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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Sep 21. 2022

이스라엘 지파가
미스바 총회에 모인 이유

사사기 마지막 시간 



다음은 사내 성경통독 모임 예수(예수님과 함께한 수요일) 를 위해 정리한 기록입니다.

2022년 9월 오늘은 사사기 마지막 날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모두 미스바 총회에 모일 수 밖에 없었던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작기도: Vera

찬양: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 성령 하나님 나를 만지소서>나의 안에 거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LNrHo0uoK0Q

말씀: 갈라디아서 5:24-26

본문: 사사기 


사건: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에서 불량배에 의해 죽는 일이 발생. 격분한 레위인이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으로 잘라 각 지파에 보냈고 이를 받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하여 미스바에 총회로 모였다.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에 속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레위인의 첩을 죽인 범죄자를 내놓으라고 하나 베냐민 지파는 이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열한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싸우게 되는데 당연히 숫자는 베냐민 지파가 열세하나 두번 다 베냐민 지파가 이기고, 세번째 전투에서야 이스라엘 열한지파 동맹군(연합군)이 이기게 됩니다. 이 기세로 동맹군은 베냐민 성읍을 불태우고 지파 전체를 도륙한다. 그런데 전투를 마치고 보니 한 지파가 없어지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스바 총회에 모인 1차 목적은 범죄를 제거하는 것. 그러던 중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기에 다시는 이런 범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깨달았는데 막상 전투를 끝내고보니 범죄에 대한 응징은 끝났어도 지파 하나가 없어지게 된 것.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수로 남은 패잔병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 미스바 총회에 불참한 야베스 길르앗 처녀들을 시집보내고, 대를 잇게 한다. 야베스 길르앗 처녀를 얻어오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 지역의 결혼한여자, 아이, 남성들을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된다.




박영선 목사님의 사사기 마지막장에 대한 요약: 

이 이야기를 끝으로 사사기는 막을 내린다. 무슨 이런 내용이 있을까 싶게 사사기는 정신이 없다. 읽고나서 아멘, 이라고 화답할 부분도 별로 없어보인다. 

폭력을 행사하고 분노하고 폭발하여 응징한 것으로 도대체 무슨 유익을 끼칠 수 있나?

이스라엘 열한지파가 내세운 명분과 진심이 만들어낸 모순과 비극을 봐라, 사사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것이라고 확신하는 일을 하기위해 역사 내내 인류가 쓴 방법은 폭력과 기만이다. 말로해서 통하지 않으니 결국 폭력을 동원했지만, 폭력을 동원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한과 비극만 남더라는 걸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각각 다른 조건, 다른 정황속에 사는 서로 다른 인생이지만 우리 모두 직면하는 도전은 같다. 

-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 그분의 위대하심을 아는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자유를 주셨는지 아는가

세상에는 답이 없으나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도전에 응하여 성령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매일 만나는 일상에서 도전에 응하여 실력을 쌓으며 살다 주일에 모이는건데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 얻는 유익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데리고 들어간 훈련장이다. 죽을 것 같은 자리, 아무도 몰라주는 억울한 자리, 턱없는 싸움의 자리입니다. "나보고 어쩌라고" 비명이 쏟아져 나오는 일들,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어, 이왕 죽기로했음 멋있게 죽어야지 하는 자리, 그 자리까지 가야한다. 이런 자리까지 가기로 결단했다면 무엇이 겁이 나겠는가? 하나님이 어디에나 은혜를 담아준다는데 무엇이 두렵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전에 각자의 삶에서 차고 넘치자, 우리는 그런 그릇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누구에게 묶여있듯이 우리도 누구를 묶고있다. 이게 우리의 삶이다. 묶여있는 우리의 삶에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부모라서 할 수 있었던, 자식이기에 할 수 있었던, 버틸 사람이 나 하나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바로 그 일이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조건이 된다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실패의 조건 속에 있을지라도 위대하게 쓰일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를 믿는 자들만이 누리는 복이 있는 자리는 강제력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 폭력이 동원될 이유가 없다. 명분과 진심과 현실은 하나로 합치기가 너무 힘들어서 때론 울고 싶어진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저는 순교까지 각오했건만 현실은 왜 이따위입니까?" 하나님이 답한다. "선교하러 간다고 설치지 말고 여기서 죽어 나가라" 그러면 자존심을 내세우며 "하나님 시시한 일상에서 쩔쩔매기보다 차라리 선교지에가서 장렬하게 죽겠습니다"하고 반항하지만 하나님은 거듭 말씀하신다. " 아니다 지금 네 자리에서 죽어 나가라"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선교지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위대한 자리이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공평한 일하심과 매일 더 깊이 찾아오시는 성실함 앞에서 눈을 떠 하루하루의 은혜를 담아냅시다. 그리하여 우리 삶이 공포가 아니라 명예라는 사실을 아는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Q. 우리가 있는 자리가 강제력이나 폭력이 동원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무리 기도:  Cara






사사기를 읽기위한 배경지식

https://brunch.co.kr/@jennifernote/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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