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아주 편협하고 모험심이 없는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담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여행기를 읽으면서 카우치 서핑을 알게 됐다.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카우치 서핑의 호스트는 본인의 카우치, 혹은 침대, 혹은 남는 방을 제공해준다. 시간이 남는 호스트들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관광을 시켜주기도 한다. 서퍼는 그 카우치에서 지내면서 (숙박을 하면서) 보답으로 본인 나라의 요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작은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장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조금 더 가까이서 알게 되고 금전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카우치 서핑으로만 여행을 하는 사람도 꽤나 많다.
이 신기한 문화를 접하게 됐을 때 생각의 흐름은 '저게 가능해? 호스트가 범죄자면 어떡해? -> 아, 후기를 볼 수 있네. 별로인 호스트들은 거를 수가 있구나.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모르는 사람을 집에 초대해서 재운다고? 저 호스트들은 제정신이야? ->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거나 아니면 여행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해야 해서 못하면 대리 만족할 수도 있고. -> 아니 근데 저 호스트는 왜 저렇게까지 잘해주는 건데? 아무 인연도 아닌 사람에게 저 정도의 호의를 베푸는 게 가능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 사람인데? -> 세상엔 좋은 사람이 정말 많지. 이렇게 친구가 되는 거야! 인류애를 믿어봐! -> 도전해볼까? -> 아니 내가 카우치서핑은 무슨'의 무한 반복.
무엇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다. 원래는 좀 불편해도 그 시간들이 견딜만했는데,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남한테 폐를 끼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상대방의 표정 변화를 보는 내 마음의 불편함을 싫어한다. 그게 낯선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카우치 서핑에 맞지 않는 인간이다. 낯만 가리는 게 아니고, 어마어마한 쫄보에다가, 호스트들은 대부분 남자였으니까. 근데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여행 뽕에 취해있었고, 믹스 돔에서도 여러 번 자봤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은 원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거지, 장기 여행자들이면 다 한다던데~ 와! 이 사람은 카우치 서핑으로만 여행을 했네? 뭔가 멋지다! 하면서 덜컥 도전을 했다. (역시 나는 나를 제일 모른다.)
이 생소한 문화를 접해보기로 결심을 하고 성실하고 긴 자기소개와 일정을 등록했다. 꽤 많은 호스트들이 나에게 초대 메시지를 보냈다. 고르고 골라 선택한 내 처음(이자 마지막) 호스트는 런던에 사는 대만 대학생이었다. 런던까지 가서, 나는 기어코 처음이라 무섭다는 이유로 아시아인을 고른 것이다!
호스트와 연락을 주고받고, 약속을 정하고, 그 친구의 집에 갔다.
그런데, 집이 좀 이상했다.
그 친구의 집은 대학생들의 공용 기숙사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방은 침대와 화장실 책상이 끝이었고. 여기서 어떻게 자야 하는 거지? 내 카우치는 어디에 있지?라는 생각을 하던 중 그가 나에게 카우치를 안내했다. 놀랍게도 해당 층에 사는 학생들이 주방 겸 거실로 사용하는 공용공간의 카우치를. 호스트 소개의 카우치 설명에 매우 큰 카우치라고 써져있었는데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안내받은 공용공간의 카우치는 크긴 매우 컸다... 그는 자기 방에서 자도 되고 이 카우치에서 자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의 방은 2평이 될까 말까 하는 공간이었고 내가 잘만한 공간은 현관과 의자 위 밖에 없었다. 그 방에서 자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 곳은 공용 거실의 카우치라는 건데...
머리가 하얘졌다. 이 층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쓰는 공용 공간을 나에게 내어준다는 건데 다른 사람들과 협의는 된 건지, 이 공용공간에 화장실은 없는데 그럼 나는 화장실을 쓸 때마다 네 방에 벨을 눌러야 하는지, 나는 출입 카드가 없는데, 내가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할 때마다 너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지만 해맑게 웃으며 세탁한 시트를 건네는 그의 표정을 보며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카우치에 시트를 깔고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냉장고에 왔다 갔다 거리고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인사를 하다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쓰고 누워있었다. 카우치 서핑은 원래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렇게 불편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다. 떠나기만 하면 아무데서나 잘 먹고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구나.
불을 끄고 소파에서 누워서 자면서 나는 좀 많이 울었다. 내가 이러려고 집을 나왔나. 아무튼 울면서도 어디서든 잠은 잘 자서 아침까지 푹 잤고 아침이 되자마자 짐을 쌌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네가 보여준 호의는 고맙지만, 저 공간은 공용공간이고 저기서 지내는 건 내가 너무 불편해서 못 지낼 것 같다. 나는 다른 숙소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그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이런 불편함을 예상하지 못한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그 방을 나왔다.
그 친구는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했을까?
숙소를 옮기고 나서 에든버러, 더블린, 암스테르담에 잡아놓은 카우치 서핑 일정을 사과 메시지를 보내가며 전체 다 취소했다. 더블린에서 나를 재워주기로 했던 호스트에게는 취소 메시지를 보내면서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런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찾고 비싼 관광지는 카우치 서핑을 ‘처음’ 시작하기엔 좋은 장소가 아니라고 말했다. 좋은 카우치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도 했다. 자기는 집에 있는 방을 따로 내어주고 있으니 편하게 와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끝끝내 그 선의를 거절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떻게 남의 집 카우치에서 잘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를 초대한 호스트는 거기에 사는 사람이니, 출근을 해야 할 테고, 그럼 그는 일찍 잘 텐데, 새벽에 물이 마시고 싶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호스텔에 지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눈치를 보게 될 거고, 또 호스트의 대가 없는 선의를 마냥 고마워하며 받기에 나는 또 너무 염치가 있고. 등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내가 어떻게 이걸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기 프로젝트는 아쉽게 종료. 여행 중에 카우치 서핑을 많이 해 본 민현이를 만났을 때 같이 도전해보자~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결국 실행은 못했고.
내가 겪은 첫 카우치가 좋았으면, 나는 카우치 서핑을 계속 도전했을까?
아직도 전 세계에서는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정말 많다. 좋은 호스트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내 런던에서의 호스트도 나쁜 친구는 아니었다. 그 친구는 분명 선의였을 테고. 나는 그 선의가 불편했던 것일 뿐.그 이후 여행에서 대부분의 숙박을 호스텔에서 해결했는데, 호스텔도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거니 적당히 눈치를 본다. 그러나 내가 돈을 지불하고 눈치를 보는 것과, 공짜로 눈치를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카우치 서핑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나는 현지인과 좀 더 딥하게 친해지는 경험을 별로 하지 못했고, 숙박비를 하나도 아끼지 못했다(!) 그래도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내가 불편하고 낯 뜨거운 상황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됐으니까. 역시 나를 알아가는 데 제일 좋은 건 새로운 경험에 나를 몰아넣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광고를 한다. 나는 살아보는 여행은 카우치 서핑이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쯤은 꼼꼼하게 호스트를 골라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혼자가 아닌 친구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호스트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