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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Jun 12. 2020

집순이인 줄 알았는데...

보통 집에서 일할 때가 많지만

왠지 오늘은 나가야 할 것 같은 날들이 있다.
날씨가 유난히 좋거나, 답답해서 코에 바람을 좀 넣어줘야 할 것 같은 날.

그런 날은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일도 나가서 하고, 혼자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 또한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 코로나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봄부터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며 지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집순이가 아니었던 게 아닐까’.


평소에도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하고, 일도 집에서 하는 데다

종일 집에 있어도 할 일이 많아서 심심한 줄 모르고 살아왔기에

나는 내가 흔한 집순이1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보니

한동안 답답함 속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외출 여부를 내가 선택할  는 것과

반강제로  나가게 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던 영화관도,

오랫동안 해왔던 수영도,

인생에 낙이었던 해외여행도,

매주 참여했던 취미 모임도,

올 초부터 꼼짝없이 스탑 상태.

적고 보니 새삼 내가 이렇게 활동적인 인간이었나 싶다.


처음에는 '그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단 조심하자'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예상보다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나가지 말라니까 더 나가고 싶고,

모임을 자제하라니까 괜히 안 만나던 사람까지 더 만나고 싶고,

뭐 그런 반대 심리가 작용하는 것.

게다가 언제 끝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맘 편히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5월에는 뉴욕에, 6월에는 다시 영국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모든 게 다 취소됐고, 언제 다시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수영장은 네 달째 휴장 상태이고, 7월에 재오픈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조차 미지수다.

다시 연다고 해도 올해는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요즘은 운동을 자전거로 대신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전처럼 가끔 나가서 일하기도 하고

햇살 좋은 날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

여전히 상황은 현재 진행 중이니 조심한다고 해도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떨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당연했던 일상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더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다니.

이 얼마나 우울하고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어제도 한낮의 더위가 가실 즈음,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다 왔다.
집순이로 사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구나.

여태껏 집순이인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제 어디 가서 자신 있게 집순이라는 말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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