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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헤드헌터 Feb 11. 2024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가족들과 설연휴를 보내고 계획보다 하루 먼저 서울에 올라왔다.

모처럼 혼자만의 휴일을 보내고 싶어서.

엄마와 언니들이 싸준 맛있는 나박김치와, 각종 전들은 냉장고에 넣고 저녁나절 과자와 '어메이징 오트'한잔을 놓고 영화를 골랐다.


지난겨울 다녀왔던 대만여행의 후유증(대만앓이)이 남아있는탓에 '대만영화'중에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무수히 많은날 타이틀만 보고 바로 스킵했던 그영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년'도 아니고 소녀라니!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대만여행을 다녀온 직후였기에 아주 사소할지라도 대만의 정취를 느끼고싶어 보게됐는데


결국, 아주 오랜만에 명치끝이 아플만큼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쏟아지면서 애써 잘 묻어두었던 나의 2007년이 또다시 소환되고 말았다.


아니, 도대체 왜, 모든 아름다운 첫사랑은 그렇게 다 추억속으로 묻혀지고 사라지는 걸까. 

왜, 영화감독들은, 소설가들은 이루어지지도 않은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걸까.

이루어진 이야기도 많을텐데.  


영화를 보고나서 <민수기> 성경공부 요약하기, 매삼주오 성경읽기 레위기 부분 마저 읽기, 땅끄부부 홈트를 하려고 했는데 계획했던 모든 것을 미루고,


잠을 잤다.


어렸을땐 친구 붙잡고 그때 이야기도 하고, 혼자서 간단히 술한잔도 기울여보고, 괜시리 슬픈 음악도 들어보고, 그때 썼던 일기장도 읽어보고 그때를 추억하며 글도 쓰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인지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줄이려고 그때 기억이 소환되면 차라리 잠을 자려고 노력하게 됐다.


자고나서 든 생각은,

첫사랑이라는 것은 사랑했던 '그애'뿐만 아니라, 그시절의 나에 대한 그리움도 크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됐다는 것. 그애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내모습을 내가 오랫동안 놓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됐다. 호시절이랄 수 있었던 영국에서의 8개월의 시간들.

언젠가 좋은 웹툰작가를 알게 된다면 그시절 내 이야기를 15분 단편 애니매이션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한번 해보고싶다. 어떻게해도 잊히지 않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몇번이고 가고 싶었던 그 시절 나의 아름다운 날들을 영상으로, 기록물로 박제해두고 싶다.

뭐, 언젠가 그래줄 작가가 나타난다면 말이다.


내일은 무슨 영화를 봐야할까.

대만 영화 추천 받습니다^^



제니퍼씨가 편애하는 장면들


<영어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벌을 받게 된 소녀에게 자기 책을 양보해주는 소년> 어떻게 반하지 않겠는가. 대학시절내내 내가 짝사랑했던 상대는 한자에 약했던 나를 위해 <물권법> 교과서에 한자음을 달아주었던 2살 연상의 오빠였다. 당시 그 오빠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서 우리의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졸업후 다시금 서로에게 기회가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상대의 작은 호의에도 가슴이 뛰던 시절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가장 잔인한 것은 여잔 남자보다 성숙하고
그 성숙함을 견딜 남자는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시절에 유치했던 모습 그대로, 대학시절이 되어서도 철이 없다고 느껴지면서 소년과 소녀는 2년간 연락을 하지 않으며 지내게 된다.


대학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한 소녀가 제일 먼저 찾은 상대는 바로 유치할지라도 언제나 자신에게 진심이었던 커징텅이었다.


션자이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늦은 밤 한달음에 달려온 커징텅.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게 된다. 참으로 용기있는 청년이다. 밀당같은 것 없는.


이 부분이 제일 가슴아픈 부분이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면서 션자이 결혼식에서 커징텅이 회상하는 장면.


션자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강한남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교내 도전자들을 모아 격투기를 했던 커징텅. 커징텅이 맞고 피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속상했던 션자이는 화가 나는 마음에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의 유치한 모습 그대로'라며 커징텅을 나무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했지만 그 모습이 결국 션자이 눈에는 유치한 어린애 같았다는 부분에서 커징텅은 눈물콧물 쏟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자존심이 상한다. 서로의 맘과 다르게 션자이는 커징텅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커징텅은 션자이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되는 법을 모른체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날...

울면서 속상해하는 션자이에게 달려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줬더라면, 그애가 왜 속상한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서로가 대화를 나눴더라면...


션자이가 다른남자와 손잡는 것도 싫었던 커징텅은 션자이의 결혼식에서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결국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는 걸 알게된다.

(확실히 멋진 남자다. 커징텅은. 사실 대부분의 남자가, 나또한. 그렇게 멋지게 축복을 빌어줄 순 없을 것 같기에!)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결혼'은 아니기에 이 영화가 새드엔딩이랄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결말이 좀 가슴아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랑의 완성은 결혼, 인것 같다.

조금 고리타분할지라도. 나는 그렇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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