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북리뷰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땐 평범한 가정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위안을 얻었다.
by 사샤마틴
전세계 요리를 연구하면서 그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하던 어느날 블로그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게된다. 어릴적 기억과 그 기억을 추억하게 하는 요리 레시피를 하나씩 엮어먼든 책은, 흔하디 흔한 요리책에서, 멋진 자전적 성장소설이 됐다.
부엌일엔 젬병이었던 인문학자가 암선고 받은 아내를 위해 직접 요리를 시작한다. 병석에 있는 아내는 이미 음식에 대한 애착이 없다. 그나마 남편이 마음을 다해 만든 요리를 (먹는다고 할 수도 없다) 입에 댈 뿐. 남편은 독서와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으로, 요리라고는 라면을 끓여본 것이 고작이다. 두려운 요리 그리고 무서운 부엌. 모든 것을 글로 배운 사람답게 남자는 요리에 관해 메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메모 혹은 ‘그남자의 아주 사적인 부엌일기’가 요리책 같으면서도 요리책이 아닌 문학적인 에세이로 재탄생되었다.
결국 아내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된장국을 끓여서 아들과 식사를 하다가, 남자는 그제야 아내의 속뜻을 깨닫는다.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배우지 않았다면, 아내가 떠난 이후, 내내, 주구장창 아들과 라면만 끓여먹었을텐데. 이러려고 그랬나. 생전에, 잘 먹지도 못하면서 밥을 해달라던 아내를 떠올린다.
분명 첫 시작은 남(아내)을 위해 한 일인데, 그일이 결국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이 종종있다.
힘든 투병과 간병 과정에 대한 언급도 없고, 슬픔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조리 과정만 담담히 적어놓은 이 남자의 사소하면서도 사적인 부엌일기에 왜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다.
딸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딸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레시피를 비롯해서 거의 살면서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책으로 남겨줬을 것 같다. 피곤했겠지? 딸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그런 날이면 할 일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는 날, 그냥 다 그만두고 막 망가져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날. 그래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어. 이제 엄마도 늘 네 옆에 있지 않게 되었으니 이렇게 편지를 써. 우선 고양이 털의 개수보다 많은 그런 날을 살아왔던 엄마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거야.
첫째, 생리일이 다가왔나 체크해볼 것
둘째, 무조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일을 할 것.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제일 좋은 친구를 만나거나. 아니면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를 봐. 목욕탕에 가서 오랜만에 큰맘 먹고 목욕관리사분에게 몸을 맡겨 때를 밀거나 아로마 마사지를 받거나 네일숍에 가서 손톱을 잘 정리해두는 것도 좋겠다.
가을저녁이 일깨워주는 것
엄마의 할머니 친구는 예전에 엄마를 보고 " 많이 경험하고 많이 살아내라. 죄라도 많이 지어라. 제일 나쁜 것은 젊은 애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츠리고 있는 거야. 영화나 책속으로라도 들어가 모험을 해라."
거리두기, 어렵지만 연습해야 해
친구는 조금 거리를 두고 만나지 않으면 되지만 가족은 어떻게 하느냐고? 연습을 해야 해. 거리를 두는 연습. 침묵하고 말을 적게 하고 정서적으로 훌쩍 거리를 두어야 한단다. 지금 엄마는 가끔 버릇없이 구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려운 일이야.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만일 하지 않으면 그들은 한없이 고약해진단다.
타고난 것과 할 수 없는 것
현실은 생각보다 늘 훨씬 드라마틱하단다. 성 프란치스코가 "주님, 제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하게 해주시고 할 수 없는 일은 당신께 맡기게 해주시며 이 둘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소서" 했던 기도는 그러니까 인생에 대한 이런 통찰에서 나온 것이었을꺼야. 실제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점을 타고났는지 잘 살펴보고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때로 영혼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하지마라. 누군가 너를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거든 그와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아. 백합은 가시가 있을 수 없고, 나팔꽃은 꼿꼿이 설 수가 없단다.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고치려고 해서는 안 돼. 저기 저 연예인이 입은 옷, 저기 내 친구가 다루는 악기가 중요하지 않아. 네 영혼이 원하는 것을 살펴라. 그것을 선택할 때 너는 그것을 잘할 수 있어. 그리고 행복할거야. 그렇지?
마음을 돌리는 한 가지 방법, 보내주기
너무 사랑해서, 라는 말은 거짓이야. 엄마들은 너무 사랑하기에 그 아이들을 떼어내서 학교에 보낸단다.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사람과 짝지어 멀리 보낸단다. 너무 사랑하는 것은 없어. 정말 사랑하는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가가 있을뿐이지.
외할아버지의 술에 대한 원칙
첫잔을 철저하게 세번 이상 나눠마신다는 거야. 속이 비었든 차있든 간에 이 원칙만 잘 지키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더라고.
