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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Feb 27. 2023

[교수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처음에 읽었을때는 단지 수업을 듣고 있는 교수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즐거웠는데,

두번 읽었을때는 수업내용과 연관지어지면서 첫번째 흘려지냈던 것들을 다시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보게됐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번읽어서는 안된다, 두번 세번 읽을때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응팔시리즈의 정은지를 닮은 외모에, 

사관학교 선생님같은 단호한 목소리, 

시원시원한 말투. 

이 세가지 외에도 매력적인 이 책의 저자인 허교수님의 매력포인트들은 참 많은데 이 책은 심리학관련 책들중에서 정말정말 잘쓰여져있지만 살아숨쉬는 통통튀는 매력의 교수님의 모습이 필체에서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책을 읽고,ㅡ 반드시 유튜브 인터뷰 내용이나, 강연들도 찾아보시기를! 


나에게는 이 책이 세가지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 



1. 첫째. 성취로 정체성 형성하려고 하지말자.

회사에서의 성취로 정체성과 자존감을 얻으려는 마음 때문에 성과가 좋지 않을때는 자기효용감이 떨어졌고, 그냥 떨어지는게 아니라 아예 나락으로 떨어져서 한번은 깊은 우울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족과 종교의 힘으로 굉장히 빠르게 회복/극복하기는 했지만, 그때 '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성과때문에 죽고싶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했던 장면을 돌이켜보면서 나의 정서에 문제가 있다는걸 인지했다. 인지는 했는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는 아직은 답을 찾진 못했지만 나는 왜 그렇게 성치에 목을 매는 인간이 되었는지, 왜 그런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꽤 자주 떠올리며 고민 중이다. 


2. 둘째. 발끈, 하는 일이 생기면 먼저 나의 낮은 자존감부터 불러내어 차근차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눠보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늘 그랬듯 후회가 뻔한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화를 낸 후 자책하지말고, 발끈하기 전에 내 감정에 라벨링하고, 재평정하기!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던 큰조카가 내게 가장 자주했던 말이 '급발진' 이란 표현이다. 

내 입장에서는 참다참다 화를 내는 것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생각하는 케이스가 열에 아홉의 확률로 벌어진다. 이때, 자존감이 높은 상상의 인물을 떠올려서 과연 이사람이라면 이 타이밍에 화를 낼지 시뮬레이션해보라고 했다 (이 책에서). 그런 다음에 분노의 수위는 물론, 정말로 이 시점에서 분노 폭발을 게시할지 다시금 결정해야 한다,고.

나는 급발진하고 싶을때 팀장님이었던 대표님, 내게 올바른 신앙인의 길을 안내해주시는 회장님, 큰언니 세사람을 떠올린다. 그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답은 정해져있다. 급발진은 커녕, 웃으며 상대방맘을 세상 편하게 배려해주시면서 모든 사건이 종결된다. 


사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분노할 일도 급발진 할 일도 없기는, 없다.

발끈할때, 차분하게 심호흡후 차근차근 생각해볼 일이다.


3. 셋째. 낙관과 희망 구분하여 매일 더욱 어른스러워지고 싶다.

희망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니라, '불운과 부조리 속에서도 내가 지금 뭐라도 노력하고 있어서 느끼는 가치'라고 했다. 오늘의 행동만이 내 희망을 정의한다, 고 허지원 교수는 말했다. 심리학에서 희망은 무게감이 크다고했다. 희망이 없는 무망감이 자살을 예고하기도 하기에 그렇다고.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낙관주의적 관점덕분에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 백일몽에서 빠져나온 후 느끼는 무력감을 배우기보다, 오늘의 작은 행동으로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매일 더욱 어른스러워지는 어른.  







