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놓고 간 것 중 가장 소중했던 것

너에 대하여.

by jenny

내 인생에서는 사랑이 전부였다. 전부를 주지 못하는 사랑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주려고 머리를 쓰거나, 서로가 가진 마음의 크기를 재보는 사람과의 사랑 같은 건 시작하지도 않았다.

인터넷이 진화를 거듭해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할 친구쯤은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마음 맞고 취향 비슷한 친구도 여럿 있는데, 굳이 이것저것 따져가며 더 이득을 얻기 위해, 혹은 덜 상처 받기 위해 조절하며 하는 사랑은 얼마나 무의미 한 지. 전부도 아닌 사람에게 줄 마음의 여유 같은 게 나에겐 없다.


입사 동기였다. 우리는 2년을 친구처럼 치고받고 싸우다, 서로를 엮는 말에 도끼눈을 뜨고 반박하다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 그와 사귀자마자 나는 세계일주, 세계여행, 유랑자, 혹은 집시 타령을 했다. 그는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가면 보내주겠다고 장난 삼아 얘기했고. 아마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딱히 진지하지는 않았으니까.


사귄 지 3년 6개월 즈음, 꿈같았던 세계일주가 현실이 됐을 때 그는 나를 잡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게 나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내가 하려는 일이면 뭐든 응원했다. 그게 본인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을 때도. 늘 나를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물론 타협을 시도하긴 했다. 6개월만 다녀오라고. 내가 기다릴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의 시간이라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경비를 대 줄 테니 나머지 6개월을 마저 가라고. 부모님에게는 해외 주재원을 간다고 얘기하겠다고. 네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채로 떠나면, 나는 너무 불안하다고.

그 제안이 어떤 간절함인지 알았음에도 모르는 척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가 나에게 어땠는지 아는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은 나를 나쁜 년이라고 욕했다. 내 친구들도 그랬는데, 그 사람의 친구들은 더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꽤 됐는데,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나이와 현실을 얘기하면서 이별을 종용했을까.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그 사람의 친구들이 조금 미웠는데, 그를 아끼는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하며 이해하려고 했다. 서른셋,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자 친구를 마냥 기다리기엔 막막한 나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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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그는 고백했다. 나와 헤어지는 것을 어제까지 고민했다고. 내가 떠나 있는 그 시간들을 못 견딜 것 같다고.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기다리겠다고.

나는 몰랐는데 그는 알았던 것도 같다. 그가 나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내가 그와 헤어지고 갔을 거라는 것을. 그 보다 이 여행을 선택했을 거라는 것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그는 내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래서 가지 말라는 말 대신, 헤어지자는 말을 고민했으리라. 그 마음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우리는 공항에서 마지막 밥을 먹었다. 나는 제 발로 가는 주제에 대성통곡을 하면서 출국장으로 들어갔고 그는 내 눈을 제대로 마주 보지도 않고 얼른 들어가라며 황급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가 작별인사를 좀 더 오래 했으면, 가지 말라고 말하면서 엉엉 울 것 같아서 급하게 돌아섰다고. 인생의 한 번뿐인 소중한 시간을 잘 보내고 오라고. 자기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겠다고.


내가 떠난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힘든 시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고민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내가 힘들 때 그는 항상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줬는데. 넘어질 것 같으면 넘어지지 않게 잡아줬고, 결국 넘어져 버리면 항상 함께 넘어져줬는데. 바닥에 있는 내가 초라하지 않게 옆에서 안아줬는데.

그가 가장 힘든 시절을 버텨야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결국 나는 내가 제일 중요했다.

사랑이 전부라고 주장하며 살았던 내가, 내 전부인 그를 두고 떠난 건지, 아니면 그가 내 전부까진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사랑이 전부가 아닌 건지, 아니면 전부인 사랑은 스스로에게만 향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설레고 기대되고 두근거렸지만, 미안하고 슬프고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그래도 남겨두고 간 것들, 특히 너에게 미안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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