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
가족들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들 넷 모두 조국을 좋아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연휴기간에 조국과 조민 책을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조민 책 먼저 즐겁게 읽고, 맘이 아프고 무거울것 같아 미뤄두었던 조국의 <디케의 눈물>을 집어들었다.
또, 당연하게 눈물부터났다. 정치가 뭣이간데 한 가족을 이토록 처참하게 짓밟는 건지, 언론과 검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지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너무 화가나기도 하고 환멸을 느껴서 '정치적 냉소자' 대열에 합류했는데, 모처럼 엿새라는 쉼이 허락되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로 했다. 그 시작은 조국의 책을 읽는 것.
그나마 위안을 준 건, 정경심 교수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것, 조민이 고졸신분이 되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소소한 일생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것, 고통의 터널이 얼마나 길지 그 끝에 어떤길이 있을지 모르나 흠결과 과오를 반성하며 묵묵히 자기가 가야하는 '길없는 길'을 걸어가겠다'는 조국의 글이었다. 어쩐지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조국의 시간>을 읽을때보다는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다.
세상의 빛나보이는 자리와 지위는 모두 내려놓았거나 박탈당했지만,
한명의 인간, 한명의 시민으로 살아갈 삶도 의미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비록 수모와 시련의 연속이지만, 모두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감당하고 있다. 고통의 터널이 얼마나 길지, 그 끝에 어떤 길이 있을지 모르나,
흠결과 과오를 반성하며 '길 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
디케의 눈물, 서문 중에서
법을 이용한 지배는 가짜 법치이며, 시민의 안전을 존중하고 고통받는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이 진짜 법치의 출발점이라 믿는다, 고 조국은 책의 제일 첫 페이지에 자필로 썼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그가 어떻게 지금의 <조국>이 되었는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수 있었다. 약자의 편에선 공정함. 사회정의.
조국은 <삼국지연의> 속 문구를 빌려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넌다' 가 지금 자신의 모토가 될 수 밖에 없다며 더 베이고 찔리고 더 멍들더라도 앞으로 가겠다고 썼다. 등에 화살이 박히고 발에는 사슬이 채워진 몸이라 날지도 뛰지도 못하지만,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한다,고. 검찰의 칼에 베이고 보수를 자청하는 몰상식한 이들에 의해 찔리고 이리구르고 저리구르며 멍든 조국이, 그렇게 등에 화살이 박히고 발에 사슬이 채워진 몸으로 기서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난다. (오늘은 콧물도 난다. 연휴기간 너무 이리저리 집안일에 마당일에 애를 쓰며 지냈는지 감기가 와서 맑은 콧물이 하루 종일 흐르고 있다. 내일은 콧물이 묽어지고 열이 오르고 감기증상이 나올텐데. 다급히 쌍화탕과 비타민을 챙겨먹었는데 오늘밤 앓고 내일은 나아지기를!)
그럼에도 불고하고 기어서라도 가고자 하는 그의 길에, 굵은 돌 유리조각없는지 굽어살피어 미리 그것들을 제거해주며 연대하는 사람들 중 한사람이 나이기를 바라본다.
나는 그렇게 조국과 동행할 것이다.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중략)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이는 누구에게나 평생 계속되어야 할 질문이다. (중략) 수많은 별들이 모여 밤하늘을 밝힌다. 나는 자신의 색조와 조도로 빛을 낼 것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Dike 망나니처럼 무지막지하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라, 늘 균형과 형평을 중시하는 차분한 모습이다. 나는 디케가 형별권으로 굴종과 복종을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 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신이라고 믿는다. 법치가 검치가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종국에는 '법을 이용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의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나 역시 그날이 속히 오길 빈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아니다.
을사오적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5인은 모두 최고위급 판사 출신이었다.
"법관으로 재임 중 중립적이었다고 생각한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중 약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
_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벤저민 카르도조가 퇴임하면서 남긴말_
스웨덴에는 6대째 약 150년동안 세습경영을 하면서 시가총액이 스웨덴 주식시장 40%를 넘는 발렌베리그룹이 있다. (중략) 발렌베리 가문사람으로 최고 경영자가 되려면, 부모 도움없이 명문대를 졸업할 것, 혼자 몸으로 해외유학을 마칠것, 해군장교로 복무할 것 등 세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발렌베리는 탈세나 분식회계를 하지 않고 불법적 재산상속도 하지 않으며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을 벌인다. 노동조합을 인정함은 물론 노동조합을 경영 파트너로 대우한다.
나의 정신세계의 구조와 논리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서양 철학가 사상가 네사람을 소개한다.
(서양인들 외에도 리영희선생, 강만길 교수, 함세웅 신부 등의 영향도 지대했다)
1. 먼저 장 폴 사르트르.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을뿐만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배에 대항해 투쟁을 벌이던 '알제리해방전선'에 자금을 지원하며 조국 프랑스에 대한 '반역'을 저질렀다.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공산당과도 연대했다. 소련을 과도하게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실책을 범했으나 시대적 요구에 항상 주저하지 않고 온몸을 던졌으며 그과정에서 온갖 비난과 공격을 기꺼이 감수했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2. 버트런드 러셀 또한 내가 사랑하는 지식인이다. 러셀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 등 강렬한 세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다"고 말했다. 여성참정권을 주장해 달걀세례를 당하는 등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반전, 징병거부 운동을 벌이다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됐던 그는 1960년 노벨문학생을 받고 난 후에도 정치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61년 핵무기 반대운동을 펼치며 영국 국방성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다 징역 2월을 선고받는다. 그의 나이 89세였다!
3. 조지오웰과 알베르 카뮈도 내게 큰 영향을 줬다. 냉전체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지식인 상당수는 공산당으로 달려갔지만 두사람은 달랐다. 조지오웰은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인이었던 그는 미얀만에서 제국경찰로 근무하다 제국주의의 악행을 경험하고 문필활동에 집중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반파시즘 의용군으로 자원하면서 스탈린 주의에 입각해있던 스페인 공산당의 문제점을 직접 경험한다. 소련과 그에 동조하는 영국 사회주의 운동을 매섭게비판했고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4.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프랑스계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알제리에서 대학을 다니고 알제리 공산당에 가입했는데 스탈린주의 노선에 반발해 관계를 끊고 우파가 됐다. 프랑스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유럽 지성계에 퍼져있던 친소련 경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오웰이나 카뮈의 스탈린주의 및 소련비판에 대해 당시 유럽의 공산당과 좌파 지식인 다수는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그 비난 뒤에는 파시즘과 제국주의와 싸워야하는 상황에서 스탈린주의와 소련의 문제점을 덮고 넘어가자는 생각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웰과 카뮈같은 독립적 지식인들은 굴하지 않고 진정으로 이상적인 사회,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들만큼 '정치적'인가? 이들만큼 뜨거운가? 이들만큼 한결타은가. 이들은 언제나 나를 반성하게 한다.
** 과이불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 당동벌이: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무리끼리 돕고 다른 무리는 배척한다 (139p)
** 처렴상정: 더러운 곳에 살지만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