제니퍼의 편애하는 밑줄


'발끈'이라는 말의 동의어는 낮은 자존감

그 사람의 자존감이 낮은지 높은지로 누군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자존감 높낮이를 물을 것이 아니라 '외현적 자존감'과 '내현적 자존감'의 관계가 어떠한지 살펴야한다. 외현적 자존감은 자기선호, 자기수용, 자기가치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자존감이고, 타인의 눈에 비치는 자기모습을 합리적이고 의식적인 수준에서 평가한다. 의도적이며 통제가능한 명시적인 자존감이다. 이에 비해 내현적 자존감은 우리 내면에서 비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내현적 자존감은 낮지만 외현적 자존감이 높아서 다른 사람눈에 굉장한 일을 해온듯보이는 '취약한 자존감' 유형은 내면의 분노감을 숨긴채로 타인에게 관대한 척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타인의 중립적인 행동이나 말이 의도를 품고 있다는 근거없는 의심에 꽂히면 즉시 반격을 시작한다. 반격은 얼토당토 않거나 지나쳐서 뒤늦은 후회를 불러오는 일도 반복되고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이 우울과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자존감이 높은 상상의 인물을 떠올려서 과연 이사람이라면 이 타이밍에 화를 낼지 시뮬레이션해보는 거다. 그런 다음에 분노의 수위는 물론, 정말로 이 시점에서 분노 폭발을 게시할지 다시금 결정해야 한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호의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라고 로젠버그가 정의했다.


감사할 일들을 기록하는 것도 자존감을 일깨우는데 좋은 방법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제 당신이 당신의 양육자다.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반응하기를 그만두자.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세상에서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자, 일이 되게끔 해야한다. 자존심 내세우기, 인정받기 모두 중요치않다.


내가 그 일을 해내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이다. 내가 그사람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이다.


날선방어에 급급한 사람들이 자주겪는 문제는 정보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하면서 생각이 갑자기 비약한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표정이 변하지? (생각의 점프) >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구나!



당신은 언제 방어기제를 펼치나요? 이 질문이 어렵다면 당신은 언제 자꾸만 정색하거나 분개하게 되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과 있을때에 어느 순간에 (사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공격받았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수치심에 날을 세우나요?


애인과/지인과/가족과 자존심 문제로 버튼이 눌렸을 때에도 상대가 그간 보인 태도를 재빨리 기억해 내야 한다. '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고 나도 저 사람을 좋아한다. 그동안의 역사를 돌아볼때, 앞으로도 나의 곤경을 기꺼이 함께 헤쳐나갈 사람임을 충분히 봐왔다.'


전전두엽은 맥락을 추론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하고, 해야할 행동을 개시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등의 고등한 기능을 맡는다. 고차원적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하드웨어 자체(전전두엽 부피)가 줄어든 경우, 더 효과적이지만 더 오래 공을 들여야하는 문제 해결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할일을 뒤로 미루거나, 폭식 폭음을 하거나 자실시도를 하는 등의 대처가 대표적이다.

분명 우울은 뇌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흔적도 언젠가는 어떻게든 옅어지니까 굳이 흔적을 의식하면서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자. 평판, 성취, 또는 어떤 대상이 내 삶의 의미여선 안된다.

'어떻게'에 집중하자.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놀지, 어떻게 사랑할지.


 심리학에서 희망이라는 개념은 무게감이 상당하다. 희망이없는 무망감은 자살을 예측하는 강력한 위험요인이기도 하기에. 희망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니라, '불운과 부조리 속에서도 내가 지금 뭐라도 노력하고 있어서 느끼는 가치'다. 오늘의 행동만이 내 희망을 정의한다.


인간은 원래 복잡하다. 우울하면서 행복할 수 있고, 실패하면서 배울 수 있고, 관계를 지속하면서 독립할 수 있다.


성취로 정체감을 형성하지 말자. 직장에서 꼭 자아실현 안해도 된다. 직업이나 성취는 당신을 구성하는 여러 조각들 가운데 하나다. 누굴위해 살지말고 당신이 행복해지는게 최우선이다.





당신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하고 싶은가요?
당신과 같은 사람과 평생 즐거이 지낼 수 있나요?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했나요?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성격적 단점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 나처럼 정서적 변덕이 심한 사람은 좀 어렵겠다, 싶다면 그 지점은 본인의 심리적 성숙을 좀더 꾀해야 하는 부분이 맞다. 지금 그 부분 때문에 당신이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는거니까.






에필로그


"과대 재질인데?"


과대 재질?

그런 표현은 처음들었지만,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렇게 과대가 되어 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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