물중독을 감추고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설득에 넘어가서 애인을 팔게 되고 그게 괴로워서 결국 자살해. 

근데 그날, 미리가서 그 비밀경찰이 타지기를 숨겨주거든? 

덕분에 극작가는 무사하고 5년뒤 독일은 통일되고. 이제 혁명도 뭣도 안남아서인지, 세월이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인지 더이상 극작가는 글을 쓰지 않는데 어느날 우연히 <누군가에 의해 빼돌려진 증거물-타자기> 을 감춘게 누군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다가 자기를 도청한 비밀경찰이, 강등되었단 사실을 알고, 그를 찾아가. 

멀리서만 보고, 다시 돌아와서 책을 써서 출판했는데 그게 바로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라는 책이고 그의 코드명이 적혀있어. 책 맨 첫 페이지에. 누구 누구를 위하여, 라고. 

지금은 강등되어서 평범한 삶을 살던 그 비밀경찰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이 도청했던 극작가가 신작을 내서, 반가운 마음에 서점에 들어가 그 책을 보는데. 자기 이름이 떡하니 있는거야. 

누구누구를 위하여, 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들고 결제하러 갔더니 서점직원이 물어봐. 

선물하실껀가요? 포장해드릴까요? 

그때 그 아저씨가 그러지. "아니요. 이건 저를 위한 선물이에요." 

하고 영화는 끝. 오늘 좋은 책, 영화 한편봐서 나름 영혼이 충만해유 ㅋㅋㅋ 

로빈슨도 오늘밤 무사하길. 

편히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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