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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Apr 21. 2023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인간성상실의시대

너무 바빠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살수가 없다고 푸념하게 되는 즈음, 화도 많아지고 울컥울컥 하는 일도 잦아졌다. 작은 사무실 안에서 매일 만나는 M과 하루 딱한번 0.5초 눈을 마주칠 뿐이다. 퇴근즈음 '퇴근한다'는 인사를 나누기 위한 찰나의 순간.


그러던 와중에 동료의 시어머니가 작고하셔서 시간을 내서 장례식장엘 갔다. 내일까지 해야하는 일은 뒤로하고, 인터뷰 스케줄을 셋업해야하는 고객사의 요청도 미뤄두고 오랜만에 오래된 동료들과 회포, 라는걸 풀었다. 가슴에 칼이 5개나 꽂혔다는 한 동료는 덕분에 가슴에 박힌 칼 하나를 빼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마음이 편한 오래된 친구들과의 속깊은 대화라는 것은,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나 중요한가보다. 네번의 장례식에서 그분의 남은 네개의 칼도 빼주게 된다면 좋겠다.


전날 장례식때문에 못했던 일을 하느라,

점심도 거르고 자리에 앉아 일을하다 문득 화장실 가고 싶은걸 하루종일 참고 있다는것을 인지하게 됐다. 뭐그리 대단한 일 한다고 생리현상까지 참고 미련을 떠는지. 그러는 와중에 동료1이 비타 500을 주고갔다 (비타민음료를 마시지 않지만 감사히 받았다). 동료2는 러블리한 청첩장과 함께 쿠키를 주었다(내가 좋아하는 마카다미아 벤스쿠키!! 얼마나 많은 설탕과 버터가 들어갔는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동그랗고 큰 쿠기를 다 먹어치웠다!)


퇴근무렵 동료3이 달콤한 한라봉과 함께 삶은달걀을 주고 갔다.

동료4는 점심도 거르고 그렇게 일하다 쓰러진다고 경고하면서 오쏘몰을 주고 갔다 (가슴에서 칼하나를 뺀 그 동료다. 오쏘몰은 시댁에 간다는 캐롤을 주었다).


저녁을 먹고 자리로 돌아와보니 비타민d+칼슘과 함께 작은 메모가 남겨있었다. 동료5의 글씨네.


오늘 대체 무슨 날이지.

작은 사무실안에서 사랑과 선물이 넘쳐난다.

(사실 굉장히 감동적이고 고마운 선물과 메모지만 그들이 준 모든 비타민은 애석하게도 다른 이에게 선물될 확률이 100%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나의 동료들이 있다면 부디 서운해하지마시고 제니퍼에게는 비타민 선물은 안해줘도 된다는 소문 좀 내주시면 좋겠다. 왜냐하면, 제니퍼는 오로지 유사나 비타민만 take 하기 때문이지요;;)


어쨌거나 이게 모두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

물론 나도 뭐든지 과하게 나눠주는 타입이지만 늘 주는 입장이다보니 주는 것은 당연한데 받는일은 아직도 너무 어색했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받는다는것은 이런기분인건가?


이처럼 사랑이 가득한 사무실안에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운운했던 내가 참…



내게 비타민을 챙겨주는 동료들


오후 4시라는 애매한 시간

팀 막내를 데리고 나와 점저를 먹었다.

오늘의 메뉴는 훠거.


담주 월요일에 입사하기로한 후보자가 오늘 아침에갑작스럽게 연락해서, 다른 대기업에서 입사제안을 받았다며, A사에는 미안하지만 입사철회를 요청해달라는 전화한통을 받았다. 3개월간 후보자 매니징하면서 애썼던 우리 막내가 실망이 컸다. 이런 일만 올해로 벌써 두번째 겪는 1년차 우리막내. 막내둥이 헤드헌터가 예기치 못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도 어려울텐데, 내게 핍박받으며(;;) 부득이하게 입사철회를 할 수밖에 없었던 후보자의 사유와 그간의 상황에 대해 고객사에게 리포팅 해야하는 과정을 의연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보며 이 아이가 또 한 단계 레벨업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저만 내 추궁조의 질문에도 이리저리 답변을 잘 받아준 막내를 안아주고, 괜찮다 말해주고, 데리고 나와 밥을 먹이고 나니 내 마음도 아침보단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인생지사새옹지마라고했잖은가

점심시간에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동료5가 옆자리로 와서 뜬금없는 상담을 시작했다. 칼슘비타민을 준 그 동료다.


 "요즘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고민 좀 해보다가 2주뒤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굳이 2주뒤 이야기할 게 있을까?

무슨 감정인건지 되물었다. 성격이 급한 이제니퍼씨...

그의 사연인 즉슨,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이 가장 행복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문득 이런저런 감정이 솟구쳐온다는 것. 행복한데 불안하기도 하고, 실수할것 같은 두려움도 든다는 것.

어랏? 근데 그건 모두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해 불안과 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냥 그 두 친구 (강박, 불안)을 친구삼고 내 한켠에 잘 넣어두고 어울렁 더울렁 데리고 살면 어떨까"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솔루션은 그정도가 아닐까? 나는 상담사가 아니고, 치료사는 더더욱 아니기에 달리 더해줄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이해할수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속에서 나에게 도움을 청한 동료 덕분에 나의 자기효능감도 1정도는 올라간 것 같다. 상태자존감도 올라갔겠지.



항상 느끼는건데 저는 이사님 목소리가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말은생전첨들어봐

일찍이 스무살무렵부터 보컬 트레이닝같은걸 받아보고 싶어했던 나로써는 생전처음 듣는 목소리 칭찬에 순간 사고가 정지, 되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숱한날 내 목소리를 핍박하고 질타했던가. 그런 내 목소리를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타났다니. 그것도 항상 느꼈다니?? 언빌리버블. 인생지사 참으로 아롱이 다롱이랄 수 있겠다.

이제부터는 나도 내 목소리에 조금 더 자신감 장착하고 후보자들과 통화해도 되려나.

어쨌거나 내게 목소리에 대한 또다른 관점을 볼 수 있게해준 동료 HS 에게 이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를 전해본다.


#이바쁜와중에과대라니

이런 와중에 과대가 되었다. '과대재질' 일수밖에 없는 나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다음주에는 첫 중간고사가 있다. 학부때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탓에 (8학기중 한번 놓쳤나...) 대학원이라고 다를쏘냐, 하면서 두주전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정리한 <제니퍼 비법노트>를 원우들에게 공개했다.

다행히 1학기 중간고사는 한과목만 시험이고, 나머지 두과목은 기말에 과제와 기말고사로 대체된다. 3과목중 1과목만 공부하면 되서 마음이 좀 가벼울줄알았는데 전혀아니다.

다 잘할수 없는데 왜 다 잘하려고 하는건지, 그런 성취에의 욕구, 인정에의 욕구, 이런저런 욕구때문에 내 삶이 힘든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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