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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Nov 07. 2019

엄마라는 막연한 그리움

아무리 찾으려해도

엄마!


나는 가끔 엄마를 향한 미칠듯한 그리움에 휩쌓여 잠에서 깨곤 합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잠에서 깨어난 지금의 침대가 아니라 과거의 어떤 때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높고 넓은 침대로 비춰오던 이상하게도 서늘한 햇빛. 지방으로 이사를 한 가족을 두고 서울의 외할머니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날들. 이상하게도 그 때의 날들은 내가 어떤 방에서 어떤 형태로 잠을 취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다만 종종 그 집에 엄마가 찾아오면 따로 쓸만한 방이 없어 우리가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잤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는 관 속에 놓인 시체처럼 미동도 없이 천장을 향해 바로누워 다소곳하게 잠을 잤고 나는 그런 엄마를 향해 옆으로 돌아누워선 하염없이 엄마의 하얀 볼을 바라보았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고 아침이 와 눈을 뜨면 엄마는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나 집을 나선 뒤였습니다.


오늘도 꿈에서 나는 계속해서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집에 와 달라고 애원합니다. 달콤하고 따뜻한 엄마의 목소리. 엄마는 조바심 나는 내 마음도 모른 채 그저 차분하게 곧 간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그렇게 나는 집에 남아 엄마가 언제 올 지 조마조마해하며 인형을 꼭 끌어안고는 애처롭게 현관을 바라봅니다.


잠에서 깨어나서는 나도 모르게 엄마를 찾습니다. 여기가 엄마도 다른 가족도 없는 나의 자취방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내가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닌 엄마가 될 나이가 다 되었다는 걸을 깨닫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 속을 유영하듯 한참을 기억들을 되짚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 집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엄마!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내가 그리운 건 엄마가 아니라 엄마라는 개념일 뿐입니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보호해주던 그 안전한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엄마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영원한 미아가 된 것이지요. 어제도 나는 누군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제도 나는 누군가를 찾아 해맸습니다. 오늘도 아마 그러겠지요. 어제도 나는 외로움에 사무쳐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제는 아무에게나 안기고 싶어서 다짜고짜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나를 안아준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이 침대로 돌아와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 대고는 다시 잠을 청하겠지요. 대상이 아닌 인상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면 그리움의 감정은 영원한 결핍이 되기 마련입니다.


나는 오늘도 엄마가 그립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 어느 날 내 기억속에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엄마를 압니다. 그래서 고아원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엄마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아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채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미아 보호소에 얹혀 있습니다. 엄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없이, 엄마를 모르지는 못한 채.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십 년 뒤에도 그저 길을 잃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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