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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Oct 05. 2022

비오는 오후 송리단길에서


자만추에 어울리는 타입이란걸 알지만 벌써 꽤 오래전부터 '자만(자연스러운 만남)' 같은게 별로 없었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만’ 지인이 소개해주는 낯선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올해 소개받기로 한사람은 회사 동료의, 남편이 <업무상 알고 지내는 지인>. 투자자문회사에서 영업팀장을 맡고 있는 사람, 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듣지 못했고 묻지 않았다.


"동료의 남편친구도 아니고, 업무상 지인이면 적당한 거리감있고 좋네?" 라고 친구들이 말했지만 사실 나로서는 동료 남편의 동생이나 동료의 시동생을 소개받는다고 해도 딱히 부담스러워하는 타입이 아니라 거리감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다음번 만남이 기대되는 매력 있는 사람, 이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찾아온 D-day.

하필이면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주 월요일 오후 두시, 송리단길.


실은, 비가 온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루고 싶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줄리가 ‘제니퍼 또 시작이냐, 이번에 미루면 금방 겨울된다. 하기로 한거 토 달지 말고 나가서 만나고 와!' 라고 폭풍잔소리를 했다. <무조건 택시불러서 타고 목적지에 그냥 내려!!!> 라고, 구체적 행동강령까지 알려주었기에 그날, 그녀의 오더대로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타고 목적지에 내렸다.


택시 타고 목적지에 간다는 생각만하고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시간보다 먼저 ‘뷰클런즈’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앉을 곳이 없다는 것. 휴일인 월요일 오후 두시의 까페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다른 장소를 검색해보며 고민하던 그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까페밖에서 우산을 쓰고 전화를 걸고 있는 정장차림의 남자. ‘아, 저 분이구나..’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뷰클런즈에는 자리가 없으니 다른 곳엘 가자고 제안했다.

나도 우산이 있었지만 함께 우산을 쓰자길래, 그의 우산을 같이 쓰고 마땅한 커피숍을 찾았다.

오른쪽 어깨는 이미 비에 젖은지 오래. 바람도 불고, 우산을 씌어주시는 그의 노력이 불편하기도 해서 가장 먼저 보인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역시 비오는 날엔 외출하는 게 아니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강한 확신이 들었다.

더욱 다행인건 그쪽에서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게 전해졌다는 것.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를 나누고, 최근 근황을 주고 받으면서 나름 열심히 대화했다.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라고 말할 정도의 노력은 필요없었다. 대화가 어려운 스타일은 아니시기에.


어쨌거나 마흔이 넘은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극복해낼 수 없음에 대해 빠르게 깨닫고 구태의연한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만남을 정리했다.


그리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 생각했다. 

No more 소 to the 개 to the 팅!


소개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제는 너무도 올드패션처럼 여겨지는 솔로가 이 지구상에 나뿐만은 아닐거다.


독서모임 멤버중 한분이 내게 티비 프로그램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쏠로>와 <개휼, 개는 훌륭하다>.

쏠로도 아니고, 개를 키우지도 않는데 애청하는 프로라면서.


나는 쏠로이기도하고 심지어 개를 세마리나 키우지만 두 프로를 본적도 없다. 그러나 이 두프로를 즐겨보는 상무님은 말씀하셨다. 분명 배우는게 있을거라고. 정말?


정말 그럴까?


속는 셈 치고 이번 주말에 나는 쏠로나 한번 봐봐야겠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되었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솔로특집에 초대되었던게 벌써 10년전인데.

여차하면 십년이 후딱 지나가버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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