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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Feb 06. 2020

[책]「대도시의 사랑법」 우리도 여기 있어요 라는 외침

재밌는게 너무 많아 책 한 권 읽기 힘든 시대다. 책이 아무리 재밌다, 재밌다 해도 4D로 움직이며 물방울 튀기는 액션 스릴러보다 재미있긴 어려울테니까. 그래도 21세기,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책은 여전히 있다. 최근에 읽은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런 책이였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었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책만이 할 수 있는 온전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을 느끼는 일이다.


막연하게 먼 과거를 떠올리며 예전엔 사람들이 다같이 손 잡고 과일을 따 먹고 사냥을 하며 평화롭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거 박사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시대별 살인/전쟁/학살과 관련 된 통계를 다루는 이 책에서는 '과거'라는 곳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폭력의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이 당연한 시대.


그 책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쇄술의 발명과 책이라는 출판형태의 보급화가 반인륜적인 형태의 문화, 풍습, 고문 (마녀사냥, 능지처참, 사람을 산 채로 물에 끓이기 등)을 감소시키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가설이였다. 이런 반인륜적 풍습들은 책이 보급화 되는 시기와 맞닥뜨려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스티븐 핑거 박사는 이를 글이라는 형태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내밀하게 이해하게 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 남의 고통을 진지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건 하나의 가설일뿐이지만, 오랫동안 책을 읽어 온 나에게는 진리처럼 여겨졌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관점을 시간을 들여 읽어가고 상상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다른 어떤 동물들도 상상을 하며 운다거나 울지 않는데, 인간만은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혹은 가상의 현실을 상상하며 감정을 느끼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상이 또렷하게 만들어내는 이미지들로 상상력을 자극하기 보다는 송출해내는 장면과 풍경을 강화시킨다면, 글은 작가가 담아내는 이야기를 나의 시야와 속도로 바라보며 그 둘을 합일시켜나간다. 한 번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책이 아닐까? 그렇게 인간은 계속해서 타자를 나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게이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없거나 딱히 퀴어에 큰 관심이 없다면 흘러가는 큰 흐름에 따라 '아니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아니지. 자기들끼리 사랑한다는데.' 정도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마 요즘의 대다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어딘지 모를 '익숙하지 않음'을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난 딱히 관여하지 않고 싶어' 정도의 의견을 중립적인 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는 자주 강 건너 불 구경보는 마음으로 약자의 삶을 바라본다. 불 속에 타들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강 건너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합쳐져 울긋불긋 하나의 광경으로 보일뿐..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어나가며 우리는 자신과 너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강 건너 불이 난 한 개인의 일상과 감정을 시시콜콜 듣게된다. 내 눈으로 글들을 짚어나가며, 화자의 웃음에 같이 웃고, 화자의 눈물에 같이 울고.. 결국은 그가 겪고 있는 삶의 고뇌와 아이러니가 내가 겪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극이라기엔 가볍고, 희극이라기엔 무거운, 가라앉기엔 너무 어리고, 막무가내로 자신 있기에는 나이가 많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가 짊어메고 가는 그 삶의 무게.


장애인의 삶도, 미혼모의 삶도, 성소수자의 삶도, 길고양이의 삶도, 그 누구의 삶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려 해도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언제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그런게 있기는 할까? 나도 나를 이해 못하는데)에서 비롯해 미안해와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하며 살았던가. 말도 안되는 것들에도 사랑해라는 말이 자꾸만 나오는 건 그것이 우리 안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들은 완벽하게 가려져 있는 도시 서울, 그 대도시에 숨어 있었던, 어쩌면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아 숨겨졌다고 생각했던 것들. 우리도 여기 있어요, 우리도 여기서 사랑하고 있어요 라는 외침. <대도시의 사랑법>은 서울에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또 한 명의 우리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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