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단상
마지막 수업에도 늦고 말았다.
애초부터 무리였다. 일을 하면서 작가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욕심이었다. 한달 한달 마감기간에 맞쳐 칼럼을 쳐내기도 급급한데, 거기다 100페이 분량의 대본을 쓴다는 건....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다. 열정이 있고 성실한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열정만 있을 뿐 성실하지 못한 내겐 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이었다. 불가능한 꿈을 꾸라던, 체 게바라가 괜히 원망스러워진다. 체 게바라 잘못은 1도 없는데;;;
6개월의 수업을 마치고 돌아보니 남은 것은 <용두사미>라는 네 음절 뿐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김윤영 선생님을 알게 된 것.
" 대본이라도 내지 그랬어, 완성하지 못했어도"
선생님 말에 가슴이 뭉클하지만, 벌써 오래전부터 연수반에 대한 생각을 접었고, 생각을 접음과 동시에 대본을 쓰려는 노력도 접어, 버렸다.
그러니까, 수업을 들어보겠단 결심으로 작가교육원을 등록한 것도, 대본을 내지 않기로 한 것도, 심화과정으로 가는 연수반을 신청하지 않은 것도 다 내 선택이었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없어야 한다. 아니 없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교육원 등기들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그간 감사했다고. 다시 꼭 찾아뵙겠다고. 답이 없다.
행여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성적에 연연하는 것으로 비춰질까싶어 문자 하나 보내는 것 조차 망설여졌었는데 이젠 홀가분하다. 자주 연락드려야지.
"잘 쉬고 씩씩하게 일하고..원고 낼 것!"
새벽 세 시.
자려고 누웠는데 선생님께 답이 왔다.
그런데 답장을 드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원고를 낼 자신이 없어서.........
_2010년, 여의도, 드라마 작가 교육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