원래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지만, 언젠가 술을 많이 마시는 자리가 있다면
혹은 술을 많이 마시는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피드백 받아볼 생각이다. 정말 고주망태가 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효과적인 방법인지.
술에 대해서는 참으로 할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수가 2차를 넘어가지 않도록 네 자신을 조절하는것이 중요하다는 거. 네가 아무리 생각해도 네자신이나 상대가 멀쩡해서 정겹게 혹은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 모르겠다마는 웬만하면 누군가 잡아서, 차마 나 혼자 간다고 하면 분위기 깨질까봐, 그도 아니면 내가 간다음에 내 흉을 볼까봐 두려워서 가게되는 그 이후의 시간은 한마디로 부질없는 시간이기가 아주 쉽단다.
분위기를 깬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럼에도 늘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조카나, 언니나, 엄마나 개 때문에 (핑계였을까, 숙명이었을까;) 나는 늘 1차를 끝으로 혹은 1차 중간에 분위기를 깨면서까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편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앞으로도 2차를 넘지 않는 것을 고수하되, 가능하다면 1차는 끝내고 일어서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독거노인에게 밥하는 법 가르치기
엄마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울해지려고 하면 몸을 움직여라. 딱 한번만 움직이면 돼. 이럴 때 제일 좋은 게 바로 요리나 집 안 청소 혹은 음악을 들으며 걷기 등인 거 같아. 네가 우울해하는 데는 수만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딱 한가지야. 우선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네 몸에 좋은 것. 살도 안찌는 것 말이야) 따뜻하게 너를 감싸는 것. 그리고 좋은 말씀을 읽거나 듣고 밝은 생각을 하는 것.
그냥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그냥 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 만일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아니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친분이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거저 주려고 한다면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해. 곰곰 생각해봐야 해. 그 일로 인해 너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험담을 들을지도 모르고 혹은 온갖 비방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몇번의 뼈아픈 경험을 하고 나서 나는 이제 그럴 경우 내 자신에게 물어. "네가 이것을 주고 나서 너는 그걸 준 대가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모함당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심하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이런 물음 없이 주는 행위는 사실 위험할 수 있단다. 첫째, 내가 괜히 좋은 사람인 척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위험이 제일 크고, 받는 상대는 자존심이 상하게 될 수 있다. 주는 나는 안 그러려고해도 조금의 서운한 행동에도 '내가 줬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받은 그는 '줬다고 저런 식으로 유세하는구나' 하는 이중의 오해에 빠지기가 쉽지.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고 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지.
나에게 주는 레시피
오늘은 나를 위해서 프렌치 토스트를 해 먹을거다.
빵에 충분히 달걀을 적셔서 소금 약간에 설탕 듬뿍 넣고서.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보다보니까, 괜히, 나도 한 번 날 위해 음식다운 음식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시작도 전에 망 스멜....
냉동 빵은 꺼내다 찢어졌고 집엔 설탕도 소금도 없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먹방
요리 관련, 책을 정리하다가 다시 오랜만에 먹방을 봤다.
지금은 수많은 먹방 유튜버가 있지만 그시절 내가 사랑한 유튜버는 벤쯔, 도로시, 입짧은 햇님 셋이었다. 공통점은 설명을 조곤조곤 잘해주면서 야무지게 잘 먹는다는 것.
벤쯔는 많이 먹고 다정하게 질문에 답해주는 컨셉
도로시는 조금 먹지만 댑따 매운 것만 먹고 무엇보다 손으로 김치를 쫘악쫘악 찢어먹는게 매력 (도로시매운맛 떡볶이도 나왔다! 우와~)
햇님언니는 직접 김밥을 말으면서 육개장 10개, 짜파게티 11개 끓이는 스웩이 넘친다는 점!
그런데 우리의 벤쯔는 요즘 심신이 괴로울 것 같다. 과대광고로 벌금을 냈다는 이야기를 얼핏 지인통해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상황을 알고봐서 그런지, 표정도 예전 같지않고 즐겁게 먹는 것 같지도 않아서 걱정이 됐다. 이런저런 구설수에도 250만명이라는 팔로워의 위엄 때문에 조회수가 높아서인지 계속 방송은 하는데 영혼은 안드로메다에 두고 온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헤어진 연인을 보는 것처럼 (이게 아닌가) 그냥 좀 불편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댓글 상위엔 욕들이 가득하다. 정신과 상담받아라. 쉬어라. 먹토, 먹뱉하냐. 등등등. 어느날 갑자기 1세대 크리에이터라는 생소함으로 찾아온 벤쯔. 그가 다시, 집중하고 즐거워질 무언가가 생긴다면 좋겠다. 꼭 유튜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요즘 미저리 언니는 햄지 먹방을 본다. 평범한 매력이 있단다.
나도 참 잘 먹을 수 있는데, 빨리도 먹을 수 있고. 한번 찍고 싶다. 먹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