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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픈 비건 Jan 30. 2020

프리랜서를 위한 분산형 시간관리법

아침저녁에 일하고 대낮에 놀자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랜서의 삶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지만 시간을 잘 쓰기 가장 힘든 직업의 형태이기도 하다.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내 노동력과 재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을 파는 일이고, 딴 짓을 하든 멍을 떄리든 일단 9시부터 6시까지 앉아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급여를 지불한다.


프리랜서는 그렇지 않다. 자기의 시간을 알아서 써야 하는 프리랜서는 오로지 노동력 또는 결과물에 근거하여 급여를 측정받는다. 어차피 회사를 다닌다고해도 진짜로 일만 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그리 길지 않다. 그럴 바엔 일 할 때 집중해서 빨리 끝내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쓰고하면,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든 취미활동을 하며 자아실현도 할 수 있다. 


관건은 바로 이 시간관리다. 


프리랜서의 시간은 상대성 이론의 영향 덕택에 때론 미친듯이 느리게 흐르고, 또 때로는 미친듯이 빠르게 흐른다. 매일 평균적인 일정을 짜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 습관이 자리잡기 어렵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부리나케 무언가의 마감에 맞춰 밤을 새고 있고, 여유롭게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개산책도 하루에 세 번씩 나갈 거라는 행복한 프리랜서의 꿈은 저 멀리서 나를 비웃고 있다.



프리랜서 상대성 이론 법칙



프리랜서로 이 일, 저 일을 계속 하며 살아남으려면 계속해서 이 일, 저 일이 생겨나야 한다. 프리랜서가 하는 일은 너무 분산적인데(이 클라이언트랑은 비건제품 패키지를 만들다가 저 클라이언트랑은 고기뷔페 로고를 만들다가) 일의 효율이라는건 기본적으로 집중해서 한 가지를 쭉 할 때 늘어난다고 배웠다.


과연 그런가? 일의 형태가 분산적이라면 시간관리 역시 분산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회사에서는 여러가지 다른 프로젝트들을 맡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정치체계에 속해있다. 회사 내에서 비건제품 개발과 고기뷔페 메뉴 개발을 동시에 맡았다고 해도 일관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고 비슷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된다.  


프리랜서는 여러 명의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고, 각각의 클라이언트들의 의사결정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의 진행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누구는 미팅없이 전화로만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고, 누구는 일주일에 두 세번씩 만나기를 원하다. 또 누구는 디테일에 집착하고, 누구는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라던가. 잘 할 수 있다면 방식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결국 최고의 효율이라는 건 내가 이뤄야 하는 결과와 과정의 형태가 일치할 때 높아진다. 


지금부터 내가 세운 프리랜서의 효율적인(아직까지 가설) 분산형 시간관리 법을 소개해보겠다. 일명 아침 저녁 일하고 낮에는 놀아. 




아침저녁 일하고 대낮에는 놀아


1.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분리한다.


- 해야만 하는 일의 종류

1-1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동 (씻기, 밥먹기)

1-2 돈을 벌기 위한 일

1-3 공적인 업무 (미팅, 은행가기, 나의 경우에는 개산책도 포함) 


2.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하고 싶은 일이랑(하면 내 기분이 좋음),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일(지금 당장 해야만하는 건 아닌데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음)로 분류한다. 


2-1 그냥 하고 싶은 일

그냥 하고 싶은 일은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매일의 욕망(도토리묵 쑤기, 나팔꽃 심기)일 수도 있고, 좀 더 장기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자아실현(밀란쿤데라 전집 읽기, 요가 가기)일 도 있다. 


2-2 잠재력을 가진 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일은 지금 당장 한다고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자아실현(프랑스어 공부, 글쓰기)이나 지금 가진 프리랜서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일(번역공부, 코딩배우기)이 될 수 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잠재력을 가진 일로 넘어올 때도 있다. 그렇게 파이를 계속 키워 나가자. 


여기까지 기억해야 것은 1-2 돈을 벌기 위한 일과 2-2 잠재력을 가진 일이다. 이 두 가지를 하루 일과의 뼈대로 삼는다.


