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Apr 01. 2021

자존감의 결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아파하는 마음을 위해

요즘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 자존감을 다루는 책들이 많아졌다. 공급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아졌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하기도 하니 우리 사회에 자존감이 얼마나 결핍해 있는지는 서점에 나와있는 책들이 말해주는 셈이다. 자존감이 없다는 말이 흔해진 만큼  말이 주는 심각성은 과거보다 덜해진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나에게 여전히  가슴 아픈 말이다. 불편한 상황은 벗어나면 그만이고, 싫은 사람은 끊어내면 되지만,  자신이 싫어지면 끊어낼 수도 피할 수도 없이 싫은 자신을  순간 마주하며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존감의 결여가 아픈  세상이 힘들고 싫어지는 것보다는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순간들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이 중 하나라도 느껴본 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미움"이 주는 마음의 짐이 얼마나 어둡고 무거운지를. 그렇다면, 그 무거운 짐을 셀 수 없이 외로이 혼자 주고받는, 자존감이 결핍된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상처들에 짓눌려 있는 것일까.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받는 사람이 동일한 모순이 주는 아픔은 어디서부터 치유해야 할까. 자존감의 상실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는 걸까.




가장 흔히 경험하는 증상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내가 가는 길이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실없는 웃음을 나누고 싶지도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미워하는 사람과는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은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곧 그 아픔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조금 더 힘을 내자며 어설프게 결심을 해도 덜컥 내 모습이 싫고 초라해 보이고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충동적인 마음이 생긴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반되는 이 두 개의 마음이 주는 혼란은 자주 날 지치게 하기도 한다. 자신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수면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억지로 계속 잠을 청하기도 할터이다. 그렇게 셀 수 없는 낮과 밤들을 침대에서만 멍하니 보낸다. 그러다가 가끔은 자신조차도 아끼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는 자괴감에 괜한 감성 풀이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정말이지 초라함의 끝을 보는 것 같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초라함의 끝을 본 상처 받은 마음이라면, 당신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대체 무엇이 내 자존감을 낮추었는지 파악하려고 하는 일이다. "왜"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작아 보이게 하는 것,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이미 차고 넘치는 세상이기에 그것들을 헤집어봤자 자존감의 궁극적인 치유를 하진 못한다. 지금 정확히 파악해본다 한들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화살들을 일일이 부러트리는 것을 불가능할 테니 결국 이것은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시적인 대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일개 화살이 아니다. 자꾸만 화살을 주워다가 자신의 과녁에 꽂는 스스로의 손이다. 자신이 아프고 힘든 것을 허용해버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화살을 탓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나를 미워하는 그 어설픈 착함을 버리는 것이다. 어설프게 착해서 되려 자신을 자책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이다. 하지만,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앞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끔은 나만을 위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란 한 구석에 쓰레기통 하나쯤은 지닐 수 있는 그런 용기를 뜻한다. 내 마음의 꽂힌 화살들을 빼고 쓰레기통에 넣어둘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용기. 내 마음의 과녁을 깨끗이 청소할 수 있는 시간쯤은 충분히 가진 후에 일어서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게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자극을 받고 어디로든 나아가는 것, 움직이는 것에 대한 중독을 버려야 한다. 잠시 멈춰 서서 느끼는 공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은 다들 잘해나가는 것 같다며 괜히 조급한 마음에 이미 촘촘히 박힌 무거운 과녁을 들고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 나만을 위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면 가끔은 그렇게 이기적이어도 된다는 말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서 잠시 벗어나서 아파하는 나를 가까이 들여다 봐주었으면 한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하루를 계획하면서 그 시간 동안은 나와 지금의 내 행복,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렇게 화살들을 하나씩 빼면 언젠가는 과녁을 드는 마음이 그리 무겁지 않은 날도 오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지키는 순간들이 모여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는 씨앗이 되어주지 않을까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 퍼즐의 빈 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