3.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고정시켜 나의 활동시간을 정한 다음 하루를 아침, 대낮, 저녁으로 쪼갠다. 

나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피곤해한다.


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직 잠이 덜 깼는데 싶은 시간이 아침, 활동에너지가 제일 넘치는 시간을 대낮,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을 저녁으로 잡으면 된다. 각각 5~6시간 정도로 분배되면 이상적이다.


4. 돈을 벌기 위한 일(1-2)을 아침과 저녁 시간 안에서 해결한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어차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어떤 시간에 하든 결국 하게 되어있다. 회사시스템 내에서는 자본적 가치가 떨어지는 시간을 쓰더라도 돈을 버는게 프리랜서의 특권이다. 프리랜서는 어떤 시간을 팔든 결과물만 기준에 미치면 성공이다.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대낮은 자신을 위해 남겨두자. 어차피 하루는 길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아침일은 밖에 나가서 하라는 점이다. 회사와 집의 경계가 허물어진 가정형 프리랜서(?)의 경우, 부시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게 되기가 쉽다. 씻고, 잠옷을 벗고, 나갈 채비를 해서 근처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오전 업무를 보자. 하루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5. 하고싶은 일(2)을 대낮에 한다. 잠재력을 가진 일은 시간을 정해 고정시킨다(2-2). 


시간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자 프리랜서가 되었다면 대낮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자. 사람은 '잠재력' 따위로 행동까지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결심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그 행동을 쉽게 만들기 위해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희망찬 특권의 시간, '대낮'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대낮의 자유는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 귀중한 복지이다. 돈 좀 덜 벌고 불안하면 어떤가, 대낮을 누릴 수 있는데.


장기적인 목표나 자아실현은 시간대나 요일을 고정시켜 꾸준하게 이어간다. 오히려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일들이야말로 철저하게 계획하고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해야만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하고 싶은 일, 앞으로의 방향성을 위한 일들을 계획하고 실천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자. 


미팅이나 은행방문 같은 업무처리도 어차피 대낮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이 시간을 자유(?)로 고정시켜 놓는게 일할 수 있는 시간 확보에도 더 유리하다.


자기 전 30분은 깊은 수면을 위해 마음의 평화가 오는 액티비티로


대낮을 마음 편히 누리려면 아침에 일을 조금 해놔야 한다. 다 못했어도 걱정마라, 저녁에 하면된다. 대낮에 도토리묵 쒀먹고 나팔꽃 심다 낮잠이나 한 숨 때리면 저녁에 없던 힘도 난다. 


6.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행동(1-1)은 매일매일 꼭 하자. 


프리랜서는 정해진 시간이란게 없다보니 끼니를 거르거나 늦잠을 자고 급하게 세수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할 때가 많다. 밥 챙겨먹기, 씻기, 약 챙겨먹기 같은 건 뛰어넘지 말자. 운동도 이 안에 포함시키면 정말 바람직하다. 




모든지 계속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은 오늘은 화학을 부실거야 오늘은 언어를 부실거야 하며 하루종일 앉아 한 과목씩 문제집을 풀어나가는데, 나는 너무 산만해서 과목별로 문제집을 펼쳐놓고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풀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새로운 과목으로 바뀔 때 잠시라도 집중력이 유지되고 공부가 흥미로웠다. 


일도 마찬가지다. 해야만 하는 일을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놓으니 질릴 때 쯤 그만하고 조금 하고 싶어질 때 쯤 또 조금 하면 된다. (그렇다고 삼십분하고 때려치란 말은 아닙니다.) 특히 디자인이나 번역같은 일은 잠시 쉬고 맨눈으로 다시 작업을 바라봤을 때 많은 인사이트들이 생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방식은 한 개인의 최대 효율을 위해서가 아니라 큰 집단의 최대 효율을 위한 방식이다. 여러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관심과 상황에 맞춰 일을 조정할 수 없다. 회사가 말하는 효율과 개인이 인간으로서 갖는 효율은 다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을 계속 찾아가고 쌓아갈 수 있을때 나는 비로소 효율적인 인간이 된다. 



심은 지 이틀만에 싹이